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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책방노트 Mar 07. 2019

뉴욕의 사라져 버린 많은 곳들을 위하여

모두가 지켜낸 서점 ‘Westsider Rare & Used Books’

동네의 그 이름 모를 서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나에게는 국민학교였던 초등학교 시절. 시골도 도시도 아닌 작은 남쪽 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등굣길에 유일하게 빈둥거릴 수 있는 곳은 학교 앞 작은 서점이었다.  
설탕을 잔뜩 바른 핫도그를 팔던 작은 분식집 지나 작은 서점 하나.
학기 초면 엄마 손잡고 표준전과를 사기도 하고 그 시절 초등학생들의 베스트셀러였던 ‘논리야 놀자’ 시리즈도 그곳에서 처음 읽었던 여느 학교 앞 흔히 있는 어느 책방이었다. 항상 정갈한 셔츠를 입고 있던 주인아저씨는 서점 밖 나무의자에 앉아 애들이 서점에서 가방을 깔고 앉아 놀던 떠들던 늘 무심해 보였다.
몇 해 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서점과 학교 앞 거리가 그리워 떠난 지 10여 년 만에 서울에서 버스로 4시간도 더 걸리는 그곳을 혼자 가보았다.


그곳은 이제 ‘파리X게트’가 되어있었다.

내 기억 속 학교 앞 그 거리는 이제 서울 우리 집 앞과 똑같이 파리바 X트와 세븐일X븐과
베스X라빈스로 가득한 흔하디 흔한 그 길이 되어버렸다.
 

뉴욕도 예외일 수 없는 짙게 드리운 서점의 위기


리테일 환경의 변화는 뉴욕의 서점 시장에도 큰 위기로 다가왔다. 뉴욕 최대 서점인 Strand(스트랜드) 자료에 따르면 최근 70년간 뉴욕 서점의 79.5%가 문을 닫았다 한다. (스트랜드는 이러한 위협이 카테고리 상관없이 미국 내 리테일 생태계를 완전히 바꿔버린 ‘아마존’의 등장이라 단언하고 이를 위협하는 아마존과 적극 맞서 싸우겠다 선포하였다.)  
1950년에는 368개에 따른 서점수가 1981년에는 249개로, 2010년에는 그 절반인 135개로 , 2018년에는 또 그 절반인 79개의 서점만이 살아남았다.
마치 멸종위기동물수치 같기도 한 이 숫자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에, 대화 속에서 모두 그렇다고 얘기한다.

늘 그 자리에 서점이 있었다.

언젠가 버스를 타러 가다, 아님 커피를 사러가다 스치듯 지나갔던 그 자리에 작은 서점이 있었다.
번쩍이는 간판도, 세련된 입간판도 없이 그냥 입구부터 쌓인 책들이 그저 이곳이 오래된 곳임을 알게 하는.
이 서점은 작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게 어른 세명이 나란히 서있으면 꽉 찰 정도로 작은 폭과 빈틈없이 1층과 2층을 메운 책들로 들어서는 순간 두 눈 가득 책으로 꽉 차는 느낌이다. 그 좁은 곳을 대학생인 듯 보이는 학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손님까지 모두 어깨를 부딪혀 가며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서점이란 공간은 참 묘한 매력이 있어 그것의 가치가 책의 많고 적음이라던가 공간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

쉽게 타협되지 않는 무언의 고집이 있다.

뉴욕 어퍼웨스트에 위치한 ‘westsider books’

이 책방은 무려 한자리에서 35년을 지켜왔다고 한다.  

20대에 이 곳에서 책을 읽던 어느 청년은 어느덧 인생의 중반의 문턱을 지나가고 있을 세월.

주인 아저씨의 닳은 의자가 말해준다. 이곳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서점 한켠에 붙어있는 한복 사진 ‘처녀복’ - 주인아저씨는 왜 그 사진이 거기에 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아름다워 그곳에 두었다 한다.

