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힘들지도 몰라
한라산을 다녀온 다음날 아침, 다른 날보다 더 넉넉히 잠을 자고 일어났다. 오늘은 든든한 아침이 아닌 간단히 먹으며 잠깐이나마 혼자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고요한 아침, 자연이 내는 소리와 내 발걸음 소리만이 가득하다.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한적한 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스타벅스가 있었다.
알맞게 구워진 치즈 베이글 하나, 주어진 시간은 15분, 나는 펜으로 나와 짧고 깊은 대화를 했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들 앞에서 잘하는 나, 잘 사는 나'가 되고 싶은 나는 어렸을 때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왜냐면 내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말을 하면 곧 실수할 거 같아서' 두려워했다.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친구들을 멀리서 지켜보며 늘 부러워했다. '친구들 앞에서 말 잘하는 나'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 '유전적 기질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잘 바뀌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게는 더 빠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편지를 자주 썼었다.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마음을 글로는 확실히 표현할 수 있었다. 장문의 편지로 깊은 감사를 표현하고, 진중한 사과를 하기도 하고, 진실된 고백을 하기도 했다. 내가 쓴 편지에 대한 반응은 써 내려간 내용만큼이나 풍부하게 나에게 돌아왔다. 글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요가 수업에 참여했다.
마치 내 몸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어딘가로부터 신경과 근육을 끌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신경과 근육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고 언제나 움직이고 있었는데도 이 시간에 새삼 느끼고 존재를 깨닫게 되었다.
'언제나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존재'를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그 존재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나에게 어떤 일을 해왔었는지, 나를 어떻게 생각해왔는지'를 잊고 살아간다. 그럴 때마다 마치 요가처럼 '가만히 그 존재들을 떠올려보고, 존재들에 노크해보고 소통해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요가를 마치고 나와 잠시 숙소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평소에 생각이 많아질 때 의지적으로 하늘을 보곤 한다. 맑은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내 마음도 맑아지는 기분이랄까.
나는 '힘이 들 땐 하늘을 봐,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라는 노랫말을 좋아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명곡 중에 하나다. 아마 어릴 적 내 mp3 플레이어에서 가장 많이 재생된 곡일 것이다. 그때는 노래 가사처럼 눈물 나게 아픈 날에 크게 한번 소리를 질러보면, 연약한 슬픔이 달아날 거라 믿었다. 앞만 보고 걸어가고, 뛰어가다 보면, 조그만 슬픔도 따라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보다 지금 눈물 나게 아픈 날도 많아졌고 앞만 보고 뛰어갈 힘은 늘 채워놓기가 힘들다.
슬픔의 크기가 연약하고 조그마했는데, 몸이 자라는 것과 동시에 슬픔도 자라 버린 듯하다.
힘이 들 때 하늘을 보는 일은 내게 있어 '하늘길을 떠나는 일' 즉, 여행인 것 같다.
창가 쪽 좌석을 선호한다. 나름 비행기를 여러 번 탔었지만, 탈 때마다 좀 더 편한 통로 쪽보다 여전히 창가 쪽을 선택한다. 이착륙을 하는 단 몇 분의 시간 동안 지면과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가만히 앉아서 최대한 먼 곳에 내 초점을 두고 잔잔한 음악을 듣는다. 그 장면은 나라는 존재를 '미시적이 아닌 거시적으로 보게 하는 일종의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작은 것에 연연하는 모습은 나를 때로 괴롭게 하고 맹목적이게 만든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슬픔이 차오르게 한다. 그럴 때마다 큰 것에 눈을 돌려고 한다. 크고 넓은 것을 보고 있으면 점점 작은 것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 사라짐을 느낀다.
오늘은 '내가 이끄는 대로 가는 여행'을 하기로 했다.
대략적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제주의 반 바퀴를 도는 일정을 계획했다. '일주도로를 따라서 해변을 우측에 두고 드라이브를 해야 한다'는 추천글을 보고 따라 해 보기로 했다.
내 생각에는 오늘 계획이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가는 길에 해변을 하나 들리고, 해변 근처에 있는 예쁜 카페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또 가다가 우연히 맛집을 찾아 만족할만한 식사를 하는 것"
여러 곳을 다니지 말고 두세 곳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가 바라는 오늘의 목표였다. 그리고 내게 맡겨진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시간이 되었으면 싶었던 동시에 나도 만족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내게 주어진 이 '하루'를 잘 쓰고 싶었다.
운전기사와 가이드 및 기타 등등의 역할이 저절로 내게 주어졌다. 내게 운전이란 아직은 익숙지 않다. 나는 익숙지 않은 일을 할 때 다른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말을 걸면 운전에 집중을 못하게 되어 스스로 입을 다물고 같이 있는 사람들을 때로 무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멀티 플레이가 안 되는 사람이다.
