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폭력을 사랑으로 포장한다.
“북부 이딸리아의 한 주요 도시 M.에서 바른 행실로 이름 높은 귀부인이자 두 아이를 곱게 기른 어머니였던 미망인 O. 후작 부인이 이런 신문에 이런 광고를 냈다. 저도 모르는 새에 아이를 가졌으니, 태어날 아이의 아버지는 연락해주기 바랍니다. 저는 가족의 입장을 고려하여 태어날 아이의 아버지는 연락해주기 바랍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O는 이탈리아의 한 요새의 사령관인 대령 G의 딸이다.
후작 부인이 이러한 광고를 내기까지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당시는 -추정컨데- 나폴레옹이 프랑스를 이끌던 때이다.이런 와중 러시아군은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던 북이탈리아, G의 요새로 전진하였고, 공선전이 벌어진다. 전투는 G가 러시아군에 투항함으로써 종료된다.
이 전투 중, O는 러시아의 군인들 몇명에게 덮쳐질 위기에 처한다. 당시 러시아군의 간부였던 F백작은 그 군인들을 칼자루로 기절시킨다. 이후 F는 후작부인을 관저에 위치한 그녀의 방으로 옮겨준다. G와 O를 비롯한 가족들은 F에게 크게 감사한다.
전쟁이 끝나고 F는 다른 곳에서 전투를 치르고 북이탈리아로 되돌아온다. 그가 되돌아왔을 때 O의 가족들은 모두 놀랐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었기 때문이다. F는 후작부인과 그녀의 가족들에게, 사경을 헤매며 누워있는 동안 후작부인이 자신을 돌봐주는 환상까지 보았다고 말하며 청혼한다. G 역시 딸이 다시 남편을 맞이하길 바랐으나, O는 남편이 죽은 후 재혼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후였다. 둘과 가족들 역시 꽤 당황하기도 했다. F가 너무 성급하게, 안달복달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F는 임무로 파견을 나가던 중에 잠시 O에게 방문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G와 그의 가족은 백작이 임무를 끝내고 돌아온 후에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말한다. 결혼을 할 생각이 없던 O 역시 그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고 -가족들이 압박도 하여- 그것에 대해선 수락한다. 백작은 꼭 지금 자신에게 확답을 달라고 간청하다가 요새를 떠난다.
그 사이 후작 부인의 몸은 점점 이상해지고 있었다. 몸에서 점점 거북한 느낌이 들었고, 배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의사와 산파를 연이어 불러 자신의 몸상태를 확인 한다. 하지만 누구도 O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둘은 오히려 O의 정절을 의심하며 비꼬는 말을 한다. 이런 상황이 되자 가족들은 O에게 분노한다. 특히 G의 분노가 심했는데 딸을 집에서 내쫓기까지 한다.
O는 자신의 두 아이를 데리고 시골의 별장으로 향한다. 별장을 보수할 준비를 하며, 신문에 아이의 아버지를 찾는다는 광고도 낸다. 자신의 딸에게 분노했던 G의 아내는 이후 마음이 좀 풀렸다. 또 딸과 의절까지 해버리는 남편에게 화도 났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딸과 남편을 다시 화해시키고 -사실 그녀 조차도 자신의 딸을 의심해 떠보려고 한다- 함께 광고를 보고 찾아올 사람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어찌되었든, 후작부인과 가족들은 한데 모여 광고를 보고 누가 찾아올지 기다린다.
이 작품은 독일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손으로 쓰여지고, 1808년 세상에 공개된다.
「O후작부인」의 이야기를 더 이어가기 전에 다른 논의를 우선 하고 싶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이 -무려 1808년에- 추리소설적인 구성과 서술방식을 지녔기 때문이다. 「O후작부인」이 추리소설의 시작이라고 본다면 그건 과대평가다. 하지만, 정답을 알고 책을 읽으면 재미가 크게 반감될 것이다. 참고로 필자는 세 번 읽고 서야 사건의 내막을 깨달았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다. 그와 그의 작품들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오히려 후대에 철저히 연구되었다. 하인리히의 작품들은 오늘 날에 보아도 파격적이다. 주제의식과 스토리, 서술방식 모두 말이다. 하인리히는 대중적인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독일문학사에선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실존주의 문학과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도 뽑힌다. 그는 필자가 읽어본 문학가 중 가장 재능있는 문학가다.
사실 하인리히의 작품이 쉬운 편은 아니다. 특히 「O후작부인」의 경우 읽은 후 불쾌하다거나 찝찝하다는 감상이 많은 편 -불쾌하다는 건 작가한테는 칭찬이긴 하지만- 이라 그의 사상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책을 읽는다면 좋을 것이다.
