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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woo Ahn Apr 04. 2019

개발자 인생 회고 #2

올라운드 플레이어라고 쓰고 잡부라 읽는다

그렇게 들어간 B사는 기본적으로 온라인 게임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 주 비즈니스였다. 여기서 온라인 게임 플랫폼은 간단히 설명하자면 배틀넷(battle.net)이라고 보면 되겠다. 요즘에야 인터넷 상에서 플레이가 가능하지 않은 게임을 찾아 보기가 더 어려운 세상이지만,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로컬 네트워크 상에서 IPX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멀티 플레이 방식이었다. B사는 IPX 프로토콜을 TCP/IP 상에서 에뮬레이션해주는 Kali를 라이선싱해서 LAN에서만 멀티플레이가 가능했던 게임들을 인터넷 상에서 플레이할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을 제공했다.

사이트에 가입해서 해당 플랫폼에서 지원하는 게임 클라이언트 패치를 받은 후, 게임을 실행시키면 인터넷에서 멀티 플레이가 되고, 일부 게임들의 경우에는 게임의 승패에 따라 랭킹이 기록되었다.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임 개발사가 게임을 업데이트할 때마다 Kali에 보내 매번 새로 패치를 해야 했고, 게임 내부에서의 승패 판정을 알아내기 위해 메모리를 뒤져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거의 핵에 가깝다).


당시 스타크래프트의 선풍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초기에는 배틀넷에서 보다 로컬 IPX로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았고, 로컬 플레이에도 랭킹이 관리되기를 원하는 사용자의 니즈를 파고 들어간 것이다. 여기다 당시 여러 기업들이 게임 이벤트나 대회를 호스팅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많아, 이러한 기업을 대상으로 플랫폼을 납품하는게 B사의 가장 주요한 수익 모델이었다.


그런데 회사 규모에 비해, 개발자의 숫자는 절대적으로 작았다. VC++ 개발자가 나를 포함해서 5명이고, ASP 웹 개발자 1명이 전부였다(이 시기는 ASP도 초창기였고, 대부분 cgi나 isapi로 개발하던 때다).

내 경우는 회사의 메인 업무인 게임 플랫폼은 물론 온갖 잡다한 업무를 떠맡았다. 다른 수익원 중 하나였던 전화 접속 인터넷(네오위즈의 원클릭과 유사)을 유지보수하기도 했고, 직접 게임을 서비스하기 위해 라이선스를 맺은 외산 게임을 한글화하는 작업도 했으며, 이 게임과 연동하기 위한 인증/빌링을 개발하기도 했다. 때로는 서버 설치도 하고, 서비스 운영도 하며, 외국 회사들과 이메일도 매우 자주 주고 받아야했다.

같이 일하던 웹 개발자는 혼자 모든 웹 사이트(10개가 넘었다)를 개발/운영하다가 결국 몇달만에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다.


인력의 부족을 떠나서 가장 의문스러운 점은 경영의 불투명이었다. 쪼렙 개발자가 경영을 알 필요가 뭐 있겠냐고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뭔가 돌아가는게 이상했다.

회사는 막강한 영업력으로 연거푸 큰 계약을 따내고 있었고, 코스닥 상장을 위한 단계를 밟고 있었다. 당시 상장 심사를 받는 과정을 지켜봤었는데, 과연 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운게 한두개가 아니었다(이후에 상장 심사가 크게 강화된 것으로 안다). 무엇보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욕심이 많아 보였던 사장에 대한 비리설도 끊이지 않았다(결국 이것이 나중에 회사를 파국으로 이끈다).


그러던 와중에 함께 일하던 개발자 L씨로부터 자신이 회사를 하나 만드려고 하는데 같이 할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받았다. 뭐든지 맡기는대로 어떻게든 해내는 올라운드 플레이(잡부?)에 감명이 깊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L이 설명한 사업 아이디어는 간단히 말해 CSP(Content Service Provider)를 위한 플랫폼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즉, 컨텐츠를 생산/제공하는 CP(Content Provider)와 컨텐츠 소비자 사이에서 CSP가 컨텐츠를 중개/유통하는 모델이다. CSP는 CP들과의 컨텐츠 공급 계약과 소비자-컨텐츠 간의 구독을 관리하며, 그로 인한 빌링 모델을 책임져서 컨텐츠 이용 대금을 CP에게 정산해주는 방식이다. 지금이야 흔한 모델이지만, 99년말-2000년즘에는 매우 흥미로운 얘기였다.


사실 주식 상장을 불과 몇달 앞두고 있는 회사를 그만둔다고 결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업 모델에 흥미가 간 것도 있지만,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하기보다는 무엇인가에 몰두해서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기에, 결국 나는 L의 회사에 합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퇴사를 하기 직전에 사장과 면담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장은 상장 시 내가 받게 될 주식 옵션을 얘기하면서 나를 붙잡으려고 이를 썼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받을건 받고 나갔으면 되었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냥 때려치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사장은 1년 안에는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리턴 티켓을 주겠다고 했지만, 돌아갈 생각이면 애초에 나갈 생각도 없었다.


내가 퇴사하고 몇달 뒤, B사(나중에 회사명은 바뀌었다)는 정말 예정대로 상장을 했다. 2만원에 상장해서 7만원까지인가 피크를 찍었고, 당시 주식을 받은 직원들은 꽤 쏠쏠한 재미를 봤다고 한다. 하지만 주가는 이후 내리막을 걸었고 사장은 계속된 비리를 저지르다 결국 금융감독원에 적발되어 퇴출당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때 B사의 주식은 300원이었고, 끝내는 상장 폐지의 수순을 겪었다.


B사에서 내가 얻었던 것은 서비스의 개발/운영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함께, 외국 회사들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업무를 해봤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특히 후자가 결국 나를 미국까지 오게 만든 첫 단추의 역할을 한 건지도.


그리하여 나는 부푼 희망을 가지고 K사의 창립 멤버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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