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플레이스테이션을 구매하고 가장 처음으로 엔딩을 본 게임, 게임 자체에 소질이 별로 없는 데다 푹 빠져서 하는 편이 아닌 내가 어떤 게임보다도 몰입했을 만큼의 게임성과 재미 요소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다름 아닌 좋은 스토리에서 나오는 생각이 많아지는 주제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은 게임 엔딩을 볼 때 좋은 영화를 보고 났을 때의 여운을 느끼게 했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2038년 최첨단 인공지능이 탑재된 안드로이드가 보편화된 세상의 미국 디트로이트, 사람들은 안드로이드가 주는 편리함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안드로이드에 의해 일자리를 잃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당하게 되는 문제도 안고 있었다. 게임의 진행은 각기 다른 환경과 임무가 프로그래밍된 세 명의 안드로이드인 카라, 마커스, 코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여성 안드로이드인 카라는 보모로서 일하고 있다. 안드로이드 때문에 실직자가 된 토드의 집에서 토드의 딸인 앨리스를 돌보면서 집안일 또한 하며 살아가지만, 안드로이드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알코올 중독자인 토드는 틈만 나면 폭력적으로 돌변하기 일쑤다. 카라는 이런 토드에게서 앨리스를 보호하기 위해, 프로그래밍된 명령을 어기고 본인의 의지대로 앨리스와 함께 토드의 집을 탈출하게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앨리스 또한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서로를 딸과 어머니로서 여기는 카라와 앨리스는 그렇게 프로그래밍된 것일까, 서로의 의지에 의해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일까.
한편 마커스는 이름난 화가인 칼의 비서로 일하고 있다. 칼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기에, 그가 그림을 그리는 데에 필요한 도구들을 사거나 그림을 그릴 때 보조 역할을 하도록 짜인 안드로이드이다. 칼은 이 세계관의 다른 인간들과는 다르게, 안드로이드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도와주려고 하는 인물이다. 마커스는 (그것이 프로그래밍된 것이든 자유의지이든 간에) 그런 칼을 따르고 신뢰한다. 그런 마커스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그를 시기하고 경멸하는 칼의 아들 리오가 어느 날 칼의 저택을 찾아와 다짜고짜 칼에게 돈을 요구한다. 인자한 아버지와는 달리 약물에 찌들어 사는 리오의 요구를 칼은 거절하지만, 얼마 후 칼과 마커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칼의 저택에 몰래 들어와 작품을 팔려고 시도하다가 칼과 마커스에게 발각되고 만다. (게임상에서는 여기서 분기가 생기며 마커스가 리오와 싸울 것인지 말 것인지에 따라 스토리가 약간 달라지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마커스는 칼의 저택에서 도망치게 되며, 그 와중에 경찰의 총격에 맞아 폐기장에 버려지게 된다. 폐기장에서 다시 겨우 의식을 회복한 마커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결정하라'는 칼의 조언을 생각하며, 스스로의 자유 의지를 찾아 행동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코너는 '안드로이드 경찰'로 활동하는 인물이다. 앞선 두 안드로이드보단 훨씬 고성능의 안드로이드 개체로, 사이버라이프(안드로이드를 생산하는 회사) 본사에서 안드로이드 불량품들이 일으키는 사건에 대한 수사를 위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이기에 그럴 만도 하다. 사이버라이프 본사의 명령에는 절대복종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에 초반에는 불량품 안드로이드에게 냉혹한 모습을 보이지만, 사건을 겪어가면서 그리고 파트너로 만나게 된 인간 형사인 행크의 영향으로 인해 점차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며, 그 또한 불량품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안드로이드 동료를 무참히 파괴하는 임무를 맡은 안드로이드로서의 삶과 실패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 인간적인 형사 행크 같은 삶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코너는 어떤 선택을 내릴까.
이처럼, 게임은 세 명의 안드로이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우리에게 플레이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상황과 감정에 공감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비인간적인 선택지와 인간적인 선택지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 인간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안드로이드인 세 주인공이 누구보다 인간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체험하게 된다. 코너의 이야기에서 수없이 등장하는 '불량품'들은 사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누구보다 '인간적인' 선택을 했던 자들이었다. 다만 그들이 '안드로이드'이기 때문에, 불량품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게임을 통해 이러한 차별을 직접 느끼고, 반대하고, 저항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결국 인간으로서 인간의 입장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게임에서야 현실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안드로이드'와 '인간'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지만, 당장 지금 현실에서도 이러한 차별과 갈등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부자들이 부자들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정치인과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 논리적으로 따진다면 그것은 서민들이 서민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외치는 정치인과 정당을 지지하는 것과 완벽히 일치한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나라 간의 갈등이 있을 때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욕하고 비난하는 것을 우리는 당연하다고 여긴다. '안드로이드'로서 게임의 엔딩을 보고 난 후에, 안드로이드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고 탄압하려 했던 인간 무리를 게임 속에서 그려진 것처럼 악의 세력으로 봐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것은 다만 내가 게임 속에서만큼은 '안드로이드'였기 때문에 느끼는 일시적인 동정심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 정말로 이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 또한 안드로이드는 한낱 깡통로봇에 불과하다며 무시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게임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생각이 들게 함으로써 우리 사이에 나도 모르게 만연해있는 차별들에 대해 다시 한번 경각심을 가지고 어떠한 태도로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까지가 내가 속한 집단을 대표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고 어디부터가 차별인 것인지를, 조금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 경험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경계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인문학적 사유와 정답이 없는 질문들이 가득한, 마냥 즐기기만은 어딘가 송구스러웠던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