아직 스스로 하기 버겁고 어려운 일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나는 당장 눈앞에 있는 일이 1순위가 되어 차순위의 일들은 보지도, 신경 쓰지도 못한다. 돌아보니, 학창 시절과 사회 초년생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보낸 모든 시간에 나는 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특히 직장을 다니면서 더 그랬다. 나는 업무 시간에 '딴짓'을 금기시했다. 그중에서도 업무와 관련되지 않는 메신저 대화는 일절 차단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일에만 매달렸지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는 잘 보지 못했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잘 챙기지도 못했다. '우선 주어진 일을 잘해놓는 것이 내 사람들을 위한 일이야.'라고 생각하며 동시에 '나의 바쁜 일상'을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꾸 커져갔다.
함덕 해수욕장
혼자 다니며 해변을 따라 걸었을 때도 해보지 못한 '고운 백사장 걸어가기'를 드디어 해보게 되었다. 이곳의 첫인상은 광활하며 푸른빛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이라고 하여 시간이 촉박한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바다로 이어지는 아치형 다리를 건너면 파도를 수차례 맞은 현무암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마침 거센 바람이 불어 현무암들 위에 균형을 잡고 서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우리가 찍은 사진은 온통 바람맞은 사진들이었지만 뒷배경으로 나온 푸른빛 바다가 모든 것을 아름답게 했다.
카페 델문도
최고의 오션뷰를 자랑하는 카페를 찾았다. 직접 만드는 커피와 빵 향기로 가득한 곳이었다. 카페 가운데에 마련된 베이커리에서 몇십 분간 서성이고 방황했다. '여기서 가장 맛있는 빵을 골라야지!'라는 생각뿐이었다. 고민할 시간이 많지 않아서 아쉬울 정도였다. 빵의 다양한 종류에 놀라고 비주얼에 한 번 더 놀랐다.
실내는 통창으로 함덕을 바라볼 수 있게 해 놓았고, 실외는 목재 데크로 만든 테라스와 테이블, 그리고 벤치가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모습을 운치 있게 찍을 수 있어서 좋았던 곳이다.
사람이 많아서 앉을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명란 바게트와 커피를 사들고 차로 이동했다. 맛있게 먹고 있는데, 일행이 다음 일정은 무엇인지 또 가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다음 일정은 서쪽이며 정해진 곳은 없고(사실 머릿속에 이미 답은 있었지만), 그쪽에는 예쁜 카페가 많아서 구경하고 여유롭게 커피를 한 잔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또 카페를 가느냐'라고 했다. '관광지를 가야지 카페를 가기 위해서 1시간이 넘게 이동 시간이 걸린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나는 '그렇지만, 우리가 갈 곳에는 서울과는 다른 매력의 아기자기한 해변 카페가 많으며 사진도 많이 찍을 수 있다'라고 했다. 일행은 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했지만, 오늘은 나를 따라줘야겠다고 생각하는 듯 보이며 무응답으로 지켜봐 주었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운전을 하는 내내 오늘 일정에 대해서 고민했다. '내가 이끄는 대로 가는 여행'이 실패할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실패할까 봐 그리고 갈등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
문득 든 생각은, '그래, 점심은 무조건 만족할 만하게 먹어야겠다.'였다. 그렇지 않으면, 일정에 대한 불만은 더 커질지도 모르니까.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했다.
장인의 집
항구와 가까운 곳에 있는 시골집 같은 외관에, 안으로 들어서면 붓글씨로 써놓은 한지로 된 벽이 가득하다. 구수한 사골 육수를 끓이는 냄새가 식당을 가득 메웠다. 푸짐한 해물 만두전골이 이 집의 자랑거리였지만, 아직 델문도에서 먹은 바게트가 소화가 되지 않아서 1인 1 만둣국으로 주문하기로 했다.
메뉴에 쓰인 이 집의 스토리를 보니 여기 만두는 단순한 게 아니었다. 무려 60년 전통의 만두다. 1만 시간, 10년을 여섯 번이나 보내며 3세대까지 이어온 장인들의 꾸준한 뚝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만두에 다양한 색깔을 입혀 개성을 살려주었다. 모두 색소를 쓰지 않고 천연재료를 썼다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자부심이 느껴졌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검정-전복, 초록-문어, 하양-고기, 빨강-김치> 만둣국이었다. 함께 다녀서 좋은 점은 역시 나와 다른 사람의 음식을 함께 나눠먹을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메뉴에 나온 모든 맛의 만두를 먹어볼 수 있었다. 고기와 김치 만두는 익숙한 맛이었지만 전복과 문어는 특별하니 꼭 먹어봐야 한다. 만둣속에 잘게 다져져 있지 않고 씹는 맛이 느껴지도록 큰 덩어리가 들어 있어서 좋았다.
