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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필록 Dec 02. 2021

가을의 끝에서, 함안

만추를 만끽하다

지난 11월 중순, 나뭇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가을을 만끽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함안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불과 며칠 전에 급하게 정한 일정이라 함안의 매력을 모두 다 느끼고 오진 못했지만, 그래도 가을이 가장 무르익었을 때 보고 와서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함안은 제가 살고 있는 부산에서 한 시간 반 남짓만 차를 달리면 도달할 수 있는 곳입니다. 경남권에서는 나름 대도시인 창원의 바로 옆에 붙어있지만 그리 크지 않은 소규모의 시골마을인데요. 예전부터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다가 이번 기회에 찾게 됐네요. 오히려 거리가 가까우면 잘 가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악양생태공원'입니다. 남강을 끼고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가을에 가면 넓은 핑크뮬리 밭과 걷기 좋은 산책로가 있어 나들이 가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악양루'도 만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누각으로 규모는 작지만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모습이 신비롭습니다. 악양루에 올라 바라본 남강 습지의 모습은 (흐린 날씨 탓에) 어딘가 조금 슬퍼 보입니다.


다시 생태공원으로 돌아와 핑크뮬리 밭을 찾습니다. 평일에 찾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핑크뮬리 밭에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반면에, 이곳 생태공원의 핑크뮬리는 규모에 비해 사람이 적더군요. 아무래도 함안이 관광지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어요. 핑크뮬리는 보고 싶으신데 사람이 적은 장소를 찾으신다면 이곳이 적합하지 않을까 합니다.


악양루와 악양생태공원의 풍경들


다음으로 찾은 장소는 '무진정'입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된 곳으로 조선시대의 문신이었던 '조삼'이라는 사람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그의 거처에 정자를 짓고 그의 호를 따 '무진정'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차를 대고 들어서자마자 연못 중간에 있는 자그마한 정자가 보입니다. 작은 정자는 최근에 새로 지은 것으로 보였어요. 정자 처마에 비치는 연못의 물결이 예뻤어요. 반대편 길로 걸어가면 진짜 무진정이 나옵니다. 고즈넉한 한옥 사이로 물든 나무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줍니다.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경치를 감상했습니다.


무진정의 가을 풍경


무진정으로 들어왔던 길과 반대편 길로 내려가면 근처의 카페와 식당들이 나옵니다. 점심시간이었지만 배는 그렇게 고픈 편이 아니었기에, 잠시 쉴 겸 카페에 들렀습니다. 무진정 호수가 통창으로 보이는 카페도 있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바로 옆 가게인 '카페 식목일'로 선택했습니다. '식목일'의 초성을 따서 만든 '△□●'의 로고가 최근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을 했던 K-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연상시키더라고요. 시그니처 메뉴인 '식목일 라떼'와 '메이플 크로플'을 주문했습니다. 음료의 비주얼이나 맛, 내부 인테리어도 456억 정도의 가치를 한달까요. 특히 제가 앉았던 자리에서 창으로 보이는 가을 나무의 모습이 매우 예뻤어요.


우연히 들른 카페 식목일. 창문에서 보는 뷰가 최고였다.


다음 장소로 부지런히 차를 몰아갑니다. 함안 내에서도 시골길을 따라가야만 나오는 숨겨진 명소 '함안향교'에 도착합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면서도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나..?' 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외진 곳에 있더라고요. 주차시설이나 표지판도 마땅치가 않은 곳이라 가시는 분들은 주소를 확인하시고 내비게이션을 보고 가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함안향교 입구에는 딱 봐도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나중에 관리자분께 물어보니 600년가량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바닥에 떨어진 은행잎만 해도 바닥 자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쌓여있었어요. 노란색 카펫을 밟고 가는 기분이랄까요. 고즈넉한 한옥 건물과 오후의 햇살, 노란 은행잎의 조화가 지금이 가을의 절정임을 충분히 느끼게 해 주었어요. 원래는 여행 계획에서 빼려고 했던 장소였는데 들리지 않았다면 후회할 뻔했습니다.


함안향교. 떨어진 은행나무 잎을 밟는 소리가 정말 좋았다.


함안 여행의 마지막 장소는 '입곡 군립공원'입니다. 함안향교가 노란 은행나무의 천국이라면, 입곡 군립공원은 빨간 단풍나무의 천국이라고 해야 할까요. 단풍나무로 뒤덮인 산책로가 특징인 공원입니다. 규모가 꽤 큰 편이고,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함안향교와는 비교가 되는 점이었어요. 저수지를 낀 산책로를 걸으며 단풍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로 저도 곧 저물어갈 마지막 가을을 눈에 담아봅니다. 나무들마다 물든 농도가 다르고 크기도 달라서 계속 걸음을 멈추게 되는 매력이 있는 곳이에요.


단풍길의 끝에는 저수지의 반대편으로 갈 수 있는 출렁다리가 있습니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다시 시작점으로 오는 길에는 단풍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저수지를 제대로 볼 수 있는데요, 빨갛게 물든 숲과 저수지의 물결이 수채화 같은 느낌을 줍니다. 양쪽이 다른 매력을 가진 길이 있어 돌아오는 길도 심심하지가 않았습니다.


입곡군립공원의 단풍과 저수지.




당일치기 여행으로 짧게 다녀오긴 했지만, 함안은 가을을 느끼기에 정말 좋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같이 혼자 여행을 하며 생각정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알맞은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여행지라, 가을과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어느새 계절은 가을을 지나 12월이 되었네요. 지난가을을 그리워하고, 다가올 다음번의 가을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던 만추의 고장, 함안이었습니다.


가을에 가야 제 맛인 고장, 함안. 내년 만추에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최근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함안 여행 영상을 올렸습니다. 사진과 글로만 부족하신 분들은 영상도 봐주시면 감사합니다 :)


함안 당일치기 여행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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