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_알베르 카뮈
재난은 인간으로부터 시작된다.
#. 이직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지내고 있다. 익숙지 않은 업무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삐걱거림은 나에게 불안의 씨앗을 야기했다. 처음엔 돌아가고 싶었고 두 번째는 하루하루 버티자는 생각을 하게 됐으며 세 번째는 현재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일상을 회복시키고 있다. 몇 단계에 걸친 사고의 환기를 통해 불안감을 개선시켰고 현재는 새로이 익숙해졌다.
#. 페스트를 읽으며 피상적으로는 코로나19 시국과 연관 지어가며 보게 되었고, 두 번째로는 인간 자체가 고난을 겪게 되었을 때의 혼란을 연관 지어보기도 했다. 나에겐 이직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의 혼란감이 오랑시가 페스트를 맞닥뜨린 혼란감과 오버랩되어 다가왔다. 그렇다면 이 혼란 속에서 어떤 자세를 임해야 할까? 책 속 상황들과 연관을 지으며 생각해 보았다. 랑베르처럼 달아나려 해야 하나? 타루처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코타르처럼 수단과는 별개로 상황을 역이용하는 게 나을까? 고난은 공평하게 다가오지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태도에 따라 피해의 차이가 난다.
#. 리외는 의사로서 이 상황들을 최전선에서 경험하고 대응하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서술해 나간다. 그의 냉정을 유지하며 객관적인 어조로 묘사되는 오랑시의 모습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문제의 근원을 살펴보게 된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려다 갈등을 위한 갈등을 야기하고 서로를 다치게 만드는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다. 감정은 긍정적인 것이지만 어떨 때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기도 한다. 혼란을 맞닥뜨렸을 때의 리외의 태도는 보다 명쾌하게 문제의 근원을 들여다보는데 도움이 된다. 관찰자의 역할에 딱 어울리는 화자인 것 같다.
#. 코타르는 악인인 걸까? 그는 페스트 이전에 삶 속에서 정신이상을 겪는 듯 보이다가 페스트가 도래하며 정상적이고 활발한 삶을 살아간다. 코타르는 불법과 합법의 사이가 모호해진 혼란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며 자신의 안정을 취한다. 그것은 페스트의 존재와는 상관없는 것이기에 페스트에 둘러싸인 삶이 안정화가 되었을 때 코타르는 다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전에 지진이 일어야 한다는 둥 자신이 페스트를 야기한 것은 아니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것, 이런 모습으로 보아 그는 혼란이 멈추지 않고 자신의 안정이 이어지도록, 사람들이 더 혼란스러워지도록 술이나 비행을 저지르며 혼란이 끊이질 않길 바랐던 것 같다.
#. 혼란의 끝은 무엇일까? 책에서는 쥐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며 일상의 회복을 암시했다. 그리고 소리 없이 사라지는 페스트에 혼란은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다. 안정을 되찾은 도시의 모습은 활기를 띄우지만 리외는 한켠에 불안을 가지고 있다. 원인 모르게 나타나고 사라진 페스트는 사실 사라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행하는 무언가 때문에 드러나는 페스트는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어느 시기 어떤 형태로든 다시 나타날 것이다.
#.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유명한 니체의 어록이자 좋아하는 구절이다. 내게도 어느 정도의 혼란은 늘 성장의 발판이 되어주었다. 다만 혼란이 성장의 발판이 되어주기 위해선 항상 나 스스로를 점검하며 혼란의 원인을 규명해야 추후에 발생하는 사건에 유연한 사고를 제시해 주었다. 경험론적인 무언가가 만들어지기 위해선 자신의 경험을 구체화하고 정형화해서 어디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는 페스트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며 열린 결말로 마무리했지만. 극 중 리외가 현상들을 정리하는 기록을 한다는 것. 문제를 일반화하고 다시금 반복되지 않도록 오늘의 혼란을 교훈으로 만들었기에 극의 미래는 조금 더 밝은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