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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 Eun Cho Apr 21. 2020

함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새벽 5시, 아직은 깜깜한 새벽녘에 일어나, 첫차를 타고 공항에 갔다. 공항 가는 길은 비가 추적추적 왔다. 그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버스 안에서 잠시 잠을 청했다. 내가 도로에서 보낸 시간만큼 하늘 위에서 똑같은 시간을 타고 날아온 사람들을 마중하러 갔다. 마침 우리가 만난 순간에 딱 비가 그쳤다. 공항에서 만난 제주의 이 비가 우리 일정의 처음이자 마지막 비였다.


그렇게 나는 오늘부터 혼자가 아닌 셋이 되었고, 두 발이 아닌 네 발로 다니게 되었다. 셋이서 타기 좋은 작고 귀여운 하얀 차를 빌렸다. 차가 생기니 그동안 뚜벅이라 못해보던 제주 시내 구경을 다 하게 되었다. 평일 오전 출근 시간에 차와 건물들이 즐비한 시내 도로를 다니니 제주의 일상에 섞여 함께 살아가는 느낌,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새벽부터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한 두 사람에게 어떤 아침 식사로 보답하면 좋을까?' 비가 그친 제주의 날씨는 사뭇 쌀쌀하기도 했다. 속이 편해지고 따뜻해지는 음식이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역시, 해장국이 딱이지!'


우진해장국


우진해장국,

제주도의 향토 음식 중 하나인 몸국과 대표 특산물인 고사리 해장국을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오직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기에 정말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우리 모두 해장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테이블 자리는 이미 다 찼고, 온돌방에 들어가 앉았다. 몸국 하나와 고사리 육개장 둘을 주문했다. 나는 고사리 육개장을 먹기로 했다.


우진해장국의 고사리육개장


보통 육개장을 생각하면 빨간 국물을 떠올리는데, 갈색 국물이었다.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보는데, 건더기가 잡히질 않아서 의아했다. 평소에 육개장 먹을 때는 고사리를 참 좋아하기 때문에, 먼저 고사리 줄기부터 젓가락으로 집어서 후루룩 먹었었는데, 숟가락으로 떠야 건더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의 육개장에 대한 정의에 반하는 새로운 육개장이 등장했다. 고사리 육개장은 흑돼지고기를 삶은 국물에, 푹 삶은 고사리와 돼지고기를 반죽하듯 치대어 끓여낸 것이다. 몸국도 같은 육수에 해초와 돼지고기를 넣어 끓여낸 것이다.


해장국을 떠올리면 국물을 마시며 '아, 시원하다!' 하는 것을 연상하게 되지만, 이 해장국은 걸쭉한 죽의 식감이었다. 비록 그릇째 들고 마실 수는 없었지만, 맛 자체가 특별했기에 모든 게 허용되는 맛이었다. '얼큰하고 고소한 돼지 수프'라고 표현하고 싶다. 딱딱한 걸 씹지 못하시는 어르신들이 드시기에 부담이 없는 음식이라서 동네 어르신들이 자주 찾아오실 것 같다. 입 안에 전해지는 깊고 진한 맛에 가족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겨 있는 것 같다.




나와 해장국의 인연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어머니는 한 백화점 정문에서 꽃집을 하셨다. 매일 학교를 마치면 혼자 버스를 타고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어머니가 꽃을 손질하시고, 포장하실 때 옆에서 지켜보기도 하고, 작은 공간에 쭈그려 앉아서 라디오를 듣고, 책도 보곤 했었다. 그러다 할 일 없이 그냥 앉아 있더라도, 그저 '어머니와 함께 있다는 것'이 좋아서 늘 곁에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머니가 일하는 직장에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른다. 회사에 아이를 데려와 함께 일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그때의 나를 항상 받아주셨던 어머니께 감사한 마음이다. 


