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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우니 Sep 30. 2016

걱정 말고 용기 내어 올라봐!

좌충우돌 광주 무등산 산행기



지금은 국내 어느 지역이든 혼자서도 잘 돌아다니지만 과거의 나는 혼자 여행은커녕 서울을 벗어나는 것조차 싫어했었다. 그저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둘레 안에서 무기력하게 내 삶을 살아갔다. 내가 봐도 나 자신이 너무 답답했었지만 그 해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아니, 해답은 알고 있었지만 무언가를 도전하고 알아가는 것이 귀찮고 두려웠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과거 무기력한 모습들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성향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부끄럽게도 나의 뚱뚱한 외모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 같다.


그런 내게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반복되는 사회생활에 지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됐고 내 인생에서 수십수백 번 도전했지만 실패했던 그것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도전 명은 바로 다이어트였는데 당시, 내가 도전하면서도 '아마 또 실패하겠지?'라는 웃픈 생각을 했었다.


다이어트 종목은 등산을 선택했다. 그런데 우연히 '뚱뚱한 사람이 등산을 하면 몸이 망가진다 카더라' 소식을 접하게 된 후 이 도전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가족들한테까지 다이어트 소식을 이미 알린지라 쉽게 포기할 순 없어 걷기 운동이 약 10일 정도 진행되고 있을 때쯤,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불꽃같은 용기와 결심을 얻게 됐다.


"너 등산한다면서 왜 안 해?"

"내 체중에 등산을 하면 몸이 망가지고....(이것저것 구차한 변명 중... 이와 중에 설명 진짜 잘함)"

"(설명 무시) 야! 사내놈이 못할게 뭐 있어, 걱정 말고 용기 내어 올라봐!"


이렇게 정보 따윈 필요 없게 됐다. 바로 실전에 투입됐으며 나의 의지로는 대략 6~7년 만에 등산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등산 초창기 때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땀은 비처럼 폭포처럼 쏟아지고 '이렇게 힘든 운동을 왜 해야 돼?'라는 목적 없는 외침이 내 마음속에 가득했다.


새로운 풍경과 감정을 심어줬던 동네친구, 도봉산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산에 오르는 기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숨이 차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산에 오르는 고도는 높아져갔고 항상 바라만 봤던 정상까지 오르게 됐다. 산 정상이라는 곳이 나에게 주는 풍경과 감정은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짜릿했다. 인생 길게 산건 아니지만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과 풍경이었다. 또한 무언가에 도전하고 정복하는 게 이런 달콤한 맛이었다는 걸 오랜만에 깨닫게 됐다. 이렇게 나에게 등산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닌 '나도 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나의 취미가 된 등산은 체중감량에 성공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대자연속에서 행복함을 느끼고 새로운 풍경들이 주는 짜릿한 전율을 즐겼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점점 넓어졌다. 여행의 '여'자도 몰랐던 내가 혼자서도 여행을 즐기게 된 시작점도 바로 등산이었다. 이렇듯, 산은 내게 은인 같은 존재이며 언제 어느 때 찾더라도 반갑게 맞이해줄 친구가 됐다.


분명 도전과 변화는 아직까지도 무섭게 느껴진다. 하지만 과거의 나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씩, 천천히, 소소하고 작은 것들에 대해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작은 도전으로 서울을 벗어나는 것조차 싫어했던 '무기력 대장'인 내가 나 홀로 떠나는 내일로 여행에 도전하기로 했다. '여행 가면 좋은 거 아닌가? 그게 무슨 도전이야?' 생각할 수도 있고 지금은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여행을 떠날 당시만 하더라도 심장이 '두근 세근' 긴장과 걱정의 연속이었다.


긴장 속에서 출발했던 내일로 여행의 시작점은 빛고을 광주였다. 그 첫 번째 목적지도 한때 원수였지만 지금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된 산으로 결정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무등산, 높이는 1,187m! 친구와 함께 걱정 없이 용기 내어 올라본다.





양도 인심도 든든! 장터국밥



두근두근 내일로 여행의 첫끼를 광주의 장터국밥으로 시작했다. 다소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인지 광주송정역 주변엔 국밥집들만 식당을 오픈한 상태였고 개인적으로 국밥을 좋아하기에 큰 고민 없이 메뉴를 선택했다. 또한 높은 고도를 자랑하는 무등산이기에 든든한 한 끼 식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전라도에서 국밥은 처음이었는데 흔히 말하는 '전라도 인심'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다소 저렴한 메뉴인 국밥임에도 불구하고 김치 종류만 3가지가 나왔다. 또 장터국밥의 양은 어찌나 많던지, 국밥 안에 들어있는 수육만 먹어도 배부를 정도였다. 맑은 육수에 콩나물을 넣은 시원한 국밥 한 그릇은 나의 속과 인심까지도 든든하게 만들어줬다.



