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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현 Feb 07. 2019

영화 <우리 가족 라멘 샵>

바쿠테란 무엇인가?

 명절 연휴 마지막 날, 전날 먹었던 기름진 음식 때문인지 뭔가 간단한 것이 먹고 싶었다.

이를 테면 라면 같은.... 그런 생각을 하다 영화가 하나 떠올라 표를 예매했다.

 다양성영화라는 이름으로 소리 소문 없이 CGV 아트 하우스를 통해 개봉한 ‘우리 가족 라멘 샵’이란 영화다.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전에 다른 작품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예고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주 맛있게 라멘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게 참 맛있어 보였다. 

실제 내가 직접 무엇을 만들어 먹는 것보다 이른바 소위 ‘먹방’을 보는 것이 더 기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날 내가 그랬는지도 모른다. 익숙하고 비루한 것을 먹는 거보다 시각적으로 만족을 느끼고 싶은 마음. 왜 먹방을 ‘푸드 포르노’라고 명명하는지, 정말 적절한 표현이다.  

 여하튼 맛있는 라멘을 1시간 넘게 계속 보겠구나 하는 기대로 상영관에 들어섰는데, 영화는 시작한 지 채 20분도 지나지 않아 나를 배신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라멘 먹방’으로 포장한 마케터에게 속은 것이다.


'바쿠테 (bak kut teh)'라는 음식이 진정한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바쿠테


 칠리 크랩과 더불어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메뉴란다. 돼지갈비뼈를 각종 한약재와 함께 푹 고운,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곰탕과 비슷하다는데 솔직히 안 먹어봐서 잘은 모르겠다, 

 특이한 건 음식 이름인 ‘바쿠테’의 테(teh)는 차(茶)를 의미한다. 국을 먹고 차를 마시는 거까지 바쿠테인 거다. 마치 딤섬에 ‘차’가 포함되는 거처럼...     

 주인공 마사토는 타카자키(군마현)란 소도시에서 아버지 삼촌과 함께 라멘 가게를 하고 있다, 

맛도 있고 손님도 꽤 있어 보이는데 만드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그늘이 져있다. 아버지는 장사가 끝나면 사별한 부인을 그리며 알코올에 의존하고 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안타깝지만 자신에게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 늘 불만이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쓰러져 그대로 사망한다. 아버지의 유품을 뒤지던 중 어머니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어머니의 일기장에는 여러 가지 요리 레시피와 심경을 고백한 글이 있다. 하지만 마사토는 다 이해하지 못한다. 일기가 한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싱가포르계 중국인이었다.(글을 이렇게 써서 그렇지 무슨 출생의 비밀 이런 거 절대 아니다. 그런 걸 상상하지는 마시길)

 아버지는 싱가포르에서 일식집을 운영하였고, 쉬는 날이면 바쿠테를 먹으러 다녔는데

그 가게에서 마사토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그 가게 주인의 딸이었다.

마사토는 어릴 때부터 자주 먹었던 바쿠테를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의 동생 즉 외삼촌이 자주 해주었던 음식이었다.

 마사토는 공허한 마음을 달래려 싱가포르로 떠난다, 삼촌과도 해후하고 바쿠테 레시피도 배우며 조금씩 마음을 추스르게 되지만 할머니와 어머니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큰 절망에 빠진다.

 할머니는 일본인 사위를 인정할 마음이 없었다. 2차 대전 당시 싱가포르를 침략한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을 목격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결사적으로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사랑을 선택했고 그런 딸과 절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수년간에 만난 마사토도 손자로 인정하지 않고 냉대한다, 

 큰 충격을 받은 마사토. 할머니의 일본인에 대한 증오를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받지 못한 보통 일본인인 마사토가 어찌 그 적대감을 이해하겠는가? 

 마사토는 할머니의 증오를 이해하기 위해 일본의 저지른 전쟁범죄를 기록한 박물관을 찾는다. 아기를 던져 총검으로 찌르는 시합을 했다는 한 생존자의 증언을 들으며 마사토는 경악한다. 

