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연말 회식 달리기에 열중하다 보니 진짜 달리기는 엉망이었다. 더 이상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2024년이 밝았으니.
2024년이 밝았지만 나의 달리기는 연말과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남들은 연초에 계획을 세우고 더 열심히 한다는데 ㅋㅋㅋㅋ 나는 그런 인간이 아니었나 보다.
레이노 증후군으로 한동안 실외 달리기 대신 실내 트레드밀 달리기를 했다. 밀렸던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달리는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주변 풍경을 보며 바깥공기를 마시며 달리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실외에서 달리고 싶었다. 그 생각이 드니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기에 슬럼프가 왔다. 그러다 이번 주 토요일 기온이 꽤 올랐다. 이 정도 기온이면 레이노 증후군인 내 손가락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남편과 수원 월드컵 경기장 트랙을 뛰기로 했다. 나는 혹시 몰라 3M 혹한기 장갑 속에 모 장갑까지 겹으로 준비했다.
오랜만에 실외에서 뛰니 기분이 상쾌했다. 1km를 지나 2km를 접어들 때쯤 왼쪽 중지에 신호가 왔다. 날이 따뜻해 몸에서는 땀이 났지만 왼쪽 중지 손가락은 점점 굳어졌고 시리고 아팠다. 더 이상은 뛰기가 무서웠다.
2.64km.
달리기를 멈췄다. 두 겹의 장갑을 벗어 손가락을 확인했다. 새 노란 손가락을 보니 화가 났다. 차로 돌아와서 손가락을 주므르며 '이젠 달리기는 하지 말까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4년 가을의 전설을 맛보겠다고 여기저기 소문냈던 내가 부끄러웠다. 전설?? 웃기고 있네.
다음 날, 일요일. 토요일 제대로 달리지 못한 아쉬움을 실내 트레드밀에서 달래려 했다. 밤 9시 정도면 아파트 헬스장이 한산할 거라 생각해 쫄쫄이를 주섬주섬 입고 나섰다. 그런데 오잉! 헬스장은 마치 시골 5일장처럼 사람들로 북적였다. 작년 12월만 해도 이 시간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는데. 이게 뭔 일인가. 연초라서 그런가. 다들 새해 다짐을 운동으로 통일했나 싶을 정도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퀘드를 하면서 트레드밀 순서를 기다렸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았다. 나는 30분 맨손 운동만 하다 집을 돌아왔다.
샤워를 하면서, 달리기를 그만하라는 신의 계시 아닐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달리기 빼고 나는 어떤 운동을 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해봤다. 킥복싱, 테니스, pt 등 평소 하고 싶은 운동을 떠올렸다.
킥복싱... 회사나 집 주변에 도장이 없음-> 포기
테니스... 회사나 집 주변에 실내외 코트가 없음 -> 포기
PT... 회사나 집 주변에 널렸음, 마음만 먹으면 가능-> 그냥 하기 싫음 포기
아무리 생각해도 달리기 빼곤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인생이 뭐 그런가 아닌가. 그럴 수 있는 거.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