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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현 Feb 25. 2019

영화 <사바하>

절대 현혹되지 마소....

 ‘사바하’(娑婆訶): 본디 범어 진언의 Svaha를 한자로 음차 한 것, 사전적으로는 '잘 말했다.'는 뜻이다. 

흔히 진언의 뒤에 붙여 ‘~이 이루어지소서’라는 뜻을 표현한다.     

 

 이상한 제목의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호러 장르의 비성수기인 계절에 당당하게 개봉한 자신감과 며칠 전부터 각종 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마케팅 때문이다. 마케팅은 참 잘한 거 같다, 물론 당일 예매순위도 한몫했다.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참 애매하다는 것. 

 이유를 말하자면 이 영화에 대해 기대하는바 즉 오컬트라는 장르가 주는 영화적 재미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

 오컬트 무비라는 데 별로 무섭지도 않고, 그렇다고 손에 땀을 쥐는 박진감 넘치는 대결도, 심리를 쥐락펴락 하는 서스펜스도 모두 부족하다. 영화를 보고 기억나는 것은 그나마 봐줄 만한 사대천왕에 대한 몰랐던 지식 정도(진선규의 새로운 매력 발견?). 근데 그렇다고 완전히 말도 안 되는 망작이냐 하면 그렇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애매하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이정재, 유지태, 박정민, 정진영 등 나름 충무로에서 인정받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데도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아무리 배우가 좋아도 이를 담을 그릇이 시원치 않으면 영화는 산으로 간다, 영화가 입고 있는 옷인 장르적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 패착.  물론, 상업영화가 어떤 장르를 표방했다 해서 그 컨벤션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기본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관객을 만족시키는 기본이 그것에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액션 영화라고 선언한 영화가 철저히 그걸 배반했을 때를 생각해 보라,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정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바하>에는 그런 이유가 안 보인다, 분명한 호러 그중에서도 초자연적인 존재를 다룬 소위 ‘오컬트’인데 그 필요조건들이 거의 보이지 않거나 그나마 있는 것도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자면, 오컬트는 선과 악의 대결인데, 거의 마지막까지 악의 존재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반전을 위해서인가? 반전 일진 모르지만 그를 위해 상당한 분량이 너무 의미 없이 흘러간다. 

 게다가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전혀 아닌 걸로 밝혀지는 소녀와 그녀의 쌍둥이 언니라는 ‘맥거핀’까지 있어 가뜩이나 어리둥절한 관객의 이해를 방해한다. ‘맥거핀’은 원래 중요하지 않은 것에 집중하게 해서 뒤통수를 치거나 또 다른 극적인 효과를 위해 사용하는 것인데 굳이 왜 이런 장치를 사용했는지 잘 모르겠다. 


 지칠 무렵 드러난 절대 악. 무언가 대 사건이 벌어질 듯한데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마지막 아마겟돈(선과 악의 최종 전쟁)에서 보여주어 야 할 미덕인 긴장감, 박진감 그 어느 것도 찾기 어렵다, 갑작스러운 라이터뿐이다.(이걸 굳이 왜 숨겼을까?)

  아니 겨우 저걸 보려고 내가 2시간여를 앉아 있었단 말인가? 가장 신경 써야 했을 시퀀스를 저렇게 처리하다니... 아니 신경을 쓰지 않았다기보다 결말에 이르기까지 구축되었야 할 요소들이 부재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 정확하다.


  <오멘>, <엑소시스트>등 오컬트 영화의 걸작을 살펴보면 악의 존재가 처음부터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 실체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보여주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이와 동시에 그 악과 사투를 벌이는 인간의 존재를 무력하고 하찮게 함으로써 공포를 일으키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사바하>에선 그런 점층적인 전개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결론에 이르고 마지막 대결이 펼쳐진다. 그러니 심리적 준비가 안된 채 클라이맥스를 봐버렸으니 동의나 공감이 어려울 밖에 

 재료는 나쁘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이걸 왜 이렇게 전개를 시켰을까? 아쉽다.

 장르의 상투적인 컨벤션을 피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여 주어야겠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일까?

 다소 이분법적이고 상투적일 수 있지만 그걸 피해 갈 수 없는 것도 있는데 말이다. 욕심이 앞서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본 것 아닐까 싶다.

 결국, 무력한 나와 절대적 힘을 가진 초자연적인 존재와의 사투. 이 기본 중의 기본을 놓친 것이 이 영화의 패착이 아닐까? 


 이렇게 인물 구도 설정에 실패하다 보니 누구 하나도 존재감이 약하다, 상당히 괜찮은 배우들을 그냥 평면적인 존재로 밖에는 활용하지 못했다. 저 배우가 그 역을 맡아야 할 당위성이 과장 좀 보태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악을 묘사하기 위한 카리스마, 무력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 어떤 배역이 가져야 할 캐릭터가 성립할 스토리나 묘사가 부족해 그 어떤 배우도 자신의 매력을 표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박정민이 맡은 역할은 캐릭터가 180도 바뀌는 완전 변신에 가까운 인물이다. 근데 이게 잘 이해가 안 된다. 힘들다. 이유와 당위성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배우라도 밥상을 차려놓아야 하는데, 그게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배우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그 누구에게도 감정적으로 이입하고 동화되기 어려운 관객은 이야기에 빠져들 수가 없다.     

그나마 한 가지. <동방교>의 창시자 ‘김제석’이라는 인물 자체는 연출자와 작가가 고심한 듯한 흔적이 보인다.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그런데 아쉽다. 조금 더 세밀한 묘사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초반 쌍둥이에 대한 이야기 같은 맥거핀을 아예 없애고 복선 없이 단순하게 ‘김제석’에 집중했더라면... 그리고 이정재가 맡은 역할도 초반에는 나름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뒤로 갈수록 완전히 관찰자로만 고정을 시켰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박정민에게는 이상한 주문만 외우게 하지 말고, 평생 믿어왔던 그 어떤 것이 한 번에 무너지고 지금까지 와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을 좀 더 보여주었더라면,.. 하긴 영화는 선택의 문제다. 모든 것을 보여줄 순 없다. 시간 제약이라는 영화란 매체의 물리적 특성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은 중요하다 그래서 감독이 있는 것 아니겠나. 감독은 그 선택을 오롯이 홀로 해야 하기에 외롭고 고독한 것이다.


각설하고 정리하자면 <사바하>는 오컬트 영화가 가져야 하는 명확한 선악구도, 확실한 캐릭터 구축에 실패했고, 이 상태에서 전반부 스토리 전개의 산만함까지 더해져 후반부의 결말이 맥 빠지고 싱겁게 끝나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오컬트라는 장르라고 생각하고 관람한 나의 기대에서 온 실망일 수도 있겠지만. 이걸 다 무시하고 단순 오락 영화로서 생각하더라도, 결론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거 같다.

 단, 전술했듯이 ‘김제석’이란 악의 존재는 나쁘지 않았다. 단지 그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이 아쉽다. 

 아예 '이정재'가 맡은 목사 역, 맥거핀인 쌍둥이, 극의 완성을 위한 '박정민' 그 모든 곁다리 존재를 과감히 빼고, 혼란의 시대 속에 절망을 먹이로 거짓 희망을 심어 그 세력을 확장한 순정한 악마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더 좋았을 텐데... 

 늦지 않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같은 드라마로 만들어 보시라는 제안을 제작자인 '강혜정', '류승완' 감독께 드리고 싶다. 조금 더 매력 있는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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