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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필록 Oct 28. 2021

계획과 계기 사이, [리스본행 야간열차]

영화관련 유튜브에서 추천받은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았습니다. 제목만 어렴풋이 들어봤던 작품이지만, 소개받은 유튜브 영상에서 좋은 느낌을 받아 다음 날 저녁에 맥주 한 잔 하면서 시청했고, 작중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읽는 책 속의 '아마데우'에게 느꼈던 감정을 저는 그레고리우스에게 느꼈달까요. 아무튼 잔잔한 물결이라도 그 파동은 점점 커지듯, 본 직후의 느낌보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더욱 감명이 큰 영화였어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스위스 베른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그레고리우스'는 혼자인 것이 익숙해져 버린 사람입니다. 영화는 그의 아침 일상을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혼자서 체스를 두는 그의 표정은 어딘가 건조합니다. 집 안의 풍경이 칙칙하고 어두운 것은 그의 현재 상황이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죠.


비가 쏟아지는 출근길, 여느 때처럼 다리를 건너려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리 난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본능적으로 우산을 내팽개치고 여인을 구한 그레고리우스. 강의실에까지 의문의 여인을 데려오지만, 어느새 여인은 빨간 코트만을 남긴 채 사라져 버립니다. 코트 안에서 발견된 건 책 한 권과 리스본으로 떠나는 열차표. 그리고 여인과의 짧은 만남을 계기로 그레고리우스는 일탈을 감행하게 됩니다. 무작정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은 것이죠.  


책의 저자는 '아마데우 프라우'라는 사람으로 책은 1974년에 일어났던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을 주도한 혁명세력에 몸담으며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내용이었습니다. 기차 안에서 책을 읽으며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라는 사람에게 완전히 매료되어버립니다. 그리고 리스본에 도착하자마자 그가 살던 집을 수소문해 무작정 찾아가게 되죠. 그러나 집에는 아마데우는 없고 시중을 드는 늙은 하녀와 아마데우의 여동생 ‘아드리아나’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어딘가에 아마데우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아드리아나와는 달리 늙은 하녀는 그레고리우스에게 아마데우의 행방을 몰래 알려줍니다.


사실 아마데우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혁명의 시작과 함께 죽은 인물이었던 것이지요. 그가 묻힌 묘지에서 만난 아마데우의 스승이었던 신부도 그가 어떻게, 왜 죽었는지에 대해선 알지 못합니다. 아마데우를 찾는 여정이 허무하게 끝나버릴 것만 같던 시점에, 우연히 다시 기회가 찾아옵니다. 지나가던 행인과 부딪혀 안경알이 깨져버린 그레고리우스가 새 안경을 맞추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알게 된 ‘마리아나’라는 여인이 그레고리우스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삼촌 '주앙'이 마침 아마데우를 잘 안다고 일러준 것이지요.


주앙이 있는 양로원을 찾아가며 다시 아마데우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시작하는 그레고리우스. 혁명 당시의 동지였던 아마데우, 주앙 뿐 아니라 아마데우의 책에 자주 등장했고, 또한 아마데우를 혁명세력으로 이끈 장본인인 ‘조지’와 아마데우의 가장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인 ‘스테파니아’까지. 유리조각처럼 흩어져있는 아마데우의 흔적을 따라 그들을 만나고 다시 그 파편을 끼워 맞추는 그레고리우스의 여정은 ‘생전에 전혀 몰랐던 사람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다가도 본인이 동경하는 사람을 위해 하는 행동은 결국 본인 자신을 위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은 용기가 모자라 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그레고리우스는 이제야 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자신 안에 내재된 열정을 되찾았을 겁니다. 어쩌면 그레고리우스에게 필요했던 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다’ 하는 거창한 계획이 아닌, 열정에 불을 지펴줄 계기가 아니었을까요.


호텔 체크아웃을 하는 날에 그레고리우스는 영화 초반에 만났던 빨간 코트의 여인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레고리우스가 일하는 학교에 수소문을 해 리스본까지 찾아온 것이죠. 그레고리우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그녀.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혁명세력을 탄압하던 경찰 '리스본 도살자'로 불리던 '멘데즈'의 손녀딸임을 밝힙니다. 그녀가 왜 다리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아마데우의 책을 읽던 그녀는 자신이 사람들을 잔인하게 고문하던 사람의 핏줄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었죠. 그레고리우스는 그건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며 위로를 건냅니다. 


아마데우의 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이 끝나고, 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러나 짧은 리스본 여행은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었습니다. 스위스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러 안경점 점원이었던 마리아나와 함께 기차역으로 온 그레고리우스는 돌아가는 것을 망설입니다. 말은 돌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그의 눈빛은 리스본에 남길 원하죠. 그리고 다시 그에게 계기가 되는 말이 마리아나의 목소리를 통해 들리며, 영화는 여기에서 끝나게 됩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실로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어 졌어요. 글 첫머리에 썼듯, 그레고리우스의 이상향이 아마데우였듯, 영화를 보는 내내 그레고리우스의 모습에 저를 투영하게 되더라고요. 한동안 무기력함에 시달리며 글을 쓰는 것이 내가 진짜로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도 자꾸만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독한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용도로 ‘내가 하고 싶은 건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다니는 거야’라는 식으로 핑계를 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말이에요. 그저 시간이 나를 훑고 지나가는 듯한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무미건조한 일상의 반복도 익숙해져 버릴 때쯤 이 영화를 만났네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지 않았다면 찾지 못했을 열정을, 그레고리우스도 나 자신도 찾은 것 같아 기쁩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열정을 지펴줄 계기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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