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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Jun 03. 2024

보통 아닌 보통

밀란에 와서 두 번째 여행, 비엔날레를 보기 위해 베니스로 떠나는 아침은 유난히 분주하였다. 바쁘게 움직였으나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집 앞에 바로 있는 메트로를 타고 센트랄레 기차역으로 출발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시작이었다. 메트로에 올라 편하게 자리도 잡았다. 출발을 기다렸지만 열차가 지연되고 았다는 방송만 반복되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밀라노의 교통수단들은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다. 나는 왜 그것을 간과했을까? 출발은 계속 지연되었고 간신히 출발한 후에도 다음역에서 또 그다음역에서 지연은 반복되었다. 마음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기차 예매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다행히 다음 열차가 30분 후에 있었다. 구매했던 티켓은 출발시간이 시간이 너무 임박한 이유로 교환, 환불이 불가하였다. 시간을 보니 출발시간은 10분도 남지 않았다. 기차를 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또 멈춰서 출발하지 않는다. 기차를 놓칠 확률 95%….. 평상시 대로 메트로가 운행되었다면 나는 지금쯤 기차 플랫폼에서 기차에 오를 시간이었다. 집에서 더 빨리 나왔다면 상황이 좋았을까? 괜스레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 시작됐다. 오… 기차 출발 3분 전…. 가리발디역에서 또다시 출발을 하지 않고 있다. 긴장이 풀리고 체념상태가 된다. 아까운 표 한 장이 날아갔다. 속상하다. 출발 직전의 기차표의 가격은 2배로 비쌌다. 억울한 마음이 가득했으나 하소연할 곳도 여유도 없이 표를 구매하였다.



좀 더 삶을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들을 피해 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럴까? 나는 기차에 올라 지친 몸을 기대고 잠을 청했다. 지난번 시에나 여행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부활절 방학을 맞아 시애나로 여행을 떠났었다. 그때는 기차 파업으로 아예 표를 구할 수 없어 차를 렌트하였다. 긴장한 마음으로 출발 당일 아침에 영업소를 찾았다. 직원들은 빨리 차를 내주지 않고 알아들을 수 없는 이탈리아어로 한참을 서로 이야기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이슈는 내가 차를 반납하기로 한날이 휴일이라 영업소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온라인으로 문제없이 예약이 진행되었는데 출발하는 당일 아침에 이런 말을 하다니. 그들의 해결책은 돈을 조금 더 내고 다음날 반납을 하라는 것. 나는 이 차를 주차할 곳도 없고 그다음 날 반납을 할 수 있는 일정이 안된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다른 영업소에 반납하겠다고 하자 그럴 경우 200유로를 더 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예약을 취소하고 다른 영업소를 알아보겠다고 했고 그제야 여기저기 다른 영업소에 연락을 해서 추가비용 부담 없이 반납이 가능한 곳을 찾아 알려주었다. 집에서 멀고 대중교통 이용도 복잡한 곳이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이런저런 생각과 바깥풍경에 마음을 뺏기고 있는데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기차를 잘 탔냐고 물었다. 자신들도 오늘 베니스에 가는데 메트로 안에서 30-40분을 갇혀있었다고 했다. 기차표도 직행을 다시 구하지 못했는지 2번을 경유해서 가게 되었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그래도 어찌어찌 표를 구해서 가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하고 마무리했다. 이 친구들이야말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계획적인 사람들이다. 두 달 동안 함께 워크숍을 하면서 이들의 치밀한 성격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란의 메트로를 당할 수는 없었나 보다. 나는 나의 이 허술한 성격을 조금 용서하기로 했다. 삶의 여정에는 늘 발에 체이는 돌멩이로 가득하다. 거기에 장애물이 있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밀라노가 철도파업을 자주 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의 안위와 즐거움, 안전을 생각하면 그들은 마땅히 정해진 시간에 약속대로 움직여야 하지만 이 세상은 아주 오랜 시간 전부터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혀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흘러가고 있고. 그것은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과 자연,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연관되어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알 수 없다. 그냥 그것이 거기에 있을 뿐이다. 그것을 장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온전히 나의 이기적인 입장에서의 견해일 뿐이다. 세상이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생각해 봐야 한다. 세상에 왜 내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야 하는가? 온갖 모순과 불안전함으로 점철된 나를 보면서 왜 세상이 온전하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특별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렇다. 일정 거리를 두었을 때 아무 문제가 없었던 사람들이, 아니 오히려 지나치게 호감이었던 사람들이 일이나 학업으로 얽혀 친밀하게 지내다 보면 서로의 밑바닥을 보게 된다. 완벽한 관계로 흘러간 적이 있었나? 대부분 그렇지 않다. 그래서 누군가는 좀 느슨하게 가려고 하고 또 누군가는 더 촘촘히 가려고 하는 것이다. 너무 느슨하게 가면 자칫 냉소적이 될 수도 있고 너무 잘하려 하면 오히려 더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내 말이 맞다고 온 힘을 다해 주장하는 그 순간에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완강히 주장하는 상대도 있다는 걸 인정하면 된다. 내가 있듯이 너도 있다. 나와 다른 상황에 있는 너. 다를 수밖에 없는 너도 있다는 걸 내가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다보면 아주 짧은 순간, 내가 기대했던 어떤 것들이 이루어지는 순간들이 반짝거리기도 한다.



나는 아침에 움직이지 않은 메트로 안에서 시작부터 삐걱거리는 여행에 마음이 무거웠으나 그것은 너무나 평범하고 별것 아닌 일상의 순간이었음을 이제 베니스에 가까워지는 기차 안에서 깨닫게 되었다.




 #밀라노유학 #밀라노메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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