하지만 35년간 뉴욕 어퍼 웨스트 지역의 오랜 터줏대감이었던 이곳은 이제 어려운 경영난을 토로하며 문을 닫는다고 한다.

어느 순간 둘러보니 이 동네에 머문 지 꽤 되어가는 시간 동안 없어진 가게들이 참 많다.

감당하기 어려운 임대료로 문을 닫게된 서점 주변 거리 곳곳의 빈 점포들

주인인 Dorian 아저씨와 직원들은 ‘지난 한 해는 너무 조용하고 느리게 흘러가는 한 해였다. 감당하기 어려운 렌트비와 계속되는 어려움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반스 앤 노블조차 어려운 이 상황이 새삼스럽지 않다’며 담담해서 오히려 더욱 슬픈 고백을 하였다.  (심지어 이 서점과 한 블록 떨어진 거리에 2층 건물의 반스 앤 노블이 위치해있다.)


누군가만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해’ 지켜야 하는 것


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우리 동네에는 작지만 조용한 파장이 일어났다.
이 곳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는 주민들이 뜻을 모아 미국의 대표적인 클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고 펀드 미(GoFundMe)에     이 소식을 알린 후 후원금 모집을 시작하였고 여러 동네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도 서점과 펀딩 소식을 알리며 서로 독려하기 시작하였다.

실제 ‘고펀드미’의 모금 페이지
westsider 서점을 응원하는 주민들의 수많은 메세지들


주민들은 과연 이 서점을 지켜냈을까? 결과는 놀랍다.

펀딩 시작 불과 4일 만에 목표했던 5만 달러(약 5,600만 원)를 달성함은 물론이며 총 853명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적게는 10달러에서 50달러까지 선뜻 내놓으며 전체 모금액 54,225달러(약 6,100만 원)로 성공리에 뜻을 모았다.
 
‘그럴 리가 없지만 혹시나 펀딩이 성공하면 서점 운영을 계속해나가겠다’ 약속을 했었던 주인 Dorian 씨는 정말로 성공할 줄 몰랐던 이 펀딩이 끝난 후 서점을 지켜준 지역 주민들을 향한 깊은 감사와 약속대로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계속 운영해 나가겠다 발표했다.

펀딩이 끝난 직후 westsider books 서점의 감사메세지

그렇게 이곳 사람들이게는 서점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이곳은 다시 이곳을 아끼는 사람들에 의해

그 자리에 계속 살아남게 되었다.


주말에 다시 들린 서점은 눈이 오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붐비고 앳되 보이는 학생들부터 할머니,할아버지 손님들까지 붐비고 더욱 활기차 보였다.  


이토록 작은 서점의 작별인사에 모두들 왜 그렇게 아쉬워한 것일까?
누군가의 댓글에 그 답이 있다.


“Books need to be present in our lives and on our streets.
If everyone chips in, bookstores like this can continue enriching public life.”
우리의 삶과 거리에 책은 꼭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힘을 모으면 이런 서점들은 계속해서
‘우리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 펀딩 참여자 Gary Cozette

거리를 바꾸는 모두의 힘


누구나 빈틈없는 삶을 추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목적 없는 혼돈을 용납하기에 아직은 너그럽지 못하다.

그러기에 우리의 선택 또한 늘 안전한 방향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안전한 선택의 범주에는 책도 예외는 아니다. ‘시’나 ‘소설’처럼 당장 내가 필요한 지식이 아닌 것들은 이 선택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손쉽게 , 좀 더 빠르게  ‘합리적, 효율성’이라는 함정 뒤에 숨은 안전한 선택들로 인해 우리가 마주한 것은 어떠한가? 때로는 원치 않는 선택과 심지어 선택의 여부조차 박탈당한 현실이다.


‘우리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작은 빈틈은 우리의 삶에도 그리고 어느 거리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힘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Westsider Rare & Used Books
2246 Broadway, New York, NY 1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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