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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 Eun Cho May 13. 2020

무슨 일이 일어날까

겁낼 시간이 없다

제주도에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났던 곳은 한라산이었다. 내게 한라산의 의미는 '갔다 오면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때문이다. 벌써 15년 전에 봤던 드라마인데도 아직도 생생한 내 인생 드라마다. '평범하고 뚱뚱한 싱글녀인 서른 살, 김삼순'이라는 주인공이 때로 웃음거리가 되더라도 언제나 당차게 살아가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극 중 김삼순은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고, 콤플렉스였던 이름 '삼순'을 버리고 '희진'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을 청소하다 문득 달력에 있는 한라산 사진을 보게 된다. 그 사진을 보고 그녀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바로 한라산으로 갔다. 그녀에게 한라산 등산이란 '갔다 와서 다시 시작하게 하는 곳'이었다. 그 남자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라고 했던, 같이 가보자고 했던 한라산에서, 그를 잊기 위해 간 것이다.


'그래, 이젠 됐다. 그만하자. 자책도 원망도. 난 겨우 30년을 살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많으니까. 먼 훗날에라도 다시 만나게 되면 무기력한 모습은 보이지 말자. 너를 좋아했지만 너 없이도 잘 살아지더라고, 당당하게 말하자. 그래,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여자 김희진이 아니라, 파티시에 김희진으로.'
- 김삼순이 한라산을 오르는 장면에서 나오는 내레이션 중에서 -


15년 전, 김삼순을 통해 바라본 서른 살의 모습은 무척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모습처럼, 어떤 시련을 만나도 금방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당당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중에 한라산을 가면, 나 또한 그렇게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겨우 30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니 그녀의 당찬 모습은 더욱 존경스러워진다. 당찬 모습은 꿈꾸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았던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이제 나도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동안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일이나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을 다짐하기 위해서 한라산을 오르게 되었다.



한라산 국립공원,

한라산 정상, 백록담을 오를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는데 관음사 탐방로와 성판악 탐방로가 있다. 전체 거리로 따지면 2km 정도 더 긴 성판악을 선택한 이유는 첫째, 탐방로의 난이도가 쉬운 단계부터 시작해서 차근히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둘째, 숙소가 있는 성산에서 한라산 입구까지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탐방로였기 때문이다.


한라산은 코스별로 탐방객 출입제한 시간이 있어서 각 구역마다 도착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백록담 정상에서 오후 2시 전에는 하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등산 시간을 여유롭게 잡기 위해서 서둘러 도착했다.


성판악휴게소 주차장


성판악휴게소,

오전 7시, 주차장에는 이미 차가 꽉 차있었다. 저마다 부푼 꿈을 가지고 새벽부터 부지런히 달려왔나 보다. 휴게소에는 간단한 매점이 있고, 각종 등산용품과 간식거리, 음료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매점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산에 오르기로 했다. 선택지는 오직 김밥과 우동뿐이었다. 한 사람당 한 그릇씩 우동을 시키고, 김밥은 두 줄만 시켰다. 그리고 산에 올라가서 먹을 김밥 세 줄을 포장했다.


성판악휴게소 매점의 김밥과 우동


김밥 속 재료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계란, 맛살, 그리고 단무지 세 가지, 찰지게 지어진 흑미밥으로 말아 놓은 기다란 김밥 두 줄이 1인분이란다. 투박하고 굵게 썰어 놓은 김밥 하나를 먹으니 입 안이 꽉 차 버렸다. 깍두기를 곁들여 먹으니까 심심하지 않고 간이 딱 맞았다. 김밥과 함께 뜨끈한 우동 국물 한 사발을 마시고 나니 산에 오르기 전에 몸이 확 풀렸다. 나의 '소울 푸드'인 해장국의 최고의 장점인 '뜨끈하고 시원한 국물', 오늘은 우동 국물로 한껏 든든해져 산을 올라보기로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등산 모자, 옷, 스틱, 장갑, 신발 등 등산 용품으로 온몸을 장착했다. 오늘 마음만큼은 전문 산악인이 되어보기로 한다. 게다가 가방에는 '뭐든지 올라가서 먹는 게 꿀맛!'이라며 전날 사둔 간식과 라면, 생수, 보온병으로 가득 채웠다. '과연 이곳은 히말라야인가 한라산인가...' '히말라야를 가는 비장한 마음'으로 입구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드디어 한라산에 오른다.


