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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Apr 21. 2024

이직 3개월 차에 마주한 구조조정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마흔 중반에 들어서서 새로운 곳으로 이직한 지

이제 삼 개월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전 직장보다 대우도 좋고 포지션도 올라가고

무엇보다 집과 멀지 않아 30분 내외로 오고 갈 수 있는 여건이

초등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는 괜찮은 조건이었습니다.


다만 이직 여부를 결정할 때 마음에 걸렸던 한 가지가 있었어요.

바로 면접을 보러 이  회사에 두 차례 방문하면서 느꼈던

묘한 분위기였습니다.

누군가 싸한 느낌은 과학이라고도 했는데,

그 감을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나 이제 와서 살짝 후회가 됩니다.


대기실에서 인터뷰를 기다리는 동안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사무실 공기를 타고 흐르는 싸한 기운이 느껴졌고

무언가 네거티브한 기류가 거품 방울이 일듯 여기저기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헤드헌터를 통하 최종합격을 전달받고서도 한 차례 오퍼를 거절을 했습니다.

두 번의 면접과 사무실의 분위기를 보니 전체적으로 축 쳐져 있는 분위기가 이직을 망설이게 했고

더군다나 면접이 진행되는 동안 대표의 언행이 불쾌했고 회사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우울한 분위기가 대표로부터 비롯된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여 해당 포지션은 거절을 하겠노라고 의사를 전달했어요.


그리고 하루 지나서 채용팀애서 커피챗을 요청하셨고,

제가 느낀 부정적인 느낌에 대해 이유를 설명 주시고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을지와 대표는 곧 교체가 될 터이니 제가 우려하는 부분은 곧 해소가 될 거라고 설득을 주셨어요.

 

기존에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 더는 못 버틸 것 같아 어디로든 옮기고 싶었고

우려되는 부분은 곧 종식될 거라는 설득과 기대에 이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입사 후 정확히 한 달이 지나자

회사 대표가 교체되었습니다.

 

싸한 느낌은 과학이라더니



업무 파악하느라 한 달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겠는데,

대표가 바뀐 후 새 대표에게 업무 보고하느라 또 한 달을 보내고 나니

구조조정이라는 무시무시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수년 째 마이너스이고

여기에 대한 책임은 하필 제가 속한 본부에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입지는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 들어온 지 두 달 밖에 안 됐는데

대표도 바뀌고 구조조정도 하고 더군다나 그 타깃이 저희 본부라니.. 처음에는 좀 암울했습니다.(지금도 마찬가지 긴 합니다.)


그리고 거친 폭풍우 같은 소용돌이 속에 처해지자

구성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결국 저에게 구조조정 대상자를 알려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누가 누구를 감히


두어 달 전만 해도 제가 맡은 구성원들과 신규 사업 기획도 하고

올 한 해 어떤 일들을 할지 계획도 세우고

각자 KPI를 설정하면서 야심 차게 시작해보려고 했는데

그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고

오히려 함께 하기로 한 구성원의 일부를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살면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었고

피할 수 없어 결국 마주하다 서로에게 상처를 준 순간들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 건 난생처음이라

직장 생활을 오래 잘해왔다고 자부하는 저도 몹시 힘든 순간입니다.


두 달보다 조금 더,

석 달보다 조금 적게 보아온 모든 이들이

알알이 촘촘한 진주 같은 사람들인데

누가 누구를 감히 모자라다고 밀어낼 수 있을까요.


저 역시 어찌 될지 모를 살얼음판 위에 선 처지인데

제가 감히 누군가의 이름을 적어낼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노래 속 가사와 같은 아름다운 이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종류의 이별은 그 강도만 다를 뿐,

아픔과 슬픔, 괴로움과 고통을 수반한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이별의 순간은 더 정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하며

상대의 마음과 기분을 헤아려

통과 슬픔, 아픔과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별을 당하는 이의 상처는

쉬이 아물지는 못하겠지요.


월요일을 앞둔 일요일 오후,

다가올 한 주 동안 불어닥칠 칼바람에

부디 상처를 많이 남기지 않고 끝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마음을 시로 대신 남겨봅니다.



길 위에서의 생각,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것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있는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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