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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필록 Mar 07. 2021

결국은 가족, [미나리]

나도 모르게 자라는 유대

현재 극장 개봉작 중 가장 화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미나리]를 보고 왔다. 80년대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 이민자 가족들의 삶을 통해, 영화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관람하지 않은 분들께서는 유의하여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 일을 하던 제이콥(스티븐 연 분)과 모니카(한예리 분) 부부는 그들의 자녀인 앤(노엘 케이트 조 분), 데이빗(앨런 킴 분)과 함께 한적한 시골 마을인 아칸소로 이사를 온다. 집 앞의 벌판을 개간해 농사를 지어보려 하는 제이콥, 모니카는 그런 데이빗의 결정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일단을 그를 지지해주기로 한다. 심장이 안 좋은 아들 데이빗의 병원이 너무 먼 탓에 모니카의 어머니 순자(윤여정 분)까지 같이 이사를 오게 되며, 다섯 가족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그려진다.


영화에서 순자는 전형적인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첫 만남에서부터 김치며 다시 멸치들을 비닐봉지에 싸오는가 하면, 몸이 약한 데이빗에게 한약을 달여 먹이는 모습까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머니상이다. 반면 미국의 생활방식이 익숙한 데이빗은 그런 할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할머니 몸에서 나는 냄새도 싫고, 맛있는 ‘마운틴 듀’ 대신에 쓰기만 한 한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도 싫다. 더군다나 자신의 잠자리마저 할머니와 함께라니, 어린 데이빗이 할머니에게 자신의 오줌을 몰래 먹이는 것도 데이빗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를 한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이콥은 ‘가족을 위해서’라며 반복되는 일을 벗어나고자 농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낯선 환경에서 처음 도전한 일이 그리 쉬울 리가 없다. 난관과 실패에 부딪힐 때마다 모니카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모니카는 제이콥과 생각이 다른 사람이다. 반복되는 일이라도 좋으니 그저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가족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으면 만족한다. ‘한 탕을 노리는’ 제이콥과 ‘지금이 편안한 것에 만족하는’ 모니카는, 모순적이게도 제이콥의 농사가 마침내 결실을 맺고 데이빗의 상태가 기적적으로 호전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에, 그 갈등이 폭발하고야 만다.


순자와 데이빗의 귀여운(?) 갈등과 그에 비해 꽤 묵직한 제이콥과 모니카의 갈들을 잔잔하게 풀어낸다.


이처럼 영화는 순자와 데이빗, 제이콥과 모니카,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을 낯선 미국 땅을 배경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갈등은 예고치 않게 개입된 외부요인(순자의 병과 농작물의 화재)으로 인해 극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 사건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끝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한 채 멀어지게 되었더라도, 서로의 소중함을 언젠가는 깨달았으리라 생각한다. 2021년의 관객들이 쉽게 겪어보지 못한 배경을 하는 영화가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겪는 가족들 간의 갈등을 다룬 보편적인 주제를 이야기하기 때문일 테다.


철없던 시절 가족들과 참 많이도 다투었던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지금보다 열 배는 더 예민한 감성을 가지고 있던 때에는 사소한 것에도 화가 났었더랬다. 그 스트레스를 어찌하지 못해 가장 가까운(그리고 내가 무슨 짓을 하여도 이해해줄) 엄마에게 모진 말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굴다가도 당장 내일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을 차려주고, 당연하다는 듯 우리는 대화를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좋은 가족 구성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독립하여 혼자서 생활을 하며 한 달에 두어 번 만나고 있는 지금이 오히려 더 애틋하달까. 가족이 부재함으로 인해 그들의 소중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탓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제이콥은 순자가 가꾸어놓은 미나리밭을 찾는다. 제이콥이 고군분투하고 애지중지하며 일구었지만 결국엔 불에 타서 사라진 농장과는 다르게, 미나리는 아무리 척박한 땅에서도 알아서 잘 자란다. 가족이라는 유대는 그런 것이다. 일단 가족이 되고 나면, 그것이 좋든 싫든, 뿌리를 내리고 알아서 내 삶 속에서 자라나게 된다. 가끔 그 존재를 잊어버리고 다른 것에 집중하게 될지언정, 결국에 내가 기댈 곳은 가족인 것이다.


순자의 캐릭터를 만나며 영화를 보는 내내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다. 생전에 시장에서 생선 파는 일을 하셨던 할머니의 품에선 항상 비릿하고 쿰쿰한 생선 냄새가 났다. 싫어하기만 했던 그 냄새가 지금은 너무 그립다. 가까이에 있으면 싸우기만 하고 죽을 만큼 싫은 게 가족이라지만, 결국은 가족,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미나리처럼 입맛이 도는 곳은 언제나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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