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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Jun 12. 2024

체류를 허가합니다.

내 안에 네가 머물 수 있도록

오늘 체류허가증을 받았다. 친구들이 모두 축하한다고 연락을 하였다. 

 

PERMESSO DI SOGGIORNO”, 영어로는 “RESIDENCE PERMIT”이라고 카드에 쓰여 있다. 내가 이곳에 머무는 것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허락해 준다는 것이다. 나는 학생비자를 받아 이곳에 입국했다. 처음 비자를 받았을 때 학업기간 동안 그 효력이 유지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학생비자로 입국 후 해야 하는 가장 일 중 하나가 체류허가증 신청이라는 걸 알고 약간 의아했다. 비자가 있는데 그게 왜 필요하지? 그것도 8일 이내에 신청해야 한다고 하였다. 체류허가증 신청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서류가 필요하다. 대부분 한국에서 준비가 가능하지만 집계약서나 세무번호까지는 준비해 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출국하기까지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한국에서 모두 준비가 된 상태에서 출국하는 것이 좋다. 세무번호(코디체 피스칼레)를 받기 위서 해서는 온라인으로도 신청이 가능하다. 모든 서류를 온라인으로 보내고 확인 후 번호를 보내준다. 나는 직접 세무 오피스를 찾아갔었다. 되도록 빨리 가기 위해서 집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예약을 하였다. 좀 외진 곳이라 마음이 두근두근 거렸지만 여행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트램에 몸을 실었다. 세무번호가 주어지면 비로소 은행계좌 개설이 가능하다. 당당히 은행으로 갔는데 유학생 계좌는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거절하여 당황하였다. 분명히 내가 읽은 블로그에서 이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다른 은행을 검색해 보고 온라인상으로 약속시간을 미리 잡았다. 서류를 좀 더 꼼꼼히 챙겨보기도 했다. 그 은행에서는 순조롭게 계좌를 개설하여 주었다. 차후에 같은 학교 친구가 그 은행을 찾아갔으나 무슨 이유인지 계좌를 만들지 못하였다.

 

 학생비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단수비자라고 쓰여 있다. 내가 학생비자로 이탈리아에 입국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이라는 의미다. 한 번 입국한 후에 다시 해외로 출국하였다가 재입국할 때는 학생비자의 효력이 없어진 후다. 그때 필요한 것이 체류허가증이다. 주변을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국 여행을 즐겨하는 친구들이 있다. 입국심사 때 여권을 꼼꼼히 보지 않고 일반 여행객으로 생각하고 통과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혹여라도 여권에 붙어있는 학생비자를 보기라도 한다면 체류허가증을 보자고 할 것이다. 만약에 없다면 문제가 되니 조심하여야 한다.

 

체류허가증 획득은 장기간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서 배려된다. 학교에서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에도 체류허가증과 관련해서 기관을 방문해야 한다고 하면 무사통과다. 체류허가증 획득이 어려운 이유는 요구하는 서류가 지나치게 까다롭거나 절차가 복잡해서가 아니다. 서류를 냈는데 감감무소식인 경우가 생가보다 많기 때문이다. 똑같은 조건의 사람이 같은 날 신청을 해도 한 사람은 2주 만에 허가증을 받았는데 다른 한 사람은 다섯 달이 지나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주소지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초기에 임시 숙소에서 지내면서 머물 집을 찾는다. 그러면 신청을 할 때의 주소지와 신창 후 한 두 달 후 지문을 찍으러 갈 때 주소지가 달라지는데 그러면 그 관할 경찰서로 다시 가라고 한다. 그러면 기다린 시간만큼 도 연장이 된다. 나와 같은 날 신청을 한 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메시지로 허가증이 나왔으니 찾으러 오라는 메시지를 받았고 그 친구는 메시지를 받지 못하였다. 그 친구는 영리하게 웹사이트에서 자신의 카드를 추적해 카드가 경찰서에 도착했다는 걸 확인하고 경찰서로 가서 체류허가증을 받았다. 기다리면 문자가 갈 거라는 말만 믿고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한다. 모두 운이 좋게 잘 진행되기를 바랄 뿐이다. 허가증이 만료되는 시기도 제각각이었는데 그 기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내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모두 자기의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정확한 이유인지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우리 같은 이방인 입장에서는 이것이 급하고 중요한 이슈이지만 이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순서대로 자신의 업무시간에  자신의 속도대로 처리하면 되는 업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일을 처리하는 인력이 충분하다면 상황이 좋아지겠지만 거기까지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업무가 느리고 그 결과가 그것을 처리하는 사람의 판단에 따라 달라지는 것 또한 여기서는 어찌할 수가 없는 모습들이다.

 

 

한국에서 일할 때 겪은 일이지만 이탈리아 가구를 구매하려고 하면 배송기간이 몇 달씩 걸렸다. 특히 여름 전에 주문을 하면 두 달간의 여름휴가기간이 포함되어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여름 두 달은 모든 공장이 문을 닫고 휴가를 떠난다. 아무리 주문이 밀려들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그런 관행에 익숙하다. 다섯 달도 기다리고 여섯 달도 기다린다. 아마 휴가 기간만 줄여도 매출은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느리게 가고 부족하게 가도 개인이 누리는 행복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   

 

한국은 일처리가 매우 빠르다. 모든지 척척이다. 해외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입을 모아 한국을 칭찬한다. 그 대신 조금 여유가 없다. 느슨하게 자신을 대하는 것이 편안하지 않다. 기계처럼 무미건조해진다. 상사의 요구에, 고객의 응대에 자신을 맞춰가다 보면 개인의 생각과 표정은 점점 사라진다. 나는 뭐가 옳다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행정처리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고 나도 십분 동의하지만 한국에서 내가 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누렸던 모든 혜택 뒤에는 개인보다는 집단의 이익이 더 중요시되는 풍조에 기인한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가 좋으면 또 하나는 나쁠 수 있다. 어떤 현상의 이면에는 그것 때문에 얻는 반사이익이나 손해가 동반한다. 우리는 서로 다르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불합리함에 화병이 나서 “왜 이래?”를 외치면 “왜 저래?”로 돌아올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낯선 곳에 적응하기 어려운 이유는 자신의 방식이 너무 고정되고 확고해져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유연함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는 상대가 황당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란 존재는 얼마나 새로울 것인가?  어쩌면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지나친 것을 요구하는 지독한 이방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천천히 바라본 적이 있었나? 가능한 힘을 빼고 대상 안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그 가치를 발견하려고 애쓰고 기다린 적이 있었나? 많은 경험을 하고 세상을 이해한다는 건 지금껏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그 비밀을 발견할 때 다가오는 기쁨과 마주하는 일이다. 나와 다름에 매력을 느끼고 그 안에 깃들어 있는 독특한 세상의 흐름에 동참해 보자. 그럴수록 나는 불평보다는 기쁨과 마주할 것이다. 아름다움이 빛나는 건 그가 동시에 추함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아름답고 또 추하다. 그 두 가지를 모두  본다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또는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나는 좋은 것만 봄으로서 스스로를 속이기보다 상대의 불완전함을 앎으로서 이해의 경지에 이르기 원한다. 세상이 좀 내 맘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불합리해 보여도 천천히 바라보면, 

“그래……”

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체류허가증 #밀라노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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