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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정원 Jul 18. 2021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작년 여름, 운전 중 터널에서 공황 발작을 일으킨 이후로 공황장애 치료를 받고 있다. 반 년 정도 약을 먹으면 나아질 것이라고 시작한 치료가 벌써 일 년이 넘었다. 계속 세워두기만 하던 차도 올봄에 팔았다. 집에 있는 것이 편했다.

올해 초,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정신과 진료 시간에 의사와 그 결심에 대한 상담을 했다.

“선생님, 저는 노화를 인정하기로 했어요. 이제 자연스럽게 늙어 가려고요.”

“매우 성숙한 생각입니다.”

“그런가요?”

“노화를 인정하지 못해서 정신과 진료를 받으시는 분도 많습니다.”

의사의 말에 힘을 얻어 9년 동안 해온 새치 염색을 그만두었다. 내 결심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못마땅해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의 결심은 굳었다. 하루라도 빨리 흰머리와 친해져야 자연스럽게 보일 것 같았다. 10년 뒤에 염색을 그만둔다면 갑자기 늙어 보여 서글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이에 비해 흰머리가 많은 편이라 칠 개월이 지나니 앞 머리가 많이 하얘졌다. 영화 ‘엑스맨’에 나오는 ‘스톰’이 될 거라고 농담을 하고 다녔다. ‘스톰’은 날씨를 다스리는 능력이 있으니 정원사에게 이만큼 좋은 능력이 또 있을까.


지난주에 친구 Y 동생인 M 아이들과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공황 발작 전까지 서울로  아이들을 가르치러 다녔었다. 요즘은 영상통화로 둘째 시험 준비를 도와 주니 가까이 지낸  벌써 7년째다.

대문으로 들어서는 M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얼굴이 왜 그렇게 새카맣게 탔어요?”

“정원 일 조금만 해도 이렇게 금방 타네. 내 피부가 원래 좀 잘 타.”

“머리는 왜 이렇게 하예? 많이 길기도 하고?”

“노화를 받아들이기로 했어. 내 흰머리 예쁘지 않아?”

“뭘 받아들여! 안 예뻐요! 폐인 같아!”

영상 수업 중에도 얼굴 마주칠 때마다 미용실 가라고 잔소리를 하더니 단단히 벼른 모양이다.

집으로 들어와서 또 이야기가 이어졌다.

“차 팔고 나니 안 답답해요?”

“아직은 괜찮아.”

“못 나가는데 안 답답해?”

“집에 있는 게 좋은데. 배달도 다 되고.”

“우리 집 와서 홍대도 가고 가로수길도 가고 하던 사람이 안 가고 싶어요?”

“거긴 좀 가고 싶네.”

“우리 집 다닐 때가 좋았죠? 근데 이 먼데를 어찌 다녔어? 수업료라고 준 거 톨비로 기름값으로 쓰면 남는 것도 없었겠네.”

“사실, 남편이 좀 싫어하긴 했는데 내가 우울증 약값보다 싸다고 간다고 했지. 놀면 뭐해. 바람도 쐬고, 애들도 보고 싶고… 아, 참 나 책 나왔는데 읽어볼래?”

그녀는 책을 받자마자 내가 쓴 부분만 읽었다.

“어때?”

“어떻긴, 짠하지. 아프기 전부터 아프기 시작할 때까지 쭉 봐왔는데 그 내용이잖아요.”

대답하는 얼굴 표정이 여전히 별로다. 눈가도 촉촉해 보였다. 주제를 바꿔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차 막히기 전에 가는 게 좋겠다고 두 시간 남짓 머물다 돌아갔다.

 다음날 Y 톡을 주고받는 중에 전날 이야기가 나왔다.

“M이 네 얼굴이 너무 안돼 보이더라고 하더라.”

“네 동생이 나 폐인 같대. 그 말 때문에 기분이 나쁘거나 슬프지는 않았는데 그냥 마음에 걸려.”

 톡방에서 함께 떠드는  친구, Y H 나의 결정을 지지해 주는 쪽이어서 혹시 내가 상처를 받았을까 염려된  같았다.


그 이후 나는 ‘폐인’이라는 말이 왜 마음에 걸렸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칠 개월 동안 끊임없이 염색을 하라는 아들의 말도 듣지 않았고 염색을 안 하면 만나지 않을 거라는 이웃들의 협박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자꾸만 그날 M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렇게 또 며칠을 곰곰이 생각한 후 나는 드디어 그 이유를 깨달았다.

워낙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인대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받아들이는 내가 대견한 나머지 다른 사람은 마음에 두지 않았었다. 게다가 잔머리는 얼마나 많이 올라오는지 두피도 건강해지는 듯해 내 결정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노화를 받아들인다는 내 결정을 질책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비슷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그런데 M의 촉촉한 눈빛을 계속 떠올리다 보니 내 주위 사람들의 눈빛과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눈빛이 의미하는 바는 연민이었다. 나를 지지한 것이 아니라 차를 타고 미용실에 가지 못하는 내가 안되어 보였던 것이다.

예전엔 내가 내리는 결정에 대한 반응은 모두 ‘너답다’였다. 하지만 내가 지금처럼 치료를 받는 이상 어떠한 결심을 하더라도 주위에서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일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무리 성숙한 결심이라고 하더라도 내 결심을 전달하는 데는 때가 있다. 예전처럼 차로 전국을 누비고 새로운 카페와 힙한 장소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나로 돌아가기 전에는 내가 하는 결심은 그냥 핑계로 받아들여진다. 약을 먹고도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제대로 타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어떠한 의지도 의미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전히 나는 ‘나’ 일뿐이라는 생각으로 살지만 사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나의 전부는 아니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나의 모습도 나의 일부다. 그 점을 인식할 때 나는 진정한 내가 되고 나의 의견은 타인에게도 받아들여진다. 다시 나의 결정이 ‘나답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마음과 몸의 건강을 돌보며 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연민의 눈빛이 아니었다. 내 마음 깊숙하게 숨기고 있었던 것을 그녀 때문에 나 자신에게 들켜 버렸다. 나는 그냥 빨리 늙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죽는 날을 정하는 것은 아들 때문에 포기했고 대신 자연의 순리대로 죽기로 했으니 어떻게든 늙어 보이고 싶었다. 눈가의 주름이 더디 생기는 것에도 화가 났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은 죽으려면 멀었네요 라는 말로 들렸다. 늙어 보이면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 금방 늙어 죽을 것이라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다. 가슴 깊이 묻어 놓았던 본심을 그녀의 눈빛이 깨우쳐 주었다.

한 삼 년쯤 지나면 내 결심도 숨겨둔 본심 없이 순수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때까지는 아파 보이지 않게 나를 꾸미며 살기로 했다. 내 두 친구의 톡방에 먼저 알렸다. Y와 H는 내가 내리는 결정은 모두 지지한다며 너는 어떻게 해도 너라고 응원해 주었다.


오늘 미용실에 갔다. 전에 다니던 곳은 공황 발작이 일어났던 터널을 지나가야 해서 이참에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소개받았다. 미용실 내부는 다행히 가리는 것도 없고 통유리창 너머로 거리가 보여 가슴이 답답하지 않았다.

7개월 만에 염색을 하고 어깨 높이까지 머리도 잘랐다. 예쁘게 드라이도 했다. 함께 동행한 이웃 언니가, 사진 한 장 찍어서 그 동생에게 보내주라고 했다.

집에 와 M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며 문자를 남겼다.

‘미용실 다녀왔으니 이제 그만 슬퍼해.’

몇 시간 후 답장이 왔다.

‘이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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