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필록 Mar 20. 2021

용감한 소녀들의 준비된 행운

보통의 사람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브레이브걸스의 ‘롤린’ 역주행이 연일 화제다. 음원 차트 석권에 각종 음악방송 1위까지. 벼랑 끝에 몰렸던 그녀들의 삶이 180도 바뀌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역주행을 일으킨 ‘롤린(Rollin’)은 2017년 3월에 발표한 노래다. 노래 자체는 좋다는 평이 많았지만, 아쉽게 빛을 보지 못한 케이스였다. 브레이브걸스는 당시 아쉬운 활동을 마치고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군부대 위문공연을 다니게 된다. 소위 ‘손해 보는 장사’였을 수도 있는 위문공연이었지만 어떻게든 활동을 이어가고 싶었던 그녀들의 의지였달까, 작은 무대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무대를 즐겼던 위문공연의 편집 영상이 유튜브에 뜨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가요계에서 역주행이 이번은 처음은 아닌지라, 단발성 화제에 그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그러나 브레이브걸스의 이번 역주행은 기존에 있어왔던 것들과는 차별점이 몇 가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차별점들 덕분에, 그녀들은 앞으로 오래동안 사랑받을 가수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첫 번째로, ‘롤린’이 이미 방송활동이 끝난 지 오래된, 4년 전의 곡이라는 점이다. 발표 당시에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던 노래가 유튜브 알고리즘이나 입소문을 통해 역주행을 했던 사례들은 몇 차례 있었지만, 이렇게 오래 시간이 지난 노래가 화제의 중심이 된 적은 없었다. 2016년에 현재의 멤버로 2기로 데뷔한 브레이브걸스는, 지난해 발표했던 ‘운전만해’를 마지막으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체를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절망적인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가 찾아왔다. 분명 놀라운 일이었을 테지만, 4년 동안의 위문공연으로 다져진 내공은 그녀들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뎌온 멤버들끼리의 끈끈함도 남다르고, 지켜보는 팬 입장에서도 그동안에 묻혀 있던 숨은 명곡들과 유물 영상들을 발굴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할까. 그동안의 행보를 되새기며 앞으로 그녀들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두 번째, 팬덤의 코어층이 예비역이라는 점이다. 보통의 아이돌 그룹이라면 흔히 ‘여덕’이라고 불리는 여자 팬들이 주 타겟층이고 코어 팬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브레이브걸스가 흥하게 된 것은 위문공연 당시 그녀들의 열성을 다한 공연을 잊지 못하는 예비역들이 마치 은혜라도 갚듯 그녀들을 응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군대 내에서도 ‘롤린’을 인수인계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할 정도. ‘군통령 아이돌’이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무명 시절에 그녀들을 응원했던 팬들과 한 번쯤은 좋은 노래인데 왜 안 뜰까 하면서 몰래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놓고 들어왔던 사람들까지 가세했고, 입소문은 입소문을 다시 불러 앞으로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룹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서사가 있는 성공이라는 점이다. 가수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들, 요즘 시대 치고는 늦은 나이에 데뷔를 했지만 그마저도 성공하지 못하고 무명으로 떠돌아야만 했던 시기들, 그러나 그 시기에도 무대에서만큼은 미소를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해 즐겼던 모습들,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한 그녀들의 과거가 다시 조명받는 것은, 어쩌면 그녀들 또한 어쩌면 이 무대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실제로 멤버 유나의 인스타그램 라이브 영상에서, 그녀는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다음이 올지 모르겠다’ 등의 말을 하기도 했다. 멤버 4명 모두가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던 시기에, 최선을 다해 임했던 위문공연 편집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았고, ‘노력한 사람에게 행운이 찾아온다.’라는, 조금은 진부할지도 모를 이 서사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것이 아닐까 한다. ‘아이돌(Idol/우상)’이라는 단어 자체의 본래 뜻처럼, 그녀들을 바라보며 우울한 사람들도, 지친 사람들도 조금은 희망을 얻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지금 그녀들의 1위를 단순한 행운으로 치부할지도 모른다. 나 또한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오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그 타이밍이 ‘지금’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온다는 것을 브레이브걸스에게서 배운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용기를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을 믿고, 자신의 길에서 노력하는 것,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 즐기는 것이다. ‘용감한 소녀들’, 그녀들의 앞날을 응원하고 기대하는 이유는 보통의 사람들 모두가 꿈꾸는 성공과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은 가족, [미나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