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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개념 육아 르포르타주

나는 왜 아이에 대해 끊임없이 쓰는가

by 룰루박

이미 지각해버린 시간에 집에서 출발한 아이는 학교 정문 코앞에서 친구 두 녀석과 학교 쪽으로 걸어가다 되돌아오는 짓을 한참 반복하고 있었다. 아파트 5층에서 바라보는 아이는 손톱보다 작았는데, 이상하게도 애가 어떤 표정으로 저러고 있는지 보이는 듯했다.



분명히 일종의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 듯한데, 생각보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한참을 지켜보다 왜 저러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마음이 툭 뛰어올랐다. 그런데 동시에, 친구 한 두명만 있으면 몸뚱이 하나로 저렇게 놀 수 있는 아이가 확실한 듯하여 입맛이 씁쓸 해졌다.



언제까지 저러나 지켜보려다 영상을 찍고 있던 내 손이 너무 시려 순간 못 참고 소리 질러버렸다.


"000! 학교 가!"



어느 순간 나의 일상을 기록하던 일기는 아이의 #르포르타주로 콘셉트가 변경된 듯하다.


소위 르포라고 줄여서 쓰이기도 하는 이 단어는 프랑스어로 탐방기사를 의미하며 허구가 아닌 사실에 대한 보고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단순한 기록이 아닌 취재한 내용을 일종의 다른 형태로 재구성하거나 갈무리를 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르포르타주에 해당한다고 한다. #땡스투 #네이버 사전



왜 사전까지 찾아가며 평소에 쓰지도 않는 단어가 떠올랐을까? 궁금했다.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꽤 성실하게 찍고 무언가를 써 내려갔던 것 같은데 이것이 단순한 기록이라기보다는 그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는 어미(제삼자의 인칭)로서의 순간 떠오르는 심상에 대해서 곱씹어 보며 여러 가지 상상을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라, 며칠 전, 업무에 대한 피드백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있는 사건 그대로보다 나의 감정과 생각이
너무 많이 반영된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위 피드백을 듣고 생각이 꽤 복잡해졌는데 이게 아마 머릿속에 잔상처럼 계속 둥둥 떠다니고 있었나 보다.

내 개인적인 감정, 생각을 다 빼고 전달한다는 나의 업무 영역 대해서 잠시 상상을 해보았다.



아.. 너무 재미없었다.


암튼 이러한 일련의 업무와 연관된 개인 생각을 곱씹다 오늘 아침, 아이의 학교 가는 영상을 찍다 보니 나는 사실 그대로보다 그 사실에 이면의 것을 상상하고 곱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런 점에서, 늘 나에게 곱씹을 거리를 주는 아이와 직장의 존재가 참.. 역설적이지만 좋으면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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