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땅집에 입주하며
내 어릴 적 꿈은 우주비행사가 되는 것이었다. 꿈 많던 과학소녀는 별이 나오는 책을 읽으며 그 꿈을 꼭 이루리라 다짐했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면 수학여행은 달로 가게 될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과는 달리 일반인을 태우고 지구를 출발하던 우주왕복선이 폭발해 버렸고 내 꿈도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우주 왕복선은커녕 신혼여행 가기 전까지 비행기 한번 타보지 못했다.
꿈을 잃은 나는 사람은 땅 밟고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것이 무섭다던가 제트기류 때문에 흔들리는 비행기가 무서웠던 적은 없었지만 (사실 흔들리는 비행기가 살짝 떨어질 때 기분은 생각보다 괜찮다) 갑갑한 비행기보다는 단단한 땅이 더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날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했다. 우주비행사도 아니고 낙하산을 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공중을 가르며 날고 싶어 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사는 것이 답답해서인지, 내 삶의 온전한 주체가 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단순한 호르몬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날갯죽지가 가렵고 자꾸만 날고 싶어 졌다. 누군가 구실을 만들어주면 날아오르자. 퇴근한 남편이 말을 걸면 저 창으로 뛰어내려버리자. 11층에 있던 집은 전망이 좋은 곳이 아니라 처참한 사고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장소가 되어 있었다. 가족들에게 집은 더 이상 편안한 곳이 아니었고 나의 무드가 집 분위기를 장악했다. 무서워졌다.
땅에서 살고 싶다. 하늘 위에 떠 있는 집이 아니라 땅에서 살고 싶어 졌다. 기분이 나아질 때마다 유튜브로 전원주택 매물을 보기 시작했다. 아들의 거취가 결정되면 생각해 보자고 하던 남편도 내 결정에 따를 테니 좋은 집이 있으면 한번 가보라고 했다. 대신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 혼자 지내도 안전한 단지, 우리 경제사정에 맞는 가격
한없이 미적거리지만 가끔 미친 추진력을 보이는 나는, 그 조건에 보태어 스트레스 없이 관리할 수 있는 넓이, 아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구조를 고려해 집을 골랐다. 기준이 확실하면 선택이 쉬워진다.
꿈꾸던 모습은 아니지만 아늑함을 가진 집에서 호미로 잡초를 뽑던 첫날, 긴 시간 나를 괴롭히던 우울감과의 이별을 시작했다. 힘들지 않은 이별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