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하려고 수많은 이름을 고르다 포기한 사람의 고뇌
"영조야."
어릴 때 나는 내 이름이 너무 싫었다. 평범한 이름도 아니었고 여자아이의 이름 같지도 않았으며 특이한 이름 탓에 주목받는 것도 싫었다. 영조대왕, 황영조 선수 등 아이들이 별 것도 아닌 이유로 놀리는 것도 어린 마음에는 상처로 남았다. 이런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을 원망했고 이름을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뭐로 바꾸고 싶은데?라고 물어보면 마음에 드는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호의적이지 않은 타인의 반응과 놀림거리가 되는 것이 큰 이유였다. 이름은 아무런 죄가 없었다. 놀리는 아이들과 타인의 반응에 영향을 받는 내 마음이 문제였다.
요가명상강사로 일을 하면서 닉네임을 정하는 것은 재밌었다. 누군가가 불러 줄 내 이름을 스스로 정할 수 있었고 내가 하는 수업과 연결 지어 이름을 붙일 수 있어서 좋았다.
Manasa라는 이름을 썼었다. 마나슬루라는 히말라야 봉우리의 이름에서 따왔다. 네팔에서 밟았던 히말라야의 고요함과 산 이주는 안정감이 좋았다. Manas는 산스크리트어로 마음이라는 뜻이다. 나의 마음을 언제나 자각하고 사는 수업을 해야지라는 의도를 담았다. 불러주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지만 처음 가진 이름이라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Manasa라는 이름이 강한 느낌이라는 이유로 다른 이름을 쓰길 원하는 회사가 있었다. 그때 Dhyana라는 이름을 받았다. Dhyana라는 개념은 명상, 선이라는 의미로 요가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고 상위단계를 지칭한다.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어감도 좋았고 뜻도 마음에 들었다.
禪(고요할 선)이라는 한자가 있다. 선정, 참선, 좌선 외 간화선, 묵조선 등 명상을 지칭하는 뜻이다. Dhyana의 한자어 기도 하다. 마음에 드는 한자어를 만났는데 마음이 동하질 않았다.
이름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나를 이름으로 부르고 그 이름을 듣고서 나를 떠올린다. 나의 언어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뿐이다. 나의 존재에 대한 고찰이 깊어지니 이름은 나에게 과거처럼 큰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는 이 같은 작은 이유들로 실의에 빠진다. 이름을 바꾸면 나의 존재는 달라지는가? 난 여기 있을 것이다. 그저 나를 부르는 음성, 지칭하는 단어만 달라지는 것이다. 늘 부르는 이름이다 보니 계속 듣다 보면 그것과 유사한 삶을 따라가게 될 수도 있겠지. 의도를 계속 돌이키면서 되뇌는 것과 같을 수는 있다. 그래서 성명학이나 작명소 같은 곳이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건 인간들 사이에 통용되는 것이고 그저 사회적 약속에 불과하다. Human made 인 것이다. 나는 'Dhyana(선)'이라는 이름을 내려놓기로 했다. 삶 속에서 역할을 나누어 살다 보니 삶이 더 피로해졌는데 그것에 이름까지 달리 불린다면 분리가 더 커질 것 같았다. 하나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도 힘들다. 두어 개의 삶을 그냥 통합해 살기로 했다. 상황에 따라 일과 삶의 분리가 일정 부분 필요할 순 있겠지. 그것 또한 취사선택의 문제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살기. 쉬운 것 같은데 너무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