한라산 국립공원 성판악 탐방로 입구


성판악 탐방로는 총 9.6km다. 왕복으로는 20km에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체력 안배를 잘해야 한다. 한라산은 코스별 난이도를 A/B/C로 나누어 놓았는데(A: 어려움, B:보통, C:쉬움), 성판악의 난이도는 다음과 같다.


탐방안내소 - C - 속밭대피소 - C - 사라악 샘 - B - 진달래밭 대피소 - A - 정상(백록담)


실제로 초입에는 길게 뻗은 울창한 나무 숲 사이 나무 데크와 카펫으로 잘 닦아놓은 길들이 놓여 있어 쉽게 느껴졌다. 정말 오래도록 걷고 싶은 길이었다. 경사가 완만하고 아침 햇살과 바람이 적당하며, 새들이 예쁘게 노래한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바라보면서 하나도 힘들지 않게 2시간 동안 걸어갔다.


속밭대피소를 향해 가는 길


속밭대피소에 도착해서 앉아 쉬고 있는데, 마침 초등학교 1-2학년쯤 되는 남자아이와 젊은 아버지의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아이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고, 입에서는 온갖 불평과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아이는 울분을 토하며 말했다.


"아빠는 이게(등산이) 재밌어? 재밌냐고... 나는 하나도 재미없어.

봐봐, 사람들이 날 보면서 웃고 있잖아. 지금 웃는 게 재밌냐고... 나는 이렇게 진지한데."


그리고는 지켜보는 사람이 더 걱정이 될 만큼 꽤 오랜 시간 꺼이꺼이 울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귀여움 반, 안쓰러움 반이 느껴졌다. 그때, 아버지는 침착하게 화를 내지 않고 아이가 진정될 때까지 옆에서 듣고 있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 보이자 아버지는 차근히 아이와 대화를 시작했다.

 

"충분히 진정됐어? 다들 네가 귀여워서 웃으시는 거야......."


아쉽게도 그 이후의 얘기는 듣지 못하고 멀리서 그 두 사람을 지켜보기만 했다. 아마 아버지는 아이에게 '본인이 왜 등산이 재밌고, 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아이와 오고 싶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아이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가 궁금하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다가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꼭 산에 가신다. 동네 뒷산은 물론이고 전국 곳곳에 이름 있는 산들, 심지어 이름 없는 산들까지 찾아서 가실 정도로 등산을 참 좋아하신다. 뚜렷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도, 가족끼리 어느 관광지를 가면 근처에 산을 꼭 찾아 들렀다고 하셨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가끔 산에 가셨었는데, 등산이라는 것은 내게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내 성격은 모험가, 활동가인데, 등산은 예외였다. 먼저, 똑같은 길을 반복적으로 걷는 행위 자체가 지루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관심이 없다 보니 한 번 가면 오랜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싫었고, 다녀온 후 찾아오는 근육통이 두려웠다. 심지어 아버지는 등산의 고수시고, 오직 목표를 향해 직진만 하셔서 '무언가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없어 지친 상태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있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소중해졌다. 특히 아버지와의 시간은 자주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와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총합 끝에 나온 생각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해야겠다'였다. '지루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것도 알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좋아하시니까'라고 마음을 먹고 나서는 의지적으로 등산을 가게 되었다.


