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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Aug 02. 2023

8 HOUSE

코펜하겐을 여행한다면

8 하우스는 코펜하겐 시내에서 메트로로 20-30 정도 떨어진 곳에 외레스타드(Ørestad), 신도시개발 지역에 조성된 주거상업 복합건물이다. 이 건물은 덴마크의 떠오르는 건축가 비야케 엥겔스(Bjarke Ingels)의 작품으로 나는 넷플릭스의 디자인 시리즈 중 하나인 Abstract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시리즈는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의 작품과 그들의 디자인 철학을 다루는데 디자인 분야에서 일을 한다면 아니 반드시 연관이 없더라도 그들의 삶과 일을 향한 열정과 태도를 접하는 것만으로 삶에 큰 자극과 도전이 될 것이다.


나는 코펜하겐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홈페이지에 들어가 방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홈페이지를 열면 방문객들에 대한 안내가 바로 뜨는데 가급적 개인적 방문을 자제하고 가이드 투어를 신청할 것을 권유하고 있었다. 1층에 위치한 상업 공간을 제외하고 주거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아무래도 사생활 침해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는 세대들이 있었다. 나는 가이드 신청서를 제출하고 답장을 기다렸다.


 'Mila......"

나에게 배정된 투어 가이드의 이름이다. 8 하우스 사무실 앞 광장에서 밀라와 약속이 정해졌다. 나의 숙소에서 메트로를 타고 20분 정도 가서 도보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먼저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도시의 분위기가 역력했다. 조금은 텅 빈 듯하고 도시로부터 살짝 떨어져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드디어 밀라를 만났다. 밀라는 8 하우스에 거주하는 연세 지긋한 할머니 연배의 여자분이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이곳에 혼자 여행을 왔다는 말에 밀라는 많이 놀라며 자신도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꼭 혼자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올해 둘째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는데 드디어 육아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으로의 삶의 시작을 자축하는 여행이라고 설명하였다. 밀라도 아들을 둘이나 키웠기에 나의 마음에 적잖게 공감하며 뜻깊은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고 나를 격려하였다.   

우리는 서쪽 중간 진입로를 시작으로 천천히 경사로를 따라 걸었다. 경사로 왼쪽에는 각 세대로 진입하는 입구가 있었는데 세대는 작은 마당, 파티오(Patio)를 앞에 두고 있었다. 파티오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경사로와 사적 공간 사이에 자리 잡아 비교적 넓은 의미의 경계영역을 형성하고 있었다. 경사로는 사람들의 수직적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통로의 기능을 하지만 계단이나 엘리베이터처럼 이동공간과 사적인 공간을 폐쇄적으로 연결하지 않는다. 이렇게 단절된 형태의 연결 수단은 사람들을 머무르게 하지 못한다. 잠시 서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매우 한시적이고 연결성이 없다. 경사로의 파티오는 마치 우리의 옛 동네의 골목길에 놓인 "평상"처럼 공적영역으로 침투한 사적영역의 연장선 같았다. 파티오라는 완충지역은 사적영역에 개방감을 허락하여 이웃 친화적인 요소가 된다. 이곳에서 자연스럽고 우연한 만남이 편안하게 이루어진다. 어릴 적 단독주택에 살았을 때는 굳이 친구와 약속을 하지 않아도 대충 누가 골목길에 나와 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의 목소리도 들리고 뛰어다니는 소리도 들렸다.  굳이 미리 약속을 하지 않아도 늘 아이들이 있던 골목길이 생각났다.


경사로의 시작, 완만하게 펼쳐진 저 길을 산책하듯 걸었다. ©boah
2개중정을 중심으로 경사로가 이어진다 ©boah
거의 꼭대기에 이르렀다. ©boah

밀라는 경사로를 오르며 이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센터와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8자형 형태 건물 양쪽에 위치한 중정은 경사로를 오르는 내내 시선을 끌었다. 완만한 경사로는 내가 수직적 상승를 하고 있을 때 느끼는 피로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하였다. 그저 평지를 산책하고 있다는 편안함으로 어느새 10층에 위치한 세대 앞까지 다달을 수 있었다. 이 경사로는  가장 높은 층에 거주하는 사람들까지 모든 자전거를 타고 한 번에 1층까지 오갈 수 있게 하였다. 수직이동에 대한 불편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설계는 자전거의 이용을 장려하는 국가정책과 맞물려 있다. 덴마크는 2050년까지 화석에너지 제로, 재생에너지 100% 정책을 이루기 위해 자전거 이용을 독려하는데 코펜하겐 외곽을 잇는 S-train 이용 시 자전거 이용객을 운임이 무료이며 메트로의 경우 일반 승객보다 자전거를 가지고 타는 승객의 운임이 절반이다. 또한 자동차 구매 시 세금이 구매대금의 180% 라고 한다. 코펜하겐 시민의 84%가 자전거를 보유하고 68%가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때문이다. 코펜하겐 시내를 걸어 다녀보면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시속 20 키로를 유지하면 교통 흐름에 끊기지 않게 자전거를 주행할 수 있게 신호 체계를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그 많은 자전거 주차장에 시건장치를 해놓은 자전거를 발견하지 못하였던 순간들이었다. 건물에 꼭대기에 오르니 오르니 다른 건물의 옥상정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8 하우스에도 남서쪽면 경사로에 식물이 심겨 있는데 이 역시 대기질을 개선시키기 위한 정책을 반영한 계획이라고 밀라는 설명하였다.


 단지내의 커큐니티 센터에서 이웃끼리 다양한 활동으로 교류한다©boah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에어컨 사용량과 차량 이용량은 더 늘어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생활권이 비대해진 서울에서는 15분 생활권인 코펜하겐과의 비교가 이미 어려워졌을지도 모른다. 도시가 커질수록 자동차를 위한 도로건설에 계속 힘을 쓰게 되면 보행자들과 자전거 이용자들의 편의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어쩌면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 보행자들이 걸어가는 자리, 자전거 이용자들을 배려한 계획이 우리 일상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갑자기 펼쳐진 대자연의 광활함(좌),경사지붕 위의 옥상정원 앞에서 한 컷(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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