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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조 Sep 18. 2023

나의 딸들에게 _ 시작

서문

 겨울이 태어났을 때 이 글을 시작했었어. 100일쯤 네가 6시간을 자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 거야. 그때 작성했던 파일을 이어 쓰는 건 아니지만 너를 안고 토닥이며 보내었던 시간은 잊히지 않아. 따뜻한 온기, 숨냄새, 꼬물거리는 움직임 그 하나하나를 기억하려 애쓰고 너와 대화를 나눌 날을 기다렸지. 그러다 문득 내가 만약 너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의 안위와 건강과 행복한 경험들을 위해 엄마는 부단히 노력하겠지만 인생은 나의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단다. 그래서 편지를 남기기로 했지. 하지만 계획 후 실행까지 여헌 5년이 지났구나. 그래서 나는 너희들에게 이 글을 남긴다. 엄마가 없어도 읽어볼 수 있도록 너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너의 존재를 처음 알고 그 두근거림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단다. 밸런타인데이의 선물과 같았지. 그날은 조금 추웠고 네 소식 덕에 따뜻한 날이었어. 너를 만나기까지 몸이 힘든 적도 있었고 마음도 그랬단다. 그래도 항상 만나는 날을 고대하고 기다렸어.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생각을 할까? 무엇을 좋아할까? 그리고 18년 12월 21일 너를 만나고 나는 우주를 보았어. 네 눈 속에 우주가 담겨 있었거든 힘든 10시간을 견뎌내고 너는 세상을 마주하며 둘러보았지. 눈을 깜박여서 엄마한테 인사를 건네었어. 그리고 우리는 함께 살기 시작했어. 엄마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거더라. 네가 앞으로 살아갈 삶도 녹록지 않을 거야. 엄마는 늘 그 길을 응원하고 도움이 될 일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줄 거야. 하지만 엄마라는 길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이야. 아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 이전에 결혼이라는 사회적 약속부터 신중해야 해. 일단 엄마라는 역할은 육체적으로도 마음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모든 것이 달라져.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살아가는 이유와 냄새 맡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모두가 달라진단다. 힘들었냐고? 안 힘들다는 건 거짓말이지. 그런데 그 힘듦은 아주 작은 부분이야. 너의 존재가 나의 우주고 내 삶의 원동력이며 하루를 시작하는 설렘이니까. 엄마는 엄마가 될 결심을 하고 아빠와 결혼을 결심하면서 아이는 둘을 낳을 거라 다짐했어. 그래서 가을이가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지. 가을이는 또 다른 시작이야. 엄마도 아기 둘은 처음이잖아? 가을이를 만나는 과정은 조금 더 힘들었어. 몸도 다르고 상황이 많이 달라서 그랬었나 봐. 그래도 천사 같은 귀염둥이가 우리 가족을 찾아오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마침내 집으로 올 수 있었지. 가을이는 태어날 때 조금 아팠어. 다행히 조리원에 있는 2주 동안 잘 회복해서 집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 그래서 조금 더 미안하고 그래서 조금 더 관대하게 받아주는 것도 있는 거 같아. 언니가 있고 두 번째가 되는 기분은 또 서운함이 클 테니까. 겨울이도 언니라 사랑을 나누어 갖는 것에 대해 서운한 마음이 들겠지. 너희 둘의 마음적 공백이 느껴지지 않도록 엄마는 부단히 마음을 만들어내고 안아주고 표현하려고 노력한단다. 그렇지만 너희들도 느끼겠지? 나의 노력보다 너희들의 갈증이 더욱 클 것이고 나는 수많은 말들과 안아주기, 뽀뽀, 여러 사랑의 표현들로 너희의 갈증을 충족시켜 주려고 노력할 뿐 그 이상으로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그리고 인생의 비밀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것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걸 모두 나눠줄게.


 가을이가 두 살이 되어서야 다시 이어서 쓰게 되었네. 누군가는 그 사이에 충분한 쉬는 시간이 있지 않냐고 물어볼 수 있지. 그건 임신도 출산도 경험해보지 않는 사람이라고 장담해. 그리고 육아도 말이야. 임신 이후 출산 그리고 육아를 하면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단다. 행복한 시간이지만 몸이 힘든 것과 마음이 지치는 걸 막을 수는 없어. 이 원인이 귀염둥이 너희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구나. 회복을 위해 충분히 쉴 시간은 안되고 반복되는 생활에 빠질 수 없는 상황이 문제인거지. 그래도 이제 시간이 생긴 게 어디니! 너희들에게 나누어 줄 이야기가 많은데 아직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엔 어렵고 또 이 글을 읽기엔 너무 어리구나. 엄마는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 나누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아. 이 순간 이 감정들을 놓칠까 먼저 기록해 둔다. 나의 반짝이는 딸들아. 네가 살아갈 삶은 생각처럼 쉽진 않을 거야. 세상은 엄마 품처럼 따뜻하지만은 않거든. 이런 세상에 널 낳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평생을 끼고 살고 싶고 늘 곁에 있고 싶지만 삶은 그렇지 않단다.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범주의 일들도 있지. 그때 엄마가 곁에 없다면 이 글들이 너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엄마는 너희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그 사랑은 영원할 거야.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아빠도 할머니들, 할아버지들도 그럴 거야. 너를 아무 이유 없이 존재만으로 사랑해 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그건 너의 삶 속에 큰 힘이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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