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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Aug 05. 2022

1일 차) 비행기에서 베트남 돈 환전하기

아이와 함께한 기이하고 유쾌한 베트남 여행기


아이와의 베트남행은 불과 2  만하더라도 전혀 계획에 없었다. 지인분이 베트남에 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따라가야지 하는 충동과 티켓팅의 물리적인 속도가 빨랐고, 베트남에 가서 베트남 국수를 먹고 싶다 아이의 아주 명료하고 또렷한 욕구가 너무 웃기고 기특하다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어쨌든 아와의 베트남 여행 1일 차, 비행기에 탑승하고 이륙한 지 30분 정도였다. 앞 좌석에 꽂혀있던 기내 면세품 안내문 같은 브로셔를 요리조리 보던 아이는, 나에게 도시락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배고프다고 했다. 화장품이나 향수 등 면세제품 판매에 대한 안내문이라고 생각했던 브로셔에는 베트남 국숫집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도시락 사진이 알록달록 실려있었다. 분명 공항에서 나와 함께 팔뚝만 한 치즈 샌드위치를 먹었던 아이 었다.


또 배고프다고? 어떻게 배고플 수가 있지? 싶은 생각이 들면서 통통한 손가락으로 단호하게 가리키는 도시락 하나를 무시할 명분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도시락 옆에 적힌 금액을 보고, 저가항공이라 기내식이 없고 사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4시간 후면 도착하는데 굳이 비행기 안에서 또 뭘 먹어야 하나, 귀찮은 마음이 휙 들었는데 또 한편으로 베트남 가는 비행기 안, 도시락을 사 먹은 것도 추억이 되겠지 싶은 마음에 승무원을 부른다.


아이가 야무지게 가리키던 스파게티 도시락을 시켜 먹고 계산하려는데, 100,000 VND 가격이 눈에 밟힌다. 처음엔 0이 너무 많아 당황했는데 곧이어 베트남 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2차로 더 당황했다. 공항에서 달러로만 바꾸고 나중에 환전해야지 하는 계획이었다. 승무원에게 50달러 지폐를 건네는데, 승무원 얼굴이 갑자기 굳는다. 달러로 바꿔줄 잔돈이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credit card?”라고 다시 물었다. 얼굴이 더 굳는다. 응.. 카드계산도 안되는구나. 약 5초간의 침묵과 함께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던 것 같다. 내 옆에는 베트남으로 귀국하는 것 같아 보이는(여행자만의 특유의 들떠있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음. 어쨌든 순전히 나의 추측이다) 베트남 남자분이 앉아계셨는데, 나와 승무원의 침묵 사이에서 꽤 곤혹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며칠 전, 업무 상 카드결제 단말기를 일주일 안에 개통시키기 위해 미친 듯이 서둘렀던 것이 머릿속에 스쳤다. 나도 일 때문에 카드 결제 준비를 그렇게 했었는데, 너네 비행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한테 기내식 팔면서 잔돈이나 카드 결제 안되면 어쩌라고 하는 마음이 내 안에 순간 치밀어 올라왔던 것 같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일까? 승무원은 “웨잇”이라고 짧게 얘기하고 내 앞에 황망하게 사라졌다. 그러고는 동료 승무원들끼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에게 다시 와서 “wait please”라고 외치고 다시 사라졌다. 비행시간은 아직도 4시간이나 더 남았고, 설마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돈을 떼먹진 않겠지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못 받을 경우, 4만 원 정도 손해라는 최악의 순간을 상상하며, 불안감을 내렸다.



아이는 나와 승무원의 실랑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받아 든 따끈따끈한 스파게티를 맛있게 먹으며 통통한 엄치를 척 들어 보여줬다. 보기엔 그냥, 편의점에서 파는 비비고 스파게티 느낌 같은 느낌인데, 넌 참 맛있게 먹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고, 이렇게까지 먹여놨으니 난 좀 자도 됐겠지? 하는 안도의 마음을 품은 그 찰나, 천연덕스럽게 목마르단다.


응.. 그래.. 목이 마르는구나.


다시 승무원을 불렀다. “Could I have a glass of water pease?” 승무원은 “오께이~”라는 진한 베트남 뉘앙스가 섞인 영어를 외친 뒤, 물 한 병을 가져다주면서 답했다. “투 달라~”



아까 잔돈 받을 것도 남았으니, 흔쾌히 거기서 까서 계산하겠지 싶어 흔쾌히 나도 따봉을 외치 듯 답했다. “오께이!”

아이의 스파게티 도시락은 냄새가 꽤 진했는데, 그 냄새가 퍼지면서 주위에 한 사람씩 기내 도시락을 시켜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주문을 한참 받던 승무원이 나에게 다가왔다. 베트남 뭉치돈을 자신의 지갑에서 꺼내 나에게 주었다. 이 순간 진심으로 기묘한 느낌과 간질간질 웃음이 나올까 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파안대소>까지는 아닌데, 이 비행기에서 잔돈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판 대금을 자기 지갑에 넣어뒀다가 나에게 와서 잔돈 뭉칫돈을 건네는 이 모든 맥락이 너무 간질간질하게 웃겼다.


내가 웃을까 말까 고민하는 맥락은 전혀 상관없이 승무원이 나에게 말했다. 대략 해석을 하자면 아래와 같았다.


“네가 받을 돈, 42불, 하지만 나 거스름돈 없어. 그래서 다른 사람들 기내식 팔아서 돈 모아 왔음. 그런데도 42불 거슬러줄 베트남 돈 부족해. 그래서 여기 20불 달러 한 장 그리고 나머지 444,000 베트남 돈 줄게! 씩~”


고마워..라고 답한 다음, 예준이가 먹고 나온 도시락 쓰레기를 건네려 하자, 다시 “웨잇~” 하고 사라졌다.


그렇게 아이가 먹은. 스파게티 도시락 쓰레기를 3시간 동안 가지고 있다가 착륙 5분 전이 되어서야 회수해간다. 이렇게, 나는 비행기에서 수수료 없이 달러에서 베트남 돈으로 환전을 했다는 이야기.  (아이와 함께한 기이하고 유쾌한 베트남 여행기 1일 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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