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히 쉴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집'
인류에게 ‘집’의 중요하다는 것은 설명 자체가 의미없을 정도로 당연하다. 농업혁명은 인간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지 않게 만들어주었고, 유목민(nomad) 시대가 종결되며 비로소 사유재산으로써의 ‘집’이 역사에 등장했다. 집은 정처없이 떠돌던 인류에게 비로소 정착을 통한 안정과 발전을 가져다준 문명이었다. 아카데미 3관왕에 빛나는 영화, [노매드랜드]를 보고 왔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집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마치 농경사회가 도래하기 전 인류의 떠돌이생활처럼, 집이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상황이 허락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춘다. 미국 네바다 주 엠파이어라는 탄광 지역에 사는 주인공인 ‘펀(프란시스 맥도먼드 분)’은 남편 ‘보’의 석고보드 공장이 문을 닫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마저 죽어버리자, ‘보’와의 살아있을 때의 추억이 고스란히 깃든 캠핑카를 집 삼아 생활하는 ‘노매드’가 된다. 그녀는 연말시즌 물량이 쏟아지는 아마존의 물류창고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그곳에서 2007년 금융위기로 집을 잃은 ‘린다’와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스왱키’를 만나고, 린다의 소개로 노매드들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밥 웰스’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들과의 관계가 불편해 노매드가 된 ‘데이브(데이빗 스트라탄)’와도 만나게 된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공원 관리인, 햄버거 가게, 감자 공장등을 전전하며 닥치는대로 일을 하던 펀은 갑작스러운 캠핑카의 고장을 마주하게 된다. 2천달러라는 감당하기 힘든 수리비 앞에서,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차를 버릴 수 없었던 펀은 하는 수 없이 여동생 돌리에게 연락을 한다. 돌리의 집에 도착한 펀. 어릴 때를 추억하며 집에 머물러 달라고 부탁하는 돌리의 제안을 펀은 결국 거절한다. 돌리에게 빌린 2천달러로 다시 차를 찾은 펀은 햄버거 가게에서 같이 일을 하다 손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아들의 집으로 떠난 데이브에게로 향한다.
펀에게 호감이 있던 데이브는 관계가 서먹했던 아들이 펀과 데이브가 일하는 햄버거 가게에 찾아와 손자가 태어날 거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펀에게 자기와 같이 아들의 집으로 갈 것을 제안했던 터였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돌리의 집을 떠나 펀이 향한 곳이 데이브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데이브의 집에 도착하자 데이브와 그의 가족들이 펀을 반겨준다. 데이브는 그녀에게 자신은 더이상 노매드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족들이 있는 집에 정착한 것이었다. 그리고 펀에게 같이 이 집에서 머무르며 살기를 제안한다. 데이브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까지 모두 펀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펀 또한 흔들리게 된다.
캠핑카를 끌고 이리저리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며 살아갈 수 있는 생활은, 얼핏 말만 들어서는 낭만적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들이 누리는 ‘자유’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다룬다. 겨울 추위에 마땅한 난방도 없이 몸을 떨며 자야하는 환경이며, 기초적인 생활만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기 위한 단기 일자리들을 전전하는 것들. 저마다의 이유 때문에 스스로 노매드가 된 사람들이지만, 정착지가 없는 삶이 얼마나 외롭고 불안정한 것인지 영화는 매우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펀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더이상은 추운 겨울에 외로움을 이불 삼아 덮고 자는 일은 없으리라. 데이브와 그 가족들도 모두 좋은 사람이고, 이들과 함께라면 다시 행복한 가정 속에서 살 수 있으리라. 홈 스윗 홈(Home sweet home). 그러나 어느 날 밤에 잠에서 깬 펀은 불안한 몸짓으로 데이브의 집을 나서고 캠핑카에 몸을 뉘어서야 다시 잠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깨닫는다. 자신은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영화의 막바지에 펀은 남편과 관련된 모든 물건들을 처분한다. 그리고 남편 보와 살던 석고공장 근처의 집을 찾는다. 정든 마을과 집들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한 차례씩 훑어보고 자신의 길을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에서는 어딘가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그녀는 이제 안다. 외롭고 불안할지라도 노매드로 살아가는 것이 스스로의 삶이라는 사실을. 땅에 붙어있는 ‘집(House)’이 없다고 해서 마음 놓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집(Home)’이 없는 것은 아님을. 홈리스가 아닌 하우스리스일 뿐. 그녀의 집은 지금도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보고 얼마 전에 쓴 제주 여행기가 다시 떠올랐다. ‘일상을 잊으려 떠난 곳에서 다시 일상에 대해 생각하고, 어느 정도는 해답을 얻게 된다’라는 말이었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인 ‘펀’의 경우에는 ‘노매드가 아닌 정착민으로서의 생활을 겪으며 다시 본인의 정체성은 노매드였음을 깨닫게 되는’ 계기를 찾은 것 같았다. 처음엔 그저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떠돌이 생활을 한다고 자기 자신도 생각했던 그녀는 여동생 돌리의 집에서 ‘언니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는 이야기를 듣고, 데이브의 집을 찾아가 행복한 정착민으로서의 삶을 느껴보고 나서야, 비로소 떠돌이 생활은 그녀 자신의 정체성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미시적으로 보면 한 인간의 깨달음의 과정을, 거시적으로는 ‘집’이라는 존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느끼게 해준 영화다. 표정 하나에 ‘펀’이라는 캐릭터의 서사가 다 표현이 될 정도로 대단한 연기를 보여준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연기는 단연 그녀가 아카데미의 승리자가 되어도 손색이 없다고 느끼게 한다. 오랜만에 곱씹을만한 내용이 많은 영화였다. 한 번쯤은 다시 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