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야 Oct 29. 2023

자유의 발견

언제나 찬란한 자유를 바라보기만 했다

 늘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가족과 집에서 벗어나고파 늦게까지 온 동네를 쏘다니곤 했다. 원하는 만큼 밖에 있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떠날 날을 위해서 착하고 성실한 아들이 되어 무사고 기록을 쌓아갔다. 아슬아슬하게 통금시간과 줄타기하던 학생 시절, 성인이 되어 독립만 한다면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믿었다.


 끝내 타지의 대학으로 진학했을 때의 기쁨이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고작 한 달이었다. 잊고 있던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에 현실로 내동댕이쳐졌다. 내 한 몸 먹여 살리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고만고만한 동기들과 함께 더위와 추위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산꼭대기의 작은 방, 그리고 다채로운 고시원을 전전하며 생각했다. 취업만 한다면, 월급만 따박따박 들어온다면 그때는 자유로울 수 있겠지.


 그럴 리가 없었다. 사회는 주는 것만큼 받기를 윈했다. 열정과 시간을 대가로 받아낸 급여도 자유를 알려주지 못했다. 오히려 더 나아질수록 삶은 어깨에 짐을 하나씩 더 올려주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나 역시 사회에 진절머리를 내면서도 그 구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소시민이었다.


 이때쯤이었을까. 작은 스크린 너머의 찬란한 순간들이 부러웠던 것은. 그 장면들에도 뒷사정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빠져들었다. 끝없이 여행하는 사람, 늘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사람, 틀에서 벗어난 듯 예술을 하는 사람, 그냥 돈 많은 사람. 무기력하게 초점을 잃어가는 눈으로 그들의 자유를 훔쳐보기만 했다.


 더 이상 방법이 없어 보였다.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 무력한 손끝으로 스크린을 꺼버렸다. 검은 화면에 비친 더 검은 그림자를 보며 마음을 놓아버렸다.


 그렇게 잊어버렸다.




 긴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바닷가 벤치에 앉아 책을 읽던 중에 오묘한 감정이 스쳤다. 사회와 유리되어 세상과의 접점이 사라진 것만 같은 순간.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세상 한 가운데 오롯이 혼자임을 여실히 인지하는 순간. 스쳐 간 그 감정이 그토록 열망하던 자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 지속되는 상태가 아니라 순간에 느끼는 감정으로 받아들여진 것처럼 자유 또한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스쳐 간 감정의 장면들을 쫓아보았다.


 바닷가에서 홀로 책을 읽던 시간, 초겨울 이른 아침 해변을 산책하던 시간, 소파에 누워 음악을 듣던 시간, 유난히 글이 잘 써지던 시간, 여유롭게 친구와 잔을 부딪치던 시간, 깊은 밤 당신과 손을 잡고 돌아가던 시간. 그 모든 곳에 자유가 있었다.  


 이제는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줍듯이 작고 소중한 자유를 음미하며 살기로 했다. 찬란한 자유를 동경하기보다 소박한 자유를 삶의 페이지에 채워 가려 한다. 이렇게 순간을 쌓아가다 보면 이 밋밋한 삶을 조금이나마 풍요롭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밤 또다시 내일의 소박한 자유를 꿈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