무등산으로 가는 1187번 버스



광주 시내에서 무등산이 있는 원효사를 가기 위해선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나는 광주송정역에서 지하철을 이동해 금남로 4가 역에서 하차한 뒤 다시 1187번 버스를 타고 약 30분을 더 달려가야만 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재미난 점을 발견했다. 내가 탄 1187번의 버스번호가 낯익지 아니한가!? 알고 보니 무등산 정상의 높이인 1,187m와 무등산 입구를 오고 가는 버스의 번호가 서로 같았다. 무등산에 대한 광주사람들의 무한한 사랑이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무등산의 고도를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경고의 표시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마, 내가 긴장한 탓이겠지?



무등산 옛길의 총길이는 11.87km



광주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표까지 야무지게 습득한 뒤 설렘 가득한 무등산 등반을 시작했다. 나는 무등산 옛길  2코스를 선택했는데 이 옛길에도 재미난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무등산 옛길은 총 2개 구간으로 나뉘는데 1구간의 거리는 7.75km, 2구간의 거리는 4.12km로 두 구간의 거리를 합치면 11.87km가 된다. 이것은 1187번 버스처럼 낯익은 숫자가 아닌가? 이렇듯, 유쾌함으로 다가와 광주가 낯설고 무등산이 두려웠던 나에게 걱정 말고 용기 내어 올라보라는 신호와도 같았다. 



잠시 쉬어가며



새하얀 카메라를 목에 걸고서 힘찬 발걸음으로 한 발짝 두 발짝 나아갔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마찬가지겠지만 무등산이 주는 새로운 자연풍경은 유독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아직 내 두 눈으로 보지 못한 그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나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습기 찬 무더운 날씨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땀은 비 오듯 했지만 지금 나에겐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행복했다. 목표가 없고 꿈이 없는 삶, 그 얼마나 끔찍한가!  하지만 나는 그것들이 존재했기에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눈으로 보는것만으로도 상쾌했던 무등산의 자연림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의 지저귐, 귀로 듣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지는 계곡 물소리,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날아갈 듯 몸이 가벼워지는 이 느낌들이 좋았다. 비록 사람 대 사람은 아니지만 풍성한 자연과 함께 산에 오르는 것이 좋았고 전혀 외롭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콘크리트 길



등산을 하던 도중 무등산의 자연림 터널은 갑작스럽게 끝이 났다. 그리고 차 한 대는 충분히 지날 것 같은 콘크리트길이 나타났고 그 길의 끝엔 예사롭지 않은 풍경과 장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조금 더 속도를 내어 걸어간다.



'중머리재'로 가는 길, 뒷쪽으로 걸어나가면 서석대로 가는 길이 나온다.



그저 '무등산'이라는 산을 오르고 싶었을 뿐 이렇게 광활한 대자연이 펼쳐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광주에서의 하루를 이곳 무등산에 모두 투자하고 싶을 만큼 큰 희열을 느꼈다. 비록 해외는 나가보지 못했지만 혹, 해외를 여행한다면 이와 흡사한 장면을 나에게 선사할 것 같다고 느꼈다. 애초에 최종 목적지는 서석대였지만 그 일정을 포기하고 이 이국적인 대초원 길을 쭉 걸어야 할까?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사실 어떤 선택을 하던 멋진 전망을 뽐낼 텐데, 나에게 한정돼있는 시간이 문제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단 하나의 선택만 해야 했다.



아쉬움이 담긴 사진



나에게 이런 고통스러운 선택을 맡기다니 몹시 분통했다.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선택은 해야 했기에 원래 계획대로 서석대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한 발, 두 발 중봉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아쉬움은 배가됐다. 위쪽에 보이는 사진은 서석대로 향하던 중 찍은 중봉 방면 사진인데 나의 아쉬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무등산 서석대의 모습, 화산암으로 만들어진 정직한 주상절리다.
끝없이 펼쳐진 자연 풍경에 나의 마음은 신남으로 가득했다.
무등산의 정상 인왕봉, 지왕봉, 천왕봉의 모습! 입산이 통제되어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넓고 넓은 광주가 서석대에선 한눈에 조망된다. 
서석대를 지나 입석대, 장불재로 가는 길. 이쪽 방면도 풍경이 어마어마하다.
서석대 등정!



서울에서 새벽같이 출발해 '두근두근' 긴장된 마음으로 올랐던 광주 무등산은 내일로 여행 1일 차의 일정을 빡빡하게 만들었지만 단 1%의 후회도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비록 소소한 도전이긴 했지만, 낯선 광주를 찾아 나 홀로 등산에 도전했던 과거 나의 모습도 정말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이렇듯 느리지만 한 단계 한 단계 도전의 범위와 강도를 높여가려 한다. 그와 동시에 두려운 마음도 분명 생기겠지만 도전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쾌감과 희열이 '두려움'이라는 마음을 강한 열정으로 바꿔놓는다는 걸 깨달았기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 나갈 것이다.




광주 무등산 등산 정보

등산코스 : 원효사 → 무등산 옛길 2구간 → 중봉 복원지 → 서석대 → 무등산 옛길 2구간 → 원효사
거리 : 왕복 약 8~9km
소요시간 : 약 3시간 (휴식시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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