 할머니의 증오를 이해하기 시작한 마사토, 그러나 그 가해자들과 손자인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다. 급기야 술을 마시고 할머니를 찾아간 마사토. 두 사람은 심하게 다투게 되고 두 사람의 마음의 간격은 더 커지게 된다.

 마지막 방법으로 마사토는 자신의 마음을 요리로 전달하기로 한다, 삼촌에게 배운 바쿠테에

라멘을 접목시킨 요리를 할머니에게 대접하기로 하는데... 과연 두 사람의 화해는 이루어질 수 있을까?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줄거리는 이 정도 까지...

스토리를 보면 이 작품은 음식을 소재로 하긴 하지만 그 자체가 주인공은 아니다. 

음식을 함께 하는 행위 그를 통한 추억. 그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테마인 거 같다.

그런데 제목과는 달리 영화의 거의 3분의 2가 싱가포르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정작 보고 싶었던 일본 라멘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바쿠테'라는 생소한 음식과 마사토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이 주를 이루었는데 스토리는 그런대로 감동과 따뜻함을 가지고 있어 볼만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눈물까지 흘렸다. 아 멜로드라마의 위대함이여.

 그런데 문제는 아쉬움이다. 왜 감독은 바쿠테라는 음식을 영화에 가져왔는가? 요즈음 베스트셀러가 된 어떤 책의 화법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바쿠테란 무엇인가'? 이런 의문이 든 데에는 이 바쿠테라는 음식이 영화적으로 크게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쿠테라는 것은 가난한 노동자들이 먹던 일종의 소울푸드인데, 싱가포르에 사는 중국인들에게 그 음식은 어떤 의미인지 그런 것들이 좀 더 설명이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단순히 유년기의 추억으로만 축소되어 있어 그것이 아쉬웠다. 

 역사적 과거로 화해가 쉽지 않은 두 나라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음식이라면 그 이유와 설명이 조금은 더 있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아시에서 특별한 의미인 일본인 그리고 그들의 만행, 그로 인한 사람들 간의 불화 등 이런 묵직한 주제들을 피해 당사국인 싱가포르의 감독이 어떤 음식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다면 왜 바쿠테이고 왜 라멘인지 조금 더 선택의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더더욱 심각한 것은 이 '바쿠테'가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음식을 영화적인 소재에서 매력포인트로 승화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니 굳이 왜 일본인 남자가 등장했는지도 모르겠다. 영국 출신의 백인이 등장했어도 스토리를 전개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을 거 같다. 가해자라는 면에서는 같았을 테니까.


 이 영화의 결점을 쓰다 보니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 ‘이안’ 감독의 <음식남녀>다. 

‘중화요리’라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았어야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감독은 음식이 만들어지는 지난한 과정을 정성스럽게 보여준다. 단순히 세팅된 음식을 먹는 장면만 봐서는 아버지의 인생, 부녀관계, 선택 등을 설명할 수 없다. 또한 화려한 볼거리로도 복무했음은 더할 나위 없다.

 

 영화를 막 보고 나왔을 때는 얼큰한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며 나올 때 느껴지는 개운 함이 있었는데, 이 글을 쓰려 내용을 복기하다 보니 조미료만 듬뿍 든 인스턴트 라면을 흡입했다는 자괴감이 드네. 무언가 개운치 않은 그런 느낌이다.

 단순한 먹방이라면 상관없지만 영화는 어느 것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것 없이 감독이 의미를 가지고 화면에 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그게 영화고 단순한 동영상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도시국가 싱가포르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중국이라는 특성. 이런 자신의 입장과 처지, 역사적인 맥락까지 '바쿠테'라는 음식을 통해 담아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니 오히려 멜로드라마보다 차라리 '바쿠테'를 주인공으로 음식에 집중했으면 독특한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 한 편. 음식 한 그릇 만들기도 힘들고 맛을 내긴 더 힘들다. 그러하기에 좋은 음식이나 영화에는 항상 사람들이 몰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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