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는 이름처럼 항상 봄 같은 아이다. 사람 손님이 오면 일단은 숨어 버리는 달리와는 달리, 봄이는 예의상 조금 낯을 가리는 척(?) 하다가 곧 손님 앞에 누워 배를 뒤집고, 쓰다듬어 주면 좋아하고, 지긋이 바라보며 매력을 발산하곤 한다. 늘 달리의 등쌀에 밀리는 건지, 달리가 없을 때만 우리에게 만져 달라며 가르릉대고, 그러다가도 달리가 나타나면 혼자 멀리 가 있곤 했다. 항상 예민한 달리와는 달리 주변 자극에 무던한 아이다. 아니 그랬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봄이는.
봄같은 우리 봄이
그런 봄이가 어제 나에게 하악질을 했다. 정말 처음으로. 봄이가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나나 승리에게 하악질을 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오직 사냥감(주로 장난감)을 좇을 때, 야생의 본능이 올라올 때만 달리에게만 하악질을 할 뿐이었다. 그런데 어제 봄이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사실 최근 우리에겐 작은 변화가 있었다. 우리 인간에게는 정말 솜뭉치만큼 작은 변화이지만 우리 달리 봄이에게는 큰 변화이다. 우리 집엔 아기고양이 오월이가 임시로 와 있다. 아기고양이든 큰 고양이든 집에 다른 고양이가 와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집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이다. 물론 큰 고양이라면 그 정도가 훨씬 심각할 테고, 아기고양이라서 위협하고 경계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일 테다.
객식구가 된 아기고양이 오월이. 고롱고롱한 눈망울
오월이를 데려온 날 달리와 봄이의 눈빛
사실 작년 이맘때쯤에도 우리는 비슷한 연령의 (색깔도 비슷하다. 치즈태비) 아기고양이를 임시보호했었다. 작년에 우리가 입양보낸 아기고양이 봉봉이는 눈치없게도 우리가 자는 침대 매트리스까지 올라와, 안 그래도 도끼눈을 뜨고 있던 고양이 형 누나의 심기를 긁었었다. 봉봉이가 우리 집에 있었던 시기, 어느 날 갑자기 달리의 목소리가 이상해지고 켁켁 토하듯 기침을 했다. 깜짝 놀라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은 고양이 감기라면서 혹시 집에 새로운 고양이가 왔느냐고 물어 보셨다. 선생님, 점쟁이신지...? 달리는 스트레스로 감기까지 걸렸던 것이고, 알고 보니 비슷한 상황에서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었던 것이다.
오월이를 집에 갑자기 데려와야만 하게 되었을 때도 우리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달리 봄이, 그 중에서도 달리의 반응이었다. 감기까지 걸렸던 전적이 있으니까. 나도 항상 예민한 달리의 스트레스를 걱정하지만, 봄이의 스트레스는 많이 걱정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 객식구인 오월이에게 정작 달리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평소에 비해 달리가 더 무던해진 느낌이다. 오월이를 데려온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에 비해 봄이는 오월이랑 마주치기만 해도 하악거리고, 심지어 충격적이게도 나에게까지 하악질을 하고 있다. 더 배신감이 느껴지는 것은, 승리에게는 하악질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승리는 “니가 애기를 데려왔다고 생각하나 봐” 하고 깔깔거린다. (죽일까...) 봄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궁디팡팡도 평소보다 더 정성들여 해주고 어르고 달래며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하악질이었다. 막 나를 물려고 했다. 정말 되돌릴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우리 순하디 순한 봄이가 어떻게 이런 반응을 보일 수가 있을까.
봄이, 꼬꼬마 시절. 달리한테 맞고도 해맑은 아이였다. 고양이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더니(응?).
우리는 왜 봄이가 더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지, 그리고 왜 나에게만 하악질을 하고 승리에게는 하지 않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을 해 보았다. 첫 번째 가설은 서열이 더 위인 달리가 봄이를 시켜서 신참을 깐다는 것이었다. 고양이 사회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서열 사회니까… 하지만 그리 마음에 드는 해석은 아니었고, 도대체 신빙성도 없다. 그리고 봄이가 나에게만 하악질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을 해 주지 못한다. 두 번째 가설은아기 오월이가 보통 1층에 있는데 그 동안 봄이의 구역이 주로 1층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역시 나를 멀리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지 못한다. 세 번째는 아기 객식구가 작년에는 수컷이었는데 지금은 암컷이기 때문이라는 가설이었는데, 이 가설은 전제가 틀렸음이 증명되었다. 병원에 가서 확인한 결과 오월이는 수컷이었다. 어쨌든 승리가 주장했던 이 가설에 따르면 나에게만 하악질하는 이유도 내가 암컷(…)이기 때문이지만, 인간사회의 문화적 프레임을 고양이에게 덧씌운다는 혐의가 짙고 정치적으로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역시나 틀린 가설이었다.
다행히 오늘은 예전의 봄이로 돌아와 나에게 심하게 굴지 않았다. 봄이가 내게만 하악질한 이유에 대해서는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이유야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봄이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나에게 하악질 하는 봄이라니 정말 혼란스럽다. 아기고양이 오월이로 인해 봄이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미안하다. 늘 무던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봄이라서 더 그렇다. 달리도 오히려 봄이가 예민해지니까 배려해 주고 봄이가 우리에게 집착하는 것을 이해해 주는 것 같다. 달리가 평소에 말이 많고 자주 찡찡대는 편인데, 오월이가 온 이후로 그렇지가 않다. 아기고양이의 등장으로 우리 아이들의 새로운 면을 본다. 어쩌면 봄이가 이 기회에 더 많이 나를 봐 달라고 하는 것일지도, 더 많이 응석을 부려 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들의 마음은 알 수가 없으니까. 달리와 봄이가 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사랑을 주는 일, 달리 봄이의 마음을 파악하려 하며 노력해 보지만 언제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