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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야 Feb 15. 2024

무감함이 유감스러웠던

행복하다는 말을 들은 날이면


나 지금 행복해.


네게서 처음으로 행복이란 단어를 들었던 때를 기억한다. 커튼 사이로 흔들리며 비치는 햇빛과 마른 종이에 스치는 듯한 건조한 공기 가운데 널 바라보았을 때, 넌 어때? 물어오는 따스한 눈이 그곳에 있었다.


난 행복이 뭔지 잘 모르겠어.


서운함과 안타까움이 담긴 눈빛에 가슴이 아렸다. 그 행복을 내가 앗아버린 것만 같아서. 빈말이라도 행복하다고 말했어야 했나 싶었지만 또다시 같은 상황이 와도 다르게 말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네 눈을 피하고 말았다.


괜찮아. 넌 워낙 명상 같은 사람이니까.


그래. 넌 그저 무감히 감정을 흘려보내는 나를 그렇게 표현하곤 했다. 흔들리지 않으면 강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외면과 회피를 거듭하던 날 안쓰러워했었지. 모른다는 게 이해는 안 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한다는 말도 안 되는 말로 위로해 주던 네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행복의 순간이 없었을 리는 없으니 그저 모르고 있을 뿐이라며 어설픈 결론을 내고서 두루뭉술하게 어색함을 넘겨버린 그 순간을 기억한다. 무감하게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그때의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닌지. 의심과 불안,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얼룩진, 무감함이 그토록 유감스러웠던 기억.


우리가 우리가 아니게 된 지 오래되었다. 그동안 슬픈 영화에 눈시울을 붉히고, 시시한 농담에 즐겁게 웃고, 친구의 성취에 함께 기뻐하고, 이유불명의 우울에 잠기기도 하고, 질투에 스스로를 상처 내기도 하고, 고요한 일상에서 오는 평온을 느끼며 살아왔지만, 아직도 행복은 긴가민가하다. 


며칠 전 행복은 어떤 거냐는 내 물음에 친구가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냐며 대답했다. 뭔가 따뜻하고 몽골몽골한 기분이 있어. 뚜렷하게 정의할 순 없지만 일단 그런 상황이 오면 모를 수가 없는데. 당혹스러움이 담긴 눈이 그곳에 있었다.


누군가에게서 행복하다는 말을 들은 날, 하필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고민에 잠기곤 한다. 행복은 뭘까. 단독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온갖 좋다는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합쳐진 것일까. 수없이 나를 거쳐 갔지만 다른 무언가로 착각하고 있는 걸까.


혹시 행복은 믿음의 영역에 있는 건 아닐까. 행복하다고 자기 선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비밀인 걸까. 그렇다면 잘 몰라서 말할 수 없는 나는 영영 알 수 없는 걸까.


여전히 무감해서 유감스러운,

그런 밤이 또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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