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사소함과 분노와 무력감에 대하여
세상에는 분노할 일이 너무 많다. 누군가에게 사소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존재를 위협받는 사건이 될 때도 있다. 그래서 분노할 일이 많다. 뉴스를 장식하는 이제 놀랍지 않을 만한데도 매일 놀라운 사건들 말고도,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사소한' 폭력들. 매일 분노해야 하는 일에 지쳐 어떤 '사소한' 폭력에 대해서는 나 자신을 모른척하기도 한다. '사소한' 폭력. 별일 아닌 일을 당한 것처럼. 그러다 오늘은 너무 비일상적인 폭력의 말을 들었다. 나를 향한 것도, 그 자리의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러나 동시에 나나 누군가를 향한 것이 될 수도 있는. 나라는 존재를 지우는 말. 사실 그 자리 자체가 견디기 힘든 폭력과 분노의 말들(위에서 쓴, 폭력에 대한 분노와는 다른, 악에 받쳐 분노만이 남은 분노. 폭력을 부르는 분노)로 가득찬,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자리였지만. 그 가운데에서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욕지기가 올라오는 그 말을 들었다. 그것은 인간성이란 돈보다 못하다는 말에 다름아니었고 여성을 속수무책으로 사물화시키는 말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딸들의 사지를 절단시키는 것 같은 말을, 인간성을 짓밟는 말을 들었다. 그에게도 딸이 있을까. '사소한' 폭력에 대해 분노하는 나 자신을 모른 척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나는, 그 말이 그 말이 아니겠지 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방어했다, 혹은 기만했다.
하지만 무방비 상태에서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칼날같은 말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 것은 사람을 취약하게 만든다. 방어를 위한 발톱을 계속 세우고 견디는 것은 지치는 일이다.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고,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조금은 가볍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가볍고, 어떤 것이 무거운가? 어떤 것이 더 사소하고 어떤 것이 덜 사소한가? 그 일을 겪고 질식할 것 같은 무더위와 섬뜩한 무게에 짓눌려 돌아오는 길에, 인도 위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70줄은 되어 보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입을 다 가리고 장비깨나 갖추고 자전거 타는 이로 보이던 그는 다짜고짜 눈을 부릅뜨며 내게 “오른쪽으로 다니란 말이야!”하고 고함쳤다. 그러고는 바로 내 뒤로 지나던 다른 (여자) 사람들에게도 고함을 치던 터라 내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곘지만, 나도 질세라 “여기는 인도라고요!”라고 소리쳤다. 나는 분명 내 기분에 대한 화풀이를 한 것일 테다. 그러나 분명히 그가 나이와 성별이라는 자신의 알량한 권력으로 지나가는 여자들을 위협하는 상황이었고, 자전거깨나 탄다면서 본인이 통행로를 전세낸 것처럼 구는 사람들은 보통 그러한 위인들이다. 내가 기에 눌릴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대로변이었고, 상대는 그나마 만만해 보였고. 그러나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나는 다루기 힘든 상황에서는 침묵을 택하는 인간인 걸까.
일상적인 폭력은 말과 시선에 담겨 있다. 그것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속속들이 파고들고, 아주 사소하고 작은 말과 행동, 습관까지 위축시켜 왔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그 자리에서 점잖은 체하며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어떤 정도의 말이면 그 역겨운 말들을 뱉는 입을 영원히 다물게 할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이런 말들에 얼어붙지도 않고,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무력감은 일상을 파괴한다. 이 무력감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두렵다. 힘을 길러야 한다. 나를 움츠러들도록 만든 것들에 대해 써 보면 조금 도움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