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한소울 Sep 18. 2021

다람쥐 쳇바퀴를 벗어나려면

- 따뜻한 말 한마디가 듣고 싶어서 상담을 시작했다 -

재작년부터 심리 상담을 받았다. 회사에 다닐수록 마음속에 화가 쌓이고, 민원인에게 짜증을 내고 나서 후회하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나를 멈춰세우고 싶었다.


그 당시 같은 업무를 맡았던 동료들은 각자 업무 부담이 많았고, 원래 말수도 적은 편이라 업무 중에는 사적인 대화가 전혀 없었다. 나는 사소한 잡담을 하면서 복잡해진 기분을 환기하고 싶었는데, 내가 거는 말을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방금 전화 끊은 민원인이 저한테 이런 욕을 하더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너만 힘든 거 아냐. 다 힘들게 일해.”     


“완전 진상인 그 민원인 또 전화 왔었어요. 진짜 답답하네요.”

하하…”


그때의 나는 참 공감받고 싶었다. “어쩜 그런 사람이 다 있냐?”, “정말 힘들었겠다!” 같은 말을 듣기만 해도 잔뜩 구겨진 마음이 쫙 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일에 치여 살던 동료들은 그런 말을 해줄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혹시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받아주면 내 일을 덜어줘야 되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싶기까지 했다.     


결국 상담센터를 찾아갔다. 마침 회사에는 협약을 맺은 상담센터에서 몇 회간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복지제도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만난 상담 선생님은 내 말을 경청하고 공감해주었다.      


“어우~ 저런~ 정말 힘들었겠네요~”

“그런 말 들었을 때는 어떤 기분이 드셨어요?”

“그럼 그 사람들이 00씨한테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상담시간만큼은 내 말에 엄청나게 집중해서(심지어 꼼꼼하게 필기하면서!) 들어주고, 내 안에서만 홀로 피고 지었던 수많은 마음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주었다. 그동안 내 답답함을 엄마나 친한 친구들에게 토로해봤지만, 백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은 시원함의 정도는 비교가 안 됐다. 역시 배운 사람은 다르다!     


상담을 받은 지 2년이 넘어간다. 정기적으로 피부 마사지를 받듯이, 마음도 주름을 쫙쫙 피고 부족해진 영양을 채우러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상담센터에 간다. 내 말을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사실이 팍팍한 세상을 사는데 커다란 위안이 된다.     


선생님과 같이 내 마음속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마음이 없다는 걸 배웠다. 그동안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제일 멋지고 좋은 모습만 남들에게 보이고 싶었다.     


어그러지고 못난 내 모습을 들킬 때마다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나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자주 혼란스러웠다. 좋은 얘기를 들은 날은 기분이 날듯이 좋고, 나쁜 얘기를 들었을 때는 자신감이 뚝 떨어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여러 심리학 책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어떤 부분에서 약하고 야박한지, 어떤 부분에서 강하고 너그러운지 아는 것. 약하고 야박한 마음이 들 땐 얼른 상태를 인지하고 상황을 더 진행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너그러운 마음이 들 때는 절대로 당연하지 않다고 훌륭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전한다.      


2년째 연습 중인데 나아진 듯 하다가도 가끔씩 다시 무너지고 만다. 얼마 전에도 상담을 다녀왔다. 나는 회사 일로 후폭풍을 겪는 중이었다. 현실의 문제는 해결됐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그 시간 속에 남겨져 있었다.

     

나는 매일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봤다.  행동과 판단이 또다시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염려했다. 문제 상황을 단기간에 회복할  있었던  내가 문제를 빠르게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를 문제 있다고 봤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간이 지나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기는 쉽지 않아서 지쳐있던 참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나를 보며 답답해했다. 내가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는 걸 왜 아직도 믿지 못하냐고 말했다. 상황을 계속해서 확대하고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건 나라고 했다.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같이 길을 잃지 않고 필요한 격려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은 참 드물다. 상담 선생님은 근사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어른 중 한 명이다. 예전에 상담 선생님이 내게 이런 말을 해준 적 있다.      


“1만 시간의 법칙 아세요?”

“누구나 1만 시간 동안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근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전문가가 되려면, 1만시간 동안 그냥 일을 꾸준히 하기만 하는 게 아니고요. 시험문제 틀리면 오답노트를 쓰듯이 꼼꼼하게 틀린 이유를 찾고 또 틀리지 않게 노력해야 해요.”     


나를 답답해하셨던 그 날, 사실은 상담 선생님이 “무너져도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아서 조금 속상하긴 했다. 다른 이유로 또 무너지게 되더라도 옆에 있어 주겠다고, 다시 쌓아 나가보자고 말해주길 바랐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상황이다. 듣고 싶은 말이 있는데 누군가 말해줬으면 하는 것. 아직도 혼자서는 확신이 부족하구나 싶지만, 괜찮다. 나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니까. 적어도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오늘까진 믿을만한 사람에게 콕 집어 말해달라고 부탁이라도 해보지 뭐.


나는 오답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