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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책방노트 Feb 27. 2019

뉴욕의 한가운데 그곳이 있다. ‘Strand’

삶의 이방인이 된 당신에게 필요한 책방

매일매일 출근하던 시절, 세상에서 제일 부질없는 질문 2개를 품었었다.

‘로또 당첨되면 뭐하지?’ 그리고  ‘회사 안 가면 뭐하지’

정작 사표를 내고 나니 아침에 눈뜨는 순간부터 내가 뭘 하고 싶은지가 가장 큰 고민이 되었다.

일드 ‘방랑의 미식가’를 보면 막 은퇴한 전직 회사원 다케시 씨가 나온다.

38년을 회사에 몸 바쳐 일한 그가 퇴직 후 간절히 원했던 것은 바로 ‘한낮의 시원한 맥주 한잔’이었다.    

이토록 사소한 것들이 간절한 법이다. 늘어지게 자는 낮잠, 서점에서 종일 읽는 책 같은.


이렇게 간절하고 소박한 것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삶의 이방인이 되고 나서야 다가온다.  


뉴욕의 한가운데 그곳이 있다. Strand bookstore
맨해튼 중심가에 위치한 이곳은 92년 동안 뉴욕을 대표하는 서점 이상의 문화 아이콘 역할을 해온 곳이다. 소호에서 길을 따라 유니온스퀘어 쪽으로 걷다 보면 92년 동안 뉴욕을 대표하는 이 곳을 만날 수 있다. 주변으로 NYU, FIT가 위치해 있고 월가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니 뉴욕에 있는 지식인, 학생, 지역주민들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만족스러운 위치다.  그래서인지 늘 붐비는 이곳은 들어서는 순간 삐그덕 거리는 나무 바닥의 소리가 이곳의 역사가 그리 짧지 않음을 알려준다.

단순하지만 단호함이 느껴지는 스트랜드의 상징적인 붉은색 로고

슬로건인 ‘18 miles of books’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소장하고 있는 책의 규모는 상당하다. 18마일이면 약 29km, 대략 광화문에서 분당까지의 거리 정도니 실로 어마어마하다. 입구에서는 가늠이 되지 않는 규모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구석구석 카테고리별로 높은 천장까지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 이 거대한 책방의 규모가 느껴진다.

카테고리 표지 하나하나에서도 느껴지는 디테일

더욱 놀라운 것은 이곳의 수많은 책들이 모두 새책이 아니며 이 곳의 본래 아이덴티티는 헌책방이라는 사실이다. 1927년 헌책방에 시작하여 현재는 헌책과 새책이 75:25의 비율로 조화롭게 운영되고 있다.

이곳의 역사가 이곳이 어떤곳인지 말해주고 있다.

지하 1층 구석의 한 곳에서는 전 세계에서 온 뉴욕에 사는 많은 이방인들을 위한 다양한 언어의 책들도 찾을 수 있다.
이 책들은 멀리 떠나온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전세계 언어들로 적힌 책들 그리고 어느 한국인이 오래전에 맡기고 갔을 몇 권의 한국책들

어떤 이에게는 귀함이 다했지만 이곳에서는 다시 누군가가 찾아 헤매던 그것이 될 수 있다.

이곳을 통해서 뉴욕의 도서 생태계는 조금 더 활발하게 생명을 연장해나갈 수 있다.

갓 나온 신간부터 부모와 자식을 이어 손때 묻은 책까지, 이곳에서는 공평하게 누군가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렇기에 이곳을 방문하는 로컬 주민들, 방문객들 누구나 들어오는 순간 아무리 관심 없던 책이라도

손끝으로 넘겨보게 되고 혹여나 누군가가 남겨놓은 흔적들이 반갑게 느껴진다.

이 북카트 한가득 책을 담아 가는 사람들도 꽤 많이 볼수 있다.
뉴욕을 대표하는 기념품인 이곳의 구스들


스트랜드의 고독한 싸움의 시작 ‘우리를 랜드마크로 지정하지 말아 주세요’

3대째 가업을 이어오며 뉴욕에서 가장 큰 서점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이끈 스트랜드는 최근 조금 기이하고 외로운 싸움을 시작하였다.  기존의 책방거리라 불리던 ‘Book row’에서 1956년 이 자리로 이전하며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건물을 직접 매각하여 운영해오고 있던 스트랜드는 뉴욕 시로부터 이 빌딩을 뉴욕의 랜드마크로 지정하여 공식적 명소로 삼으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표면적으로는 이미 그런 위상을 누리고 있던 스트랜드이므로 당연히 뭐가 문제일까 싶지만 ,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오히려 보존하기 위한 이 조치가 스트랜드를 크게 위협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스트랜드 측은 빌딩이 시로부터 랜드마크로 지정되는 순간부터 복잡하고 다양한 규제와 제한을 받는 데다 지금도 꾸준히 들어가는 건물의 유지, 보수비용이 더욱 올라가며 이것은 현재 스트랜드의 이익 구조상 치명적이라고 얘기한다.  단순한 보존과 개발의 이분법적인 논리로 볼 문제가 아닌 현재 뉴욕의 도서시장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서점입구에서 이런 리플렛을 통해 현재 서점이 처한 어려움에 대해 자세히 애기하고 있다.  

스트랜드 정도 규모의 서점조차 스스로 ‘아주 적은 이윤’ 만으로 운영 중이라고 솔직히 얘기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이 상황이 뉴욕 시민들 모두에게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리고 왠지 이 모습은 한국의 여러 상황과도 데자뷔처럼 다가온다. 늘 화려한 이곳일지라도 그저 많은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곳으로 남아있기에는 뉴욕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고 거세지는 흐름 속에서도 무거운 무게추를 내리고 견디는 여러 모습들이 있다.  


삶의 이방인들에게 위로가 되는 이곳이 영원하기를
새로운 것들이 넘치는 세상 속에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명확하다.

오래되고 닳은 것들에게 느껴지는 품격과 반짝이고 윤이나는 것들에게서는 받을 수 없는 위로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곳은 나에게 말한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지 속도가 아니라고.

빨리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가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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