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셀프 상담 2 : 열심히 하고 싶지 않아
노력에 반대한다, 발칙한 셀프 상담 두 번째 이야기
퇴사를 하고 고민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도무지 무엇도 예전처럼 열심히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의 퇴사 후 조금도 쉬지 않고 곧바로 공부를 시작한 자신과는 상반되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내 마음속에 '음, 역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은데...'라는 한량 같은 마음이 숨어 있기 때문에 전자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열심히 하고 싶지 않으니까, '음.... 네, 제 딴에는 최선을 다했는데 말입니다, 그게 그만 잘 안 풀렸지 말입니다'라는 입에 발린 변명조차 하기가 싫은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분명 성취욕과 야망으로 똘똘 뭉친 젊은이였다. '열심히 노력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커리어의 한 획을 그어야지!'라는 패기로 가득했었는데... 요즈음엔 성공한 사람들을 봐도 별 감흥이 없고, 그것이 부럽기는커녕 나도 모르게 그들의 인생이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불하며 소모되었을지, 이 한 명의 승리자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패배자' 딱지를 달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을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과 달리, 나는 더 이상 좋은 차가 갖고 싶지도, 좋은 집이 갖고 싶지도, 좋은 직업이 갖고 싶지도 않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가지기 싫은 건 아니고, 물론 누가 주면 넙죽 갖겠지만 현재로서는 전혀 그런 것들이 동기부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나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가질 수 있을 확률도 그리 높지 않은데, 그마저도 몸과 마음을 탈탈 털어 영혼 써는 탈곡기 같은 기계에 넣어 한참 돌린 후,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싹싹 갈아서 장기 할부로 팔겠다고 맹세해야 가능할 것 같아서일까.
(써 놓고 보니 이건 뭐 거의 악마와 계약하는 수준이다...)
그냥 열정을 잃은 건지, 아니면 반대로 깊은 깨달음을 얻은 건지, 아무튼 나는 더 이상 '무엇이 되기 위해' 현재를 다 팔아넘기는 삶을 살고 싶지가 않다. 그렇다고 일을 하기 싫다거나 빈둥빈둥 놀고 싶다는 건 아닌데.... 그렇게 '노오력'해봤자 재주 부리는 곰 같다는 사실이 비참해서일까. 아무튼 요즘 나는 뭔가 좀 이상하다.
이 글을 보는 꿈 있는 자여, 부디 나를 너무 한심하게 보지는 말아 달라. 나도 이런 나를 데리고 사는 게 처음이라 매우 생소하고, 불편하다.
상담 결과, 이 케이스는 매우 간단했다.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들어온 월급의 절반 가량을 카드 대금 즉시결제로 처리하게 하고, 다시는 신용카드를 쓰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은 뒤, 알바 사이트와 구직 사이트를 번갈아가며 보여주며 이렇게 노오력해야 가까스로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자 그는 금방 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오늘 치료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