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7월, 그 집으로 이사하던 날엔 비가 많이 왔었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이라서, 원룸 이사를 해 주는 용달 트럭 아저씨가 고생깨나 하셨다. 인근 빌라 주차장에 잠깐 트럭을 댔는데 그 건물에 사는 아주머니가 뭐라고 해서 결국 트럭을 길가에 대 놓고 짐을 옮겨야 했다. 아저씨가 나 없고 승리만 있을 때 ‘속이 좁네, 염병을 해쌓네’ 하면서 기깔나게 욕을 했다고 한다. 그 전날 승리의 보라매동 원룸에서 새벽내 짐을 버리고 싸고 하던 것과 비 오던 아침 그 용달 트럭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앞유리 쪽 빼곡한 잡동사니들을 보며 피곤한 중에 느끼던 생경함이 생생하다. 아마 무릎에는 고양이 달리가 있는 케이지를 꼭 안고 있었을 것이다.
처음 이사 온 날, 새로운 풍경을 눈에 담는 달리
우리는 그 집에서 꼬박 2년을 살았다. 언제인지 알 수 없었던 재개발이 우리가 사는 동안 점점 현실이 되었고 어느 날인가는 조합인지 건설사인지에서 나온 낯선 사람 두셋이 문을 두드리더니 (초인종이 있기는 있었다) 다짜고짜 집 사진을 여러 장 찍어 갔다. 그 침입자들이 우리 집에 들어오고 사진을 찍도록 허용했다는 것이 그날 내내 분했다. 우리가 살았던 첫 집에서, 나는 애착과 언젠가 떠나야 할 집이라는 이질감을 동시에 느끼며 그 집을 그 골목을 사랑했다. 사랑하지만 사랑해서는 안 되는 존재를 사랑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는 동안 윗집 세입자가 바뀌었고 옆 건물 이웃이 이사를 갔다. 아마도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옆 건물 이웃 가족이 넘겨준 길고양이 밥주기 미션을 수행하게 되었다. 주인집 아줌마랑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하면서.
그 집에서 많은 처음을 겪었다. 아기고양이 봄이가 우리에게 왔고, 우리는 함께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엄마가 키우는 암컷 고양이 살구가 잠깐 우리 집에 왔을 때, 중성화가 되지 않은 상태였던 달리가 온몸의털을 세우고, 살구를 격리시킨 승리를 향해 “수컷!!!!!!야아오오옹!!!!!!!!!”하고 공격성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승리가 겁에 질리기도 했다. 월드컵 중계를 보려고 서둘러 집에 들어가던 날골목에서 죽어가는 고양이를 발견해 병원에 데려갔지만 그 고양이가 결국 죽었다. 오 분 거리에 술 한잔 할 친한 선배들이 사는 따뜻함도 있었다. 내가 서울에서 살아 본 동네 중에 가장 정겹고 시골스러운 동네이기도 했다. 할머니들이 길가에 앉아 두런두런했다. 지나가다 귀를 쫑긋해 보면 며느리 욕도 있었고, 동네 사람 흉도 있었지만.
우리 집으로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면
그 집에 이사한 후에야 비로소 승리와 나는 정말로 ‘같이 살기’를 선택했다. ‘같이 살기’의 실전편을 맛보게 되었으니까. 그 집에 사는 처음 1년 정도의 기간 동안, 몇 번을 심각하게 싸우고 끝을 말하다 망설이고, 서로의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았다. 모진 말을 내뱉고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워 담으려 애쓰면서 우리는 함께 사는 것의 어려움을 몸서리치게 느꼈다. 우리는 서로를 잃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 하고 소리내어 말했는지 말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마음이 들었다. 서로를 잃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서로의 말과 행동 뒤에 있는 마음이 조금은 더 잘 보이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그 집에서 쌓은 신뢰는 재개발이 들어온다고 해서 허물어지지 않는 집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 방에서 많은 것들을 기념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웠다. 엄마가 나와 동생을 위해 정성스레 갈무리해 둔앨범 속 사진들을보면 우리 가족의 행복한 일상과 즐거웠던 순간들이 보이지만, 그 사이사이 곧 폭탄이 터질 것 같은 긴장의 순간들이 기억난다. 내가 일곱 살 무렵부터 엄마와 아빠는 따로 살았다. 우리는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고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우리를 찾아왔다. 그 기간에도 즐거운 순간들에 뒤섞인 얼룩진 시한폭탄 같은 기억들이 있다. 내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엄마와 아빠가 다시 함께 살았는데,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늘 어긋나 있던 두 사람은 전쟁 같은 시기를 거쳐 결국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헤어졌다.
그러니까 나는 사춘기 즈음부터는, 내가 나중에 커서 결혼이란 걸 한다면 엄마 아빠처럼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몸서리를 쳤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 것이었을 테지만. 엄마와 살다가 나는 집을, 아니 엄마를 떠났다. 나의 집을 찾았고, 그 다음에는 우리 둘의 집을 찾았다.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에 결혼을 했다.
한여름이 지나가고 가을과 겨울이 되고, 다시 봄이 오고 한여름이 왔다. 그리고 한번 더. 큰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좌우반전한 ㄱ자로 된 골목으로 들어가야 나오는 비밀스러운 곳에 있는 다세대주택 1층. 그 골목 안에 가가호호가 있고, 우리 집은 안이 들여다보이는 낮은 붉은 벽돌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여름에 하루종일 창문을 열어 놓으면, 창 밖을 내다보는 달리와 옆집 아주머니가 마주친다. “고양이 안녕” 아주머니가 인사하고, 달리는 도망친다. 그 집에서는 그 집 냄새가 난다. 마치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이 조금씩 남겨 놓고 간 흔적들이 엷게 쌓여 내는 것 같은, 오래 된 집 냄새. 창문 안을 몰래 들여다보던 길고양이들, 엄마 고양이가 버렸는지 결국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린, 아주 작았던 아기 고양이들. 한밤중에 살금살금 나가 고양이들을 숨어서 몰래 보곤 했다. 집 안에서는 오래 된 마룻바닥으로 가끔 기어나오는 바퀴벌레를 봄이가 잡곤 했다. 내가 그 사실을 알고 경악할까 봐, 승리는 아침에 먼저 일어나면 그 벌레를 치웠다고 한다. 또 가끔 승리랑 작은방 흰 벽에 영화를 틀어 보곤 했다. 그러다 열 번 중 여덟 번쯤은 승리가 먼저 잠들었다. 그 집의 비오는 날의 서늘함, 그 집의 뜨거운 여름밤, 그 집의 한겨울 난방텐트.
작년 여름에 우리의 두 번째 이사를 했다. 이번엔 40도에 육박하는 더위였다. 작년 여름의 더운 날들 중에서도 가장 더운 날이었다. 첫 이삿날을 잘못 정해서 우리는 여름마다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번 집에는 오래 머물자. 그래도 혹시 사정이 바뀐다면 투룸으로 이사 가자. 새로운 계획들이 자란다. 이번 집에도 벌써 많은 처음이 있다. 복층에 처음 살아 보게 되었고, 지금까지 살아 본 곳 중 가장 높다. 처음으로 달리와 봄이와 우리 넷이 함께 이사를 했다. 봄이에겐 첫 이사다. 이사 와서 알게 된 옆집 이웃을 우리 집에 초대했다. 이 집은 지난 집보다 많이 작지만, 좋은 점도 있다. 신축이라 벌레가 안 나와서 승리가 아침에 토막난 벌레를 치우고 내게는 비밀로 하지 않아도 된다.시간은 차곡차곡 과거가 되고, 우리의 모험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