 

한라산 해발고도 표시석


나는 어떤 일이든 일의 의미를 찾아내면 줄곧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계획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목표 설정이다. 뚜렷한 목표가 생기기 전까지는 우물쭈물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제대로 한 번 세운 목표가 있으면 계속해서 해나가는 편인 것 같다. 그 대상이 일이든지,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그래서 나의 이 '삶의 공식'을 등산에도 적용해보기로 했다. 한라산을 올라가면서 길 위에 마주치는 해발고도 표시석을 모두 놓치지 않고 사진으로 기록했다. 표시석 간의 소요시간을 사진을 촬영한 시간으로 계산해보며, '아, 내가 고도 100미터를 아까는 50분 만에 올라왔는데, 이번에는 30분 만에 올라왔구나.' 하면서 스스로에게 성취감을 느끼도록 했다. 나중에는 보물 찾기를 하는 것처럼 표시석을 찾아서 산을 올라갔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어느새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너무 뿌듯했다. 이제 곧 정상만을 남겨 두었으니 이곳에서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을 주도록 한다. 그것은 바로 맛있는 점심 식사였다.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먹은 김밥과 컵라면


드디어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병 두 병을 가방에 메고 와야 했던 불편을 일순간에 사라지게 하는 순간이 왔다. '어라?' 근데 물이 생각보다 뜨겁지가 않아서 라면이 잘 불지를 않았다. 오래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던가. 자그마한 온기로 조금 더 기다려보니 다행히 먹을 수 있을 만큼 면이 불었다.


해발 1,500m 위에서 먹는 기분이란 마치 비행기를 타고 기내식을 먹는 기분 같았다. 하늘 위에서 먹는 컵라면은 육지에서 500원 하는 컵라면의 8배로 판매되는데도, 절대 먹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옆좌석에 있는 사람이 라면을 먹기 시작한다면, 그 줄은 다 먹어야만 한다. 하늘 위에서는 왠지 더 맛있어 보이고, 진짜 더 맛있는 것 같다. 높은 고도의 대피소에서 먹는 김밥과 라면의 맛도 마치 그랬다.


점심으로 그동안 수고한 나를 잠시 위로하고, 다시 정상을 향해 길을 나섰다. 약속된 하산 시간까지 2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금세 여유가 사라져 버렸다. 지금까지 올라온 길과는 차원이 달랐다. 좋아했던 나무 데크와 카펫으로 잘 닦아놓은 길은 거의 없었고, 울퉁불퉁한 자연 그대로의 바윗길을 지나가야 했다. 심지어 녹은 눈으로 덮인 미끄러운 바위를 장갑 낀 손으로 잡아 기어 올라가야 했고, 양 손 스틱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도 없었다.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주었던 성취감도 점점 바닥을 치는 듯했다.

 


함께 갔던 일행도 지쳤다. 한 일행은 사실 무릎이 아파서 무릎보호대를 하고서 등산을 했다. 올라오기 전에 진달래밭 대피소까지가 자신의 목표라고 했는데, 조금 더 욕심을 내어 정상까지 도전했다. '과한 욕심이었을까?' 연속되는 오르막길에 무릎에 자꾸 힘이 들어가다 보니 점점 한 발 걸을 때마다 아파온단다. 걷다가 쉬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고, 기다리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가기만 했다. 제한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모두 백록담에 도착할 수 있을까, 눈 앞에서 못 가게 되지 않을까?' 두려움이 자꾸만 쌓였다.


한라산을 이미 한 번 다녀온 또 다른 일행이 내게 말했다.


"너는 백록담 정상 한 번 가봐야 하지 않겠니, 얼른 먼저 올라가. 나는 한 번 갔었으니까 괜찮아. 이 사람은 내가 데리고 갈게."


또다시 두려웠다.

'나 혼자 정상까지 남은 길을 다 올라갈 수 있을까?'

'앞으로는 지금까지 올라온 길 보다 더 위험하지 않을까?'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먼저 간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먼저 나는 그들을 믿기로 했다. '곧 따라올 것이라고. 반드시 같이 정상에 오를 거라고.' 두려움을 움켜쥐고서 지체하지 않고 정상을 향해 홀로 올라갔다.



