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기로 마음먹으며

by 오로시

가장 깊은 애정의 발현


남녀의 정신적 사랑을 뜻하는 ‘플라토닉 러브’라는 말은 플라톤의 ‘대화’ 중 <향연> 편에서 기원한다. 사실 플라톤 자신의 철학과는 크게 관련이 없고, 오히려 소크라테스가 한 발언 중 올바른 사랑의 방법이란 지혜를 사랑하는 모습으로 다른 이를 사랑함이라 말한 것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플라톤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 이유는 지혜를 찾는 절절한 마음으로 소크라테스를 존경했으며 그의 대화를 기록으로 남긴 사람이 바로 플라톤이기 때문이다. 저서를 한 권도 남기지 않은 소크라테스의 철학과 사상을 오랜 후대의 우리가 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플라토닉 러브에서 발현한 기록 덕분인 것이다. 플라톤과 그의 저술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어느 부분부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자신의 철학이 구분되는가에 대한 문제를 두고 나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에, 플라톤은 다른 무엇도 아닌 소크라테스의 대화들을 통해 진리에 대한 탐색을 이어가고자 했으니 그가 소크라테스를 깊이 애정 했음 에는 틀림이 없다.


시간은 덧없고 기억은 불완전하며 신체는 날마다 사그라져간다. 나는 변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두는 많은 방법 중, 가장 깊은 마음이 발현되어 나타나는 형태가 글이라고 생각한다. 함께한 기억을 더듬어 과거로 올라가, 같은 의미의 많은 단어들 중에서도 어느 하나의 단어를 골라 그 순간을 표현하는 과정. 흐릿한 과거의 어느 날은 글쓰기의 과정 중에 더 또렷해지고, 당시의 평범했던 순간은 특별한 의미로 채워지고는 한다. 올 해로 스물여덟이 된 나는, 지난 서른 해 가량 사랑해온 우리를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화'처럼 역사에 길이길이 보전되는 거창한 글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서로를 향한 우리의 애정은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에 못지않게 깊고 가득하기에 꼭 남겨두고 싶다.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페낭에, 두니와 나는 한국에. 이렇게 떨어져 있는 우리는 일 년에 20일 즈음을 겨우 함께 보낸다. 벌써 지천명의 나이도 훌쩍 넘으신 부모님이시지만, 바다 건너 멀리에서도 여전히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나를 꾸짖으신다. "집에서 밥 좀 해 먹어라, 술 좀 적당히 마셔라, 아프면 골병 들기 전에 병원 가라." 죄송스럽게도 이제는 철이 들었을 법한 나이의 과년한 딸 또한 여전하다. 집을 떠나온 그때에 멈춘 듯 아직도 마음 보이기에 서툴러서는, "점심때 다 되었는데 진지는 드셨어요?" 하는 의젓한 문안 인사는 속으로만 되뇐다. 입 밖으로는 어리광 섞인 목소리로 “아버지 저 하나도 안 아프고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둘러대며 서둘러 전화를 마무리하려고만 한다.


몇 해 전부터, 짙고 숱이 많았던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자꾸 힘을 잃고 주저앉기 시작했다. 세상의 많은 모든 딸이 느끼는 것을 나도 이제 겨우 깨달아 간다.

언제까지고 곁에 계시지 않겠구나


만약 부모님께서 앞으로 50년을 더 사신다고 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2년 9개월 정도를 함께 보낼 수 있다.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 현저히,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우리의 사랑이 하루라도 더 세상에 머무르도록, 그 모든 순간이 오래오래 간직되도록 이야기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