하인리히의 천재성은 칸트의 철학을 접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한다. 그는 『순수이성비판』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칸트의 세계관과 하인리히의 세계관은 공통된 전제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육체를 통해 실존하는 존재로, 인식 역시 육체로부터 시작하나 한계가 있다. 칸트는 이러한 기초로부터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더라도 이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리가 있다는 낙관적인 결론을 도출해낸다. 반면 하인리히의 결론은 음울하고 습기가 찬 것이었다. 그는 육체가 진실이며 지성과 이성은 진실을 알 수 없다고 보았다. 칸트가 이성의 능력을 강조했다면 하인리히는 이성의 약점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인류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미래와 자연에 대한 낙관으로 가득차있던 당시의 시대조류에 하인리히는 정반대되는 인물이었다. 괴테는 그를 강하게 비판했으며, 그 비판은 하인리히에게 들여진 그늘을 더 짙게 만들었다.
이제 작품에 대한 요약을 이어 해보겠다.
결론적으로 O후작부인을 구해준 백작이 바로 아이의 아버지였다. 작품 내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사이가 바로 성폭행 장면에 해당한다. -이 부분은 독일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대시라고도 불린다.- O후작부인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몸에는 임신을 제외하고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어느 순간부터 후작부인은 장교에게서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부인은 장교와 기꺼이 결혼하기로 하고, 그녀의 가족들 역시 이에 동의한다. 소설은 부인이 장교의 품에서 행복을 느끼며 끝이 난다.
당시에도 이 소설은 식자층에게 상당히 비난받았다. 이러한 비난은 오늘 날에도 여전하다. 스스로를 교양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마저, 이 소설에 비난을 아끼지 않으며 불쾌감을 표현한다. 그들은 작가가 사랑을 폭력으로 포장한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상의 존재를 지적하는 일을, 대상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라고 여기곤 한다. 하인리히는 폭력을 사랑으로 포장한한 적이 없다. 폭력을 사랑으로 포장한 건 현실이고, 하인리히는 그것을 두 눈으로 응시하고 세상에 공개했을 뿐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보자. 편지에 후작 부인은 “가정의 입장을 고려하여” 편지를 쓴다. 결혼 생각이 없던 후작 부인으로 하여금 F와의 결혼을 고려해보겠다라고 대답을 하게 만든 것도 가정의 입장을 고려해서였다.. 그녀의 정절을 의심한 것도 가족들이었다. 그 가족들은 끝까지 후작 부인의 말을 의심하며 집에서 내쫓기까지 한다. 클라이스트의 비판의 중심부에는 당대의 가부장제가 있다. 독일 계몽주의의 거두이자 효시 중 한 명인 레싱은 자신의 작품 내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일한 인격체임을 직접적으로 표현했으며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도 진행했다. 하지만 계몽주의하에서의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은 오래가지 않았다. 당시의 비합리적인 관습들을 공격했던 자들은 이상하게도 집안 내에서 남성이 가지는 권위와 권력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클라이스트는 레싱의 입장을 귀환시켰다. 하지만 그것을 누구도 반기지 않았다. 심지어 여성들 조차도 말이다.
오늘 날에도 충격적인 이러한 결말은, 사실 현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당장 우리 나라의 노인 세대에만 해도 둘과 비슷한 이유로 결혼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가령, “XX아빠가 억지로 자빠트려서 임신을 해버린겨, 그래서 결혼을 했는데 막상 살다보니 괜찮더라.” 라고 말한다던가. 강간범과 결혼하고 행복하게 사는 일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신체적으로, 또 심리학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많은 경우 인간의 신체는 결국 적응을 택하니 말이다. 최근에 남용되기도 하는 ‘가스라이팅’이라는 표현-그것이 학문적인 표현은 아니지만-과도 어느정도 부합하는 면이 있다. 당시가 지금처럼 심리학이 발전한 상황이 아님에도 이러한 통찰을 보였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O후작부인」을 읽고 나면 느껴지는 여러 감정들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우리는 하인리히의 의도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는 부조리를 들춰내고 고발하고 있다. 고발된 부조리는 인식론적과 연결되어있다. 그는 이성이 얼마나 나약한지, 또 얼마나 신체에 종속적인지를 해부하여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비판은 이런 형이상학적인 차원에만 머물러있지 않다. 하인리히는 폭력이 사랑과 행복을 창출해내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이 고발은 결코 19세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아직도 세상에는 이런 부조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단지 우리가 아직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참고: 현재 「O후작부인」을 읽기 위해서는 창작과 비평에서 출판된 『미하엘 콜하스』를 읽어야하며, 다른 책들은 대부분 절판 및 품절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