어머니 옆에 있는 나를 다른 매장 어른들이 귀엽게 봐주셨다. 간식도 주시고, 체하면 등도 두들겨 주시고... 친근하게 부모님처럼 대해주셨던 그때의 어른들이 가끔 그립다. 어머니와 어른들은 해장국을 자주 드셨다. 그래서 나도 따라서 같이 먹게 됐다. 순댓국, 뼈해장국, 선지 해장국, 내장탕 등 해장국이란 해장국들은 모두 초등학교 때 다 섭렵했다. 이상하게도 한 번도 거부감이 없었고, 먹을 때마다 바닥이 보일 때까지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었다.


해장국은 나의 '소울 푸드'가 되었다. 먹을 때마다 따뜻해지고, 힘이 나는 존재다. 나의 한계를 경험하고 고통 속에서 괴로워할 때도, 공허한 마음이 들어 고독할 때도 어머니처럼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정겨운 음식이다. 그런 해장국처럼 만날 때마다 따뜻해지고 내게 힘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서 내 편이 없다고 느껴질 때도 오로지 내 편이라고 해주는, 기꺼이 나와 함께 고통스러워해 주는 그들이 있어서 참 감사하다.




그동안 '파란 제주'와 함께였다면, 오늘은 '초록 제주'와 함께하는 날이다. 초록빛이 가득하고 울창한 나무숲 아래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여유롭게 걸어보기로 했다.


절물자연휴양림


절물자연휴양림,

30년 이상된 삼나무들의 집이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널찍한 삼나무 길을 걸을 때 향긋한 삼나무 향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느껴진다. 인공이 아닌 자연에서 오는 피톤치드가 몸을 치유해주는 것 같았다.


절물자연휴양림


삼나무 가로수길을 따라가다 보면, 연못이 하나 나온다. 깨끗한 연못에는 잉어들이 살고 있고, 저 멀리 솟아 있는 절물오름이 보인다. 오늘 날씨가 맑으니 절물오름에 오르면 제주시와 한라산이 다 보일 것 같다. 등산로를 따라서 오름 전망대까지 올라보기로 했다.


오름을 올라가는 길은 동네 산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산행이었지만, 시원한 공기와 자연의 아름다움에 힘을 얻어 올라갈 수 있었다. 종류가 같은 나무일지라도 모양이 다 다르다. 일자로 뻗어 자란 나무도 있고, 제멋대로 삐죽삐죽 자라서 길을 가로지른 나무도 있었다. 다 같은 모양의 나무들을 보는 것보다 다 다른 모양의 나무들을 보는 게 더 흥미로웠다. 이상하게 생긴 나무들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무 구경을 하다가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절물오름


가슴이 탁 트인다. 움츠려 든 마음이 확 펴진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나무로 가득한 분화구의 모습, 저 멀리 보이는 자그마한 제주시와 한라산의 능선이 참 멋지다. 40분의 등산이 보람 있었던 순간이다. 등산은 참 정직하다. 올라가는 힘듦의 크기만큼의 가치가 있는 진풍경을 선사한다. 참 매력적이다. 정상에서 들숨날숨을 여러 번 반복해보고, 눈으로 몇천 번의 셔터를 누르며 이 순간을 몸과 마음에 새겨본다.




꽃과 나무, 그리고 오름을 품고 있는 자연을 보며 사뭇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자연은 세상 누구보다 넓은 마음을 가졌고, 사랑이 충만할 것이다. 모양이 다르고 성격도 다른 꽃과 나무들이 한 데 모이니 아름답기만 하다. 개인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전체의 아름다움까지도 이해하는 자연에게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과도 함께 어울려 지낼 수 있는 법', '공동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함께 있다는 것'은 사랑이 필요하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함이 아닌 나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들였던 시간과 정성을 다른 사람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은 욕심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선택한 건 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어떠한 인정을 바라지 않고 아무 대가 없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저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순수한 희생'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일 것이다. 오늘 내게 온 이 두 사람을, 그리고 내게 주신 사람들을 숭고하게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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