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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양 May 09. 2021

너에게 쓰는 첫 번째 편지

안녕, 아이야. 한겨울에 태어난 나와 달리 너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기 시작하는 한여름의 시작점에 세상에 나왔단다. 엄마의 뱃속이 좋았는지, 예정일이 훌쩍 지나도록 나오지 않아 촉진제를 맞으며 만나는 순간을 재촉했지. 설레는 마음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며칠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속도 타고 마음도 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태어나자마자 초록색 똥을 한가득 쌌다는 얘기를 듣고 너 또한 뱃속에서 안간힘을 썼겠구나 싶더라. 우리는 그렇게 긴 시간 서로를 그리다 고생스럽게 만나게 되었어.


어린 시절, 나의 엄마로부터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어. 하지만 너를 만난 순간 첫눈에 반해버렸고, 나를 찾는 너의 몸짓을 보며 모성이라는 것을 배웠어. 받은 것이 없어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를 것이라 생각하며 두려워했던 마음은 온데 없고, 너를 향한 사랑만 가득했었다. 아빠를 쏙 빼닮은 외모에 엄마와 똑같은 성격을 가진 너는 사랑 그 자체였지. 호기심이 많아 7개월 만에 걷기 시작한 너를 보며 나는 다짐했어. 너의 자유분방하고 호기심 가득한 그 모습 그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줘야겠다고 말이야.


넘치는 호기심에 테이블 위에 위에 있는 물건을 잡겠다고 손을 뻗다가 무거운 머리를 지탱하지 못하고 서있던 그대로 뒤통수부터 쿵! 넘어가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느새 쑥쑥 자라 높고 높은 미끄럼틀 꼭대기까지 올라가 웃으며 신나 하는 장난꾸러기가 되었구나. 어릴 때는 그저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기만 해도 좋았는데 자랄수록 엄마의 욕심과 바람도 커져가는 것만 같다. 웃어른께 예의가 바른 아이였으면 싶고, 친구들과 싸우지 않고 잘 어울리는 아이였으면 싶고, 동생들에게 의로운 형이 되었으면 싶고, 엄마랑 아빠가 하는 말을 잘 들었으면 싶은, 엄마 입맛에 맞는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문득문득 올라온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은 네가 아닌 나를 위한 바람인지도 몰라. 내가 너를 잘 키웠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 바람들이지. 너를 위한 것은 아니야. 그러니까 너의 감정과 생각을 숨기면서까지 엄마 말을 꼭 들을 필요는 없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다 보니 말이야. 옛 선조들이 하신 말씀 중에 틀린 말이 없더라. 지금의 네가 듣기엔 꼰대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분명히 알게 될 거야. 사람으로 태어나 아주 기본적인 것은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 나보다 약한 이를 지킬 줄 알고, 내가 가진 것을 베풀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러기 위해 강해져야 하고, 강하기 위해서는 네가 너 스스로를 지킬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거야. 세상에 태어나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답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사회에 속해 살아가기 위해서 규칙과 규범을 지키되, 그 안에서 한껏 자유로울 수 있으면 좋겠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어느 정도 타협할 필요는 있겠지만, 그걸 위해서 너를 희생하지는 마. 언제나 너 자신이 우선인 삶을 살기를 바란다. 엄마, 아빠가 너의 곁에 없을 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 자기 자신의 소중함을 알고 귀히 여기다 보면 반드시 너 자신도, 타인도 아낄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남이 어려울 때 자기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서 남이 먼저 은혜를 베풀어주기만 바라는 것은 너희들이 지닌 그 나쁜 근성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평상시 일이 없을 때라도 항상 공손하고 화목하며 삼가고 자기 마음을 다하여 다른 일가들의 환심을 얻는 일에 힘쓰되 마음속에 보답받을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해라. 「유배지에서 온 편지」 중 p.61



강한 사람이 되면 남에게 바라지 않고도 친절을 베풀 수 있고, 베푼 친절에 대한 보답을 바라지 않을 수 있다. 내가 가진 그릇 이상의 일을 맞닥뜨렸을 때에는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린 후 측은지심의 마음을 가져보려 노력해봐. 그럼 너를 괴롭히던 모든 일들이 작게 느껴지는 순간이 올 거야. 물론 그 과정에 있어 숱한 아픔과 상처들이 남겠지만, 그조차도 이겨낼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이 자리하기를 바랄 뿐이야.


내가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오래 고민해왔어. 네가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사회에 나가 제 역할을 하며 살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것. 거친 파도에 휩쓸려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떠밀려 갔을 때 나뭇가지라도 붙들고 버틸 수 있는 용기와 끈기를 가르쳐주는 것 정도가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더라.


여전히 서툰 걸음이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중이야. 몸 근육을 키우듯 마음 근육을 키우는 연습을 하는 중이지. 어른이 되어 너를 낳고 엄마가 되었지만, 나 역시 세상에 맞서 홀로서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생생하게 삶을 공부하는 과정을 알려줄 수 있는 것 같아.


유배지에서 온 편지를 읽으며 문득 아차 싶더라. 이런 과정과 생각들을 글로 남겨 너에게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과 사색들을 글로 남겨두었더라면 피부로 와 닿는 이야기들이 더 많았을 텐데. 어린 시절 너와의 잠자리 대화를 녹음했던 것처럼, 이제부터라도 지난한 시간들을 글로 남겨놓아야겠다. 오늘은 그 첫 번째 편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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