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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정원 Jul 28. 2021

땅에서 살기

2019년 여름, 땅집에 입주하며



내 어릴 적 꿈은 우주비행사가 되는 것이었다. 꿈 많던 과학소녀는 별이 나오는 책을 읽으며 그 꿈을 꼭 이루리라 다짐했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면 수학여행은 달로 가게 될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과는 달리 일반인을 태우고 지구를 출발하던 우주왕복선이 폭발해 버렸고 내 꿈도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우주 왕복선은커녕 신혼여행 가기 전까지 비행기 한번 타보지 못했다.

꿈을 잃은 나는 사람은  밟고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것이 무섭다던가 제트기류 때문에 흔들리는 비행기가 무서웠던 적은 없었지만 (사실 흔들리는 비행기가 살짝 떨어질  기분은 생각보다 괜찮다) 갑갑한 비행기보다는 단단한 땅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 다시 날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했다. 우주비행사도 아니고 낙하산을 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공중을 가르며 날고 싶어 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사는 것이 답답해서인지,  삶의 온전한 주체가 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단순한 호르몬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날갯죽지가 가렵고 자꾸만 날고 싶어 졌다. 누군가 구실을 만들어주면 날아오르자. 퇴근한 남편이 말을 걸면  창으로 뛰어내려버리자. 11층에 있던 집은 전망이 좋은 곳이 아니라 처참한 사고가 언제든지 일어날  있는 위험한 장소가 되어 있었다. 가족들에게 집은 더 이상 편안한 곳이 아니었고 나의 무드가  분위기를 장악했다. 무서워졌다.


땅에서 살고 싶다. 하늘 위에 떠 있는 집이 아니라 땅에서 살고 싶어 졌다. 기분이 나아질 때마다 유튜브로 전원주택 매물을 보기 시작했다. 아들의 거취가 결정되면 생각해 보자고 하던 남편도 내 결정에 따를 테니 좋은 집이 있으면 한번 가보라고 했다. 대신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 혼자 지내도 안전한 단지, 우리 경제사정에 맞는 가격



한없이 미적거리지만 가끔 미친 추진력을 보이는 나는, 그 조건에 보태어 스트레스 없이 관리할 수 있는 넓이, 아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구조를 고려해 집을 골랐다. 기준이 확실하면 선택이 쉬워진다.


꿈꾸던 모습은 아니지만 아늑함을 가진 집에서 호미로 잡초를 뽑던 첫날, 긴 시간 나를 괴롭히던 우울감과의 이별을 시작했다. 힘들지 않은 이별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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