애월 카페거리
평일인데도 바퀴 디딜 틈도 없이 차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있다. 애월이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때가 언제부터였을까? 유명 가수가 차린 카페가 생기고 나서부터였을까? 어떤 드라마의 촬영지로 알려지고 나서부터였을까? 시작은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애월 카페거리는 아기자기한 감성과 이국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어서 특히 많은 여성들이 찾아가게 되는 1순위 장소인 것 같다.
알록달록한 색들로 꾸며진 곳, 넓은 잔디 마당에 테라스가 있고 파라솔이 줄지어 있는 곳,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고 빈백에 누워 바다를 볼 수 있는 곳 등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카페가 정말 많았다.
그렇지만 그 어느 곳도 들어가지 않았다. 카페거리 위로 조성된 한담 해안산책로를 걸어가며 다시 한번 제주 바다를 바라보았다. 2001년 조성된 산책로는 총길이 1.2km로 애월 마을에서 곽지해수욕장까지 이어져 있다. 우리는 곽지까지 가지는 않았고 카페가 보이지 않을 때쯤 갔다가 다시 거리로 돌아왔다.
군데군데 피어있는 유채꽃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신나서 아이처럼 사진을 찍었다. 상업적으로 재배한 유채꽃 말고 자연스럽게 피어져 있는 유채꽃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이렇게 만났네? 이 꽃들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모른다.
충분히 바닷길 산책을 하고, 내 생각대로, 예쁜 카페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채로 이동을 했다. 이 근처에서 사진 찍기 좋은 곳, 핫플레이스가 된 곳을 금세 하나 발견해서 잠시 들렸다가 가기로 했다.
더럭 초등학교
60년 전쯤 화재로 없어졌다가 다시 세워진 학교였는데 이마저도 학생수가 줄어들어 17명만이 남았고 더럭 분교라는 이름이었던 곳이다. 2012년 장 필립 랑클로라는 프랑스 시각디자이너이자 컬러리스트가 삼성전자 광고 프로젝트를 통해 학교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를 시작으로 주변에 주택이 많이 건축되고 학생수가 점차 늘면서 지금은 초등학교로 승격되었다.
어라?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오늘은 '색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콘셉트가 되었다. 색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몇 년 전 어떤 분과 '같은 색과 다른 색'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그분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한 사람의 색깔이 너무 튀면 안 된다. 다른 사람과 같은 색깔 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모든 사람이 다 하나의 색이라면 그 세상은 아름다울까?' '하나의 색으로 가득 찬 것과 무지개를 함께 떠올려보면 무엇이 아름다울까? 그렇다면 무지개가 아닐까?'라는 내용이었다.
'어떤 사람이 가진 성향이 어떤지, 나와 같은 성향이 아니어도 그 사람을 존중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태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때 그 얘기를 할 당시에 나는 듣기만 했다.
지금 다시 나에게 묻고 싶다. '나와 다른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서 아름답다고 나는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색깔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와 같은 색깔이 되어주기를 원한다고 말할까?'
같이 다니는 내내 마음에 걸렸던 일행을 위해서 다음 목적지는 대놓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곳으로 정했다.
한라수목원
제주 시내에서 가까운 천 여종의 식물을 간직하고 있고 무료로 입장이 가능한 곳이다. 차를 가지고 왔다면 시간당 주차비 천 원으로 몸과 마음에 힐링을 선물할 수 있는 가심비 좋은 곳이다.
해가 저물어 가는 때쯤에 가니 날씨가 선선하고 걷기 좋았다. 그 맘때 보기 힘든 동백나무도 마지막 때를 맞은 벚꽃나무도 실컷 볼 수 있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그림이 되고, 작품이 되는 자연의 모습에 황홀함을 느꼈다.
오늘의 일정에 대해 나와 다른 의견을 가졌던 그분은 인공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시시콜콜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말을 아껴 필요한 말을 전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의 성향을 나는 모르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고, 나도 비슷한 면들이 많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점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일행도 하고 싶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일행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안타깝지만 나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생각이었다.
여럿이 함께하고 있을 때 '나다운 것이 드러나는 것'은 누군가에게 좋은 자극이 될 수도 있지만, 또 불편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반드시 꼭 이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서 나다움을 드러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시간에도 나다움을 맘껏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내 생각을 내려놓고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어도 이렇게 충분히 즐길 수 있고, 나 또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조금은 불편해도, 힘들어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투쟁의 과정 속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한 나다움을 발견할 수 있게 될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