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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조 Jun 15. 2020

핸드폰이 없는 시간

그대 모든 연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우리 교수님은 핸드폰이 없다.

연락을 드리려면 메일로 미리 선약을 잡아야 한다. 이외에도 에어컨도 없으시고 불편하지만 편안한 삶을 살고 계신다.


 오늘 아침 등굣길 버스에서 핸드폰 배터리가 낮은 것을 확인했다. 어차피 카페에 가면 충전할 수 있으므로 마음껏 일을 보았다. 화면이 어두워지고 배터리 창이 붉게 변해 위기를 경고했다. 핸드폰은 결국 꺼졌다. 핸드폰 off의 시간이 길어진 건 참 오랜만이었다. 핸드폰이 꺼질 때쯤엔 곧 충전기를 꽂아 켜 둔 상태를 유지했었다. 핸드폰을 잠시 가방 주머니에 넣어두고 창밖을 봤다. 여름의 나무들이 살랑거리고 있었다. 핸드폰이 있었더라면 이걸 촬영하느라 핸드폰의 작은 화면으로 이 창밖을 보았겠지. 이 순간, 공감하고 있음을 SNS에 올리고 있었겠지. 맨눈으로 보는 여름은 싱그러웠다. 장충동으로 넘어가는 길에 나뭇잎이 반짝거렸다. 오늘 미세먼지는 어플로 확인할 수 없으나 하늘이 푸르러 좋아 보였다. 입꼬리가 슬슬 올라갔다. 자연은 늘 가까이 있지. 조금 늦은 시작도 기분이 좋았다.

 학교 앞 스타벅스에 들러 음료를 주문하고 가방을 열어본 순간 핸드폰 충전기가 없는 걸 알았다.


 그때의 당혹스러움이란! 등줄기를 타고 식으은 땀이 주르륵 흘렀다. 황급히 컴퓨터를 켜서 학교에 있을 법한 지인들에게 카톡을 했다. 아무도 답이 없었다. 수업은 곧 시작하는데 마음이 조급해졌다. 오늘부터 사전등록을 진행할 계획이었는데 상담전화 조차 받지 못하게 생겼다. 편의점에서 급하니 사야 하나? 쓸데없는 소비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올라왔다.


 카페에서 나와 학교로 향했다. 언젠가 휴게공간에서 본 적 있었던 공유 충전기도 생각이 났다. 머릿속으로 몇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학교 등굣길을 올라갔다. 오늘따라 오르막길이 가팔랐고 나의 짐이 무겁게 느껴졌다. 속으로 나의 칠칠맞음을 자책하는 마음이 보였다. 내 탓인데 뭘 어쩌겠는가. CS 센터에 들러 충전을 신청했다. 다행히 충전은 되지만 맡기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충전을 할 수 있다니. 그거면 되었다. 수업 시작에 아슬아슬하게 빈 강의실로 들어왔다. 지각을 면했고 마음은 안도했다. 현현하기란 어렵지만 칠칠맞은 것은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정말 왜 그러니' 하며 자리에 앉았다. 


 나의 섬세하지 못한 점은 인정하나 핸드폰과 연락에 이렇게 매여있을 일인가 싶었다. 물론 지금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어서 조금 예민한 점도 있지만 연락이 안 되면 늦게나마 닿으면 되지 무엇이 문제인가. 혹여 연락을 제 때 받지 못해 불쾌할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곤 있지만 내가 그의 입장이라면 나는 그 상황을 불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마케팅 또는 고객관리의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니 자꾸 긴장감이 더해진다. 그냥 조금 편안하게 누군가에게 전화를 할 때도 그가 언젠가는 대답을 주겠지 기다리고, 나 또한 확인하면 응답해야지 하고 조금 느긋하게 마음을 먹어야겠다. 우리는 너무 공간을 두지 않는다. 나의 하루도 그러하고 나의 마음도 그러하다. 조금은 여유를 가지기를 그 또한 그 공간을 불쾌하지 않고 여백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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