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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Sep 06. 2023

문은 사람이 흘러가는 길목이고,

그 공간의 얼굴이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공간을 둘러보자.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가? 자세히 보면 거의 모든 것이 고정된 공간 속에서 가장 움직임이 많은 것이 사람과 문이다. 문과 사람의 운직임은 밀접하다. 나는 지금 나의 스튜디오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책상에 앉았다가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컵을 꺼내기 위해 주방가구의 문을 열었다 닫기도 하였다. 화장실을 몇 번 쓰기 위해 문을 닫았다 열었다 하였고, 중간에 편의점에 잠시 다녀오느라 현관문을 열었다 닫았다. 이렇듯 문은 사람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동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문을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내느냐에 따라 그 공간 속을 움직이는 사람을 편하게 할 수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여닫이문은 안팎으로 열리고 미닫이문은 옆으로 열리며 포켓도어는 문이 열리면서 벽 속으로 숨는다. 유리문처럼 공간너머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문도 있고 나무나 철재로 만들어져 공간사이를 시각적으로 완전히 차단하는 것도 있다.


문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문은 벽의 한 부분이다.  꼼짝하지 않고 버티고 서있는 벽에 틈을 만드는 것이 문이다. 문이 열릴 때 공간은 열리고 문이 닫히면 공간도 닫힌다. Rob Krier는 이런 의미에서 문을 벽에 대한 반란이라고 표현하였다. 닫혀있는 문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자동문처럼 센서에 감지만 되면 화락하고 열어주는 문이 있는가 하면 버튼 정도는 눌러줘야 열어준다는 문도 있고 지문인식이나 카드키, 통화를 해서 출입을 허가받아야 열리는 문도 있다. 예전에는 문의 위치와 문을 만드는 재료와 크기 등이 사용자가 느끼는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결정하였다면 지금은 아무리 유리와 같은 가볍고 투명한 재료로 만들어져도 사람의 통제가 더 용이가 것도 있다. 공간의 크기를 좀 더 융통성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폴딩도어를 활용하면 좋은데 벽면전체를 접었다 펴졌다 하는 폴딩도어로 사용해서 공간을 크게 사용하기도 하고 몇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사용하기도 한다.


a:여닫이문, b :미닫이문, c:포켓도어, d: 폴딩도어 ©boah
같은 공간이지만 문의 위치에 따라 공간의 동선은 달라진다 ©boah



공간이 구획 지워지면 그 공간의 출입구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 된다. 출입구의 위치는 각 공간 간의 공선계획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바로 인접한 공간이라고 하더라고 출입구의 위치를 어디로 두느냐에 따라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이 심리적으로 느끼는 공간 간의 거리감이 달라지게 된다. 수평적 관계에서도 그러하지만 공간 간에 수직적인 관계에서는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위아래층으로 완전히 분리된 공간과 계단실을 내어 연결된 공간 간의 거리감은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출입문에서 공간내부로 진입해 들어올수록 좀 더 사적인 공간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고 사용자의 위계가 드러나기도 한다. 문간방이라는 말의 표현에서 그런 뉘앙스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조선시대 양반가의 주택을 보면 큰 대문을 지나면 바로 행랑 마당이 나오고 하인들이 거주하는 행랑채가 마주 하고 있던 구조였다. 행랑채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집주인이 기거하는 사랑마당과 사랑채가 있었고 중문을 지나 안마당으로 들어가면 그 집의 가장 은밀한 공간인 안주인의 안채가 있는 형식이었다. 외부와 맞닿아 있는 대문에서 안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몇 개의 마당과 중문을 거쳐서 공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좀 더 사적인 공간으로의 진입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출입문과 공간 간의 관계는 현대 공간에서 비슷한 양상을 띠는데 공간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사적인 공간을 배려한 계획일수록 출입문의 위치나 방향을 고려하고 중문등을 이용해 외부인의 시선으로부터 사적인 공간을 보호하려는 장치를 만든다.  

