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에서의 인턴 일지
만약 우리의 마음이 하나의 길로만 흘러간다면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갈등과 고통은 반으로 줄어들지도 모른다. 우리의 양면성 그것은 우리를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가. 그 상반되는 마음과 양상은 내가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사람인가를 깨닫게 하고 내 안에 존재하는 그 모순과 다투게 한다. 단순하고 담백한 사람,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 편안함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순수하고 깨끗한 자아.
내 나이쯤에 이르면 우리는 어떤 일에 뛰어들 때 마치 그것이 나의 전부가 아닌 것처럼, 마치 어지간한 것들은 초월한 듯 가볍게 보려하는 마음과, 동시에 그것에 집중할수록 나의 마음의 전부를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 둘 사이에 끼이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거리를 두고 그 대상의 고유성을 지켜주면서 온전히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과, 자꾸 빗나가는 상대를 향해 끊임없이 나의 기대와 바람이 닿기를 원하는 것과 유사하다. 우리는 서로 상이한 두 가지의 마음이 공존하는 것을 견뎌내지 못하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려고 한다. 그 불편함을 견뎌내지 못한다. 둘 사이에 끼이면 갈등과 혼돈을 경험해야 한다. 사이에 끼어 있는 사람은 불안정하다. 중간에 끼인 사람은 움직일 때마다 주변과 충돌한다. 부딪힘은 반응을 만들어 내고 반응은 또 다른 반향을 일으킨다. 그것에 반응을 한다는 것은 나를 나의 한 부분을 내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를 수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 가지 사이에 있는 사람은 어느 한쪽에 치우쳐 살아가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들을 경험한다.
타지에서의 삶은 너무나 좋고 또 너무나 괴롭다. 너무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동시에 지금처럼 멀리 머물러 있고 싶다. 차가 없어 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마트에 들어 직접 장을 보고 신선한 재료로 먹을 것을 만들어 먹는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전에 일찍 일어나 직접 도시락을 만들어 회사에 가져간다. 이러한 일상이 어느덧 자연스러워졌고 불편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오히려 나에게 자유를 주고 있다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이탈리아 회사에 인턴이라는 포지션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회사에 가면 이것저것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의 일정 부분에 대한 작업이 주어진다. 정리해 보면, 콘셉트 정리 및 이미지 구현, 프레젠테이션 자료 만들기, 3D 모델링 작업, 종이 목업(Mock-up) 작업 등등 다양한 작업으로 프로젝트를 서포트하고 있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가능했을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면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었을까? 낯설고 외로운 환경이지만 나이나 경력을 생각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건 여기가 유럽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보다 스무 살도 더 어린 딸 같은 아이들과 격이 없이 친구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나 스스로가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상대는 나를 그냥 “보아”라는 이름의 친구로만 대한다.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 나의 자리를 찾고 싶지만 다시 구태의연한 방식의 틀로 회기 하는 것이 두렵다. 생각해 보면 어느 순간부터 양가의 감정과 생각 속에서 다투는 삶을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쉽게 포기하고 던저버렸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를 늘 시간이 흘러간 후에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모든 위험과 불안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려고 도망가고 도망가고. 둘 사이에 끼어 버티는 삶을 버겁게만 생각했다. 너무 지쳐버리면 별 수 없겠지만 그래도 힘닿는 한 가보려고 한다. 혼돈의 별이 추는 춤을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