두렵다는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겁이 나는 것'이라고 한다. 두렵다는 말은 곧 무섭다는 말과 함께한다. 우리는 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무서워하고 불안해한다. 두려움의 이유 중 하나는 아마 '어떤 일을 완벽하게 성공하고 싶은 욕구'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곧 '실패하지 않는 인생'을 살고 싶기 때문일 것 같다. 각자 자기만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있고, 재물이 많고 적음과 지위가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기만의 두려움을 갖고 살아간다.


두려움이라는 존재 자체를 소멸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두려움과 싸우는 데 시간을 보낸다면 평생을 다 쏟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애석하게도 우리 인생에는 그럴 시간이 없다. 미래의 일이야 둘째치고 눈 앞에 놓인 일을 할 시간도 부족한데, 어떻게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할 시간이 있을까.


'두려움아, 너는 그냥 있어. 나는 다른 거 먼저 하고 있을 테니까.'




내 앞에 주어진 하늘을 향해 놓인 길을 그저 걸어보기로 했다. 하늘을 보며 걷는 데만 집중하면서 나아갔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계속 체크하면서 갔다. 1분에 걷는 걸음수가 점점 더 늘어간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정상 문턱까지 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목이 너무 마른데도, 정상이 눈 앞에 보이니까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두려움은 어느새 잊혀 버렸고, 오직 눈 앞의 목표만 보였다.


백록담 전경


2시, 5분 전에 백록담에 도착했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숨을 몰아쉬며 소리를 질렀다. 하얗게 돌아오지 않은 얼굴을 하고 백록담 앞에서 웃으며 인증 사진을 찍었다.


이윽고 일행들이 모두 정상에 도착했다. 내 믿음이 옳았다.

'나 혼자 정상까지 남은 길을 다 올라왔다.' 그리고 '우리 모두 정상까지 남은 길을 다 올라왔다.'


두려움을 제쳐 두고 지금 해야 할 일에 충실하니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을 이길만한, 정직하게 찾아오는 보람을 얻을 수 있었다. 버티고 견디다 보면 얻어지는 보람과 희열을 느껴보면서, 정상에 도착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 시간'을 온몸과 마음으로 만끽했다.


백록담에서 내려다 본 전경, 그리고 자유시간


정상에서의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내려와야 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길 보다 더 힘들고 위험했다. 정상이라는 목표를 이루고 나니 긴장감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스르르 풀려 버렸기 때문이다.


하산에는 제한 시간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조급하게 시간을 쫒아 가느라 무리하게 몸을 쓰지 않았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우리에게 주어진 속도대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내려왔다. 점점 하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흔적도 들리고 보이지 않는다. 해가 저물어 가고 산에는 어둠이 찾아왔다. 마지막 문턱에서 핸드폰으로 부랴부랴 손전등을 켜서 길을 더듬거리며 등산을 마쳤다. 그 결과, 내려가는 시간이 올라가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렸고, 거의 6시간이 걸렸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내겐 의미 있었던 시간이었다.


사실 아까 정상에 올라갔을 때, 혼자 먼저 갔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백록담이 눈 앞에 있다 하지만, 혼자 온 게 아니라 같이 왔는데, 올라가지 못하더라도 같이 있어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하는 마음이 자꾸 아른거렸다. 길고 길었던 내려오는 시간이 오롯이 함께여서, 함께 등산을 마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리고 고대하던 흑돼지 한 상을 맛있게, 그 어느 때 보다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절뚝이는 다리는 어쩔 수 없었지만, 함께 목표를 이룬 동지들과의 저녁 식사는 참 훌륭했다.


한라산 등산을 마치고 먹은 제주도 흑돼지


엄습하는 두려움에 시선을 집중하지 말고, 하늘을 향해서, 인생의 목표를 향해서, 주어진 길을 그저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두려움 때문에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갈 시간에 더 많이 나를 노출시키고, 밀어붙여 나아가게 해야겠다. 앞으로 몇 개를 이룰 수 있을지를 계산하기보다 지금까지 이뤄온 일을 세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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