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이별했지만, 다시 한번 나 홀로 이별한다
머리맡에서 진동이 울린다. 갑작스레 치켜 올라간 눈꺼풀이 두어 번 깜박인다. 그 사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핸드폰 액정의 불빛이 보인다.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어 들면 터져 나오는 액정의 밝음, 몽롱함이 달아나며 초점이 돌아온다. 새벽 3시와 당신의 이름이 보인다. 그렇겠지, 이 시간에 날 깨울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 잠깐의 망설임, 전화를 받는다.
갑갑해서, 도저히 말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잘 것 같아서 전화했어.
알코올에 젖은 목소리가 흘러들어온다. 얼마나 마셨냐고 굳이 묻지 않는다. 카스 큰 캔 5개 혹은 6개, 달지 않은 견과류 몇 개, 멀리서 들리는 재잘거리는 소리는 나 혼자 산다 아니, 오늘은 전지적 참견 시점이다. 감은 눈꺼풀 너머로 익숙한 방과 핸드폰을 든 당신이 보인다. 응, 말해.
그러니까…
흔들리는 말소리가 조심스레 이어진다. 그러다 잠시 꼴깍이는 소리가 들리고 잘못 삼킨 음식을 토해내듯 말이 쏟아진다. 내게서도 흐릿한 한숨이 새어 나온다.
그럴 줄은 몰랐다고, 일이 그렇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한다. 자신도 피해를 받은거라고,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 사고도 말도 반복되는 건 모두 술이 문제인 걸까.
당신에게서 끝없이 흘러내리는 단어들과 무관하게 마음이 저려온다.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라 생각한다고 말한 게 불과 오늘 낮이었다. 여전히 당신에게 나의 말이 닿지 않음과 나의 고통이 전혀 의미가 없음을 느낀다. 술이 나쁜 거라는 되뇜도 무력하게 흩어진다.
나의 말이 당신에게 닿지 않는 것은 마음이 모자란 탓일까, 아니면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눈이 생각과는 다른 탓일까. 여태껏 이 시간이 반복된 것은 어떤 이유일까.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당신의 탓인지, 당신을 보며 불안한 나의 탓인지. 오늘까지도 모르겠다.
늘 당신이 먼저 전화를 내려놓기까지 기다렸다. 그 약속은 오늘로 끝내기로 한다. 머리가 아파서 이제 끊어야겠다고 말한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덧붙인다. 그제야, 적막이 우리 사이를 채운다.
알았어. 잘 자.
곧 전화가 끊어진다.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냉장고에서 마지막 한 캔을 꺼내는 당신이 보인다. 눈을 뜨면 책상 위의 담배가 보인다. 갈증이 난다. 어지러운 생각들을 건조한 담배 연기와 함께 뿜어내는 상상을 한다. 손을 뻗다 이내 멈춘다.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음을 눈치챈다.
우리는 이미 이별했지만, 다시 한번 나 홀로 이별한다. 이 마지막 이별은 오로지 나의 기억에만 있을 테니.
돌아누워
눈을 감는다.
홀로 잠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