연경당 동선의 흐름 ©boah
문의 위치에 따른 공간의 활용가능 공간 ©boah



문의 위치는 공간과 공간을 잇는 구심점이 되어 사용자들의 동선의 흐름을 주도한다. 출입문의 위치를 어디로 결정하는지에 따라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달라지고 공간 내부에서의 동선의 흐름도 좌우한다. 사람이 지나가는 길에는 가구를 배치할 수 없으므로 문의 위치와 가구배치는 밀접한 관계에 놓이게 된다. 침실과 드레스룸, 욕실의 출입문은 다른 공간과는 거리를 두되 서로 간은 출입문을 인접하게 배치해서 최대한 동선을 짧게 하는 것이 좋다. 주방에서 다용도실 다이닝 공간 간의 출입문도 동선을 고려해서 최대한 사용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늘 동선이 짧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제주 유민 미술관의 경우, 입구에서 미술관까지 아주 긴 산책로를 지나 건물에 도착하면 또다시 건물의 외곽부터 한참을 길을 내어 안쪽으로 동선을 유도한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적 산책은 건축의 개념에 “시간”이라는 요소를 반영한 것으로 이는 출입구라는 공간적 장치가 어떻게 사용자들의 움직임을 이끌어가는지 보여준다. 이런 경우 건축가는 길을 보여줌으로써 그 길의 끝에 문이 있을 거라는 암시를 줌으로써 사용자로 하여금 산책을 유도한다.

유민미술관:출입구까지 의도적 길게 늘어진 동선을 따라 걷는다©boah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오래전 일본 여행 중에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아사히 맥주홀을 들러볼 기회가 있었다. 검은색 사다리꼴 형태의 건물에 골드빛의 불꽃조형이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나는 건물 앞으로 다가가 출입구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건물을 한두 바퀴 더 돌아 결국 처음 위치로 돌아왔을 때 나는 아주 작은 버튼 하나를 발견했고 호기심에 버튼을 눌렀다. 그때 마치 벽처럼 보였던 문이 옆으로 드르륵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너무  웅장해서 나는 깜짝 놀라 자빠질 뻔하였다. 설계자는 방문객에게 출입구가 어디인지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방문자는 출입구를 찾기 위해 건물 주변을 맴돌면서 외관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처럼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어떤 문은 벽속에 없는 듯이 숨어서 존재감을 묻어버리고 싶어 한다. 방문자는 설계자가 친절히 출입문을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이런 깜짝 경험을 즐거워하고 오래 기억한다. 자신의 의도와 달리 길어진 동선에도 어떠한 불쾌감도 없다.


거대한 황금 불꽃이 인상적인 아사히 맥주홀 : 출입구는 어디에? (image via google)



얼마 전 동생네 아파트에 놀러 갔다가 잠시 이비인후과에 갈 일이 있었다. 병원이 바로 길건너에 있는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면 있어서 금방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아파트가 외부 사람의 통과를 허용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동생이 알려주었다. 차도 아니고 사람이 걸어서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 아파트가 사람의 통행을 막자 그 옆의 아파트도 아파트 카드키가 없으면 그 단지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해 놓았다.  나는 가까운 길을 두고 아파트 두 개 단지를 돌아 먼 길을 둘러갔다. 백번 양보해서 외부인의 통행을 제한하더라도 훤한 대낮에는 좀 허가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외부인을 향한 이 불친절함은 길어진 동선만큼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다.


우리의 공간의 시작은 언제나 문으로 시작해서 문으로 끝이 난다. 공간의 특성과 용도에 맞는 문의 활용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문은 오랜 시간 동안 그 시대의 특정 양식이나 문화, 시대정신을 반영하였다. 공간을 여는 문을 보면 그 공간의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어서 문을 그 공간의 얼굴이라고 불렀다. 어딜 가나 특징이 없이 똑같은 현관문을 보면 너무나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미디어의 발달로 우리는 자신의 개성보다 다른 사람의 취향을 따라가기 바쁘다. 이전 시대에도 유행을 이끌어가는 집단, 다시 말해 스스로 차별화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계층과 그것을 추구하는 계층이 존재해 왔다. 하지만 진정 우리가 개성이 있다고 이야기하거나 멋짐을 얘기할 때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하고 있는 그래서 무난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취향을 아주 살짝이라도 드러내는 사람이다.

예전에 캐나다 밴쿠버에 살던 시절에는 우리집 현관문에 리스를 걸어놓았었다. 작은 앞마당을 여러 세대가 공유하고 있었으므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리스를 교체하는 것으로 현관문에 표정을 주려고 했었다. 지금은 아파트 현관문에 뭔가를 한다는 게 크게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들어갈 때마다 마주하는 삭막함이라는 게 있다. 공동생활주택에서 현관에 어떻게 하면 변화를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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