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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림 Oct 17. 2019

이국적인 너무나도 이국적인

산다페 Santa Fe

멕시코와 국경이 맞닿아 있는 뉴멕시코는 미국에서도 무척 이국적인 곳이다. 뉴멕시코에 붙어있는 텍사스에만 가도 멕시코의 문화를 다분히 느낄 수 있다. 텍사스에는 스페인어를 쓰는 히스패닉이 절반을 차지한다. 오스틴에 있을 때 그곳에서 한 시간 떨어진 샌안토니오에 가본 적이 있다.


샌안토니오는 소박한 시골 도시다. 유명한 관광지인 미션 산호세와 알라모에 가면 낡고 오래된 건물에서 준엄한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리버워크에서는 초록빛 강줄기를 따라 유람선이 유유히 떠다니며 가보지도 못한 유럽의 나라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샌안토니오의 리버워크

그 뒤로 미국의 광활한 대자연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때면 이국적인 뉴멕시코를 떠올리곤 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관광지인 산타페는 꼭 한번 가보고 싶던 도시였다. 산타페는 아름답고 예술적인 거리로 유명하다. 고지대라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스키를 타러 오는 이들도 많다.


루트66을 지나며 늦은 봄에 산타페를 지났다. 기대했던 것처럼 산타페에 들어서며 눈앞의 모든 풍경이 이국적으로 바뀌었다. 나지막한 건물들은 누런 황토색 외벽이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하다. 아담한 크기의 창문이 나있고, 간혹 지붕에 통나무가 갈빗대처럼 드러난 건물도 있다. 진한 하늘색에 초록색이 한방울 섞인 터키석 색상의 문이 포인트로 들어간다.

독특한 건축양식이 이국적인 산타페 거리

산타페의 이러한 건축은 인디언의 어도비 양식과 스페인 스타일이 혼합된 푸에블로 리바이벌(Pueblo Revival)이란 건축 방식이다.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수더분한 황토색 건물들은 산타페의 거리를 독특하게 만든다. 거기에 하나 더, 봄을 알리는 분홍빛 꽃나무들이 곳곳에 서있다. 한국을 떠난 뒤로 꽃놀이를 따로 즐길 일이 없었는데, 모처럼 봄꽃을 보니 반가웠다.  


산타페에 있는 뉴멕시코 주 청사 앞에도 하얀 목련이 풍성하게 피었다. 산타페는 뉴멕시코의 주도다. 1610년 스페인의 식민지 시절부터 주도로 자리하며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주도로 꼽힌다. 오래된 곳이니 낡고 허름하지는 않을까? 뉴멕시코의 주청사는 예상과 달리 무척 현대적이고 깔끔했다.

산타페에 있는 뉴멕시코 주 청사

"와 여기 너무 좋다."

주청사에 들어가자마자 시원한 대리석 바닥에 지호가 대 자로 누웠다. 바닥에는 뉴멕시코를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지호는 바닥에 누워서 볕이 들어오는 둥그런 천장을 바라봤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런 지호를 보며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주청사 안은 마치 갤러리 같았다. 복도를 따라서 걸어가면 벽에 걸린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작품들은 저마다 독특하고 예뻤다. 현대적인 그림도 있지만, 대체로는 인디언 문화나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이 많았다. 진한 원색과 전통적인 문양이 강렬하다. 주청사를 한바퀴 돌고 나니 뉴멕시코의 예술을 압축해서 관람한 느낌이다.

본래 산타페의 지명은 스페인어로 ‘거룩한 믿음(Holy Faith)’이라는 뜻이다. 주청사 밖으로 나와 그 의미에 걸맞은 세 군데의 유적지를 찾아 갔다. 제일 먼저 방문한 산 미구엘 성당은 미국에서 지어진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건물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내부는 천장이 꽤 높았다. 천장이 높은 교회나 성당에 들어오면 왠지 모르게 성스러운 기운을 받는다. 제단을 꽉 채운 벽화와 조각들, 오래된 촛대와 빛바랜 나무틀이 오랜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다.

산미구엘 성당

창문에서 햇살이 들어와 맨질맨질한 나무 바닥에 따사로이 내려앉았다. 옛 나무문을 열고 성당의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은으로 만든 작고 납작한 장신구가 사각기둥에 빼곡히 붙어있다. 십자가부터 별, 천사, 기도하는 사람, 동물 등 다양한 모양이 작고 오밀조밀했다.

산미구엘 성당

로레토 성당(Loretto Chaple)은 산 미구엘 성당에 비해 규모가 더 컸다. 정원에 있는 벚꽃나무에는 사람들의 기도와 염원이 담긴 묵주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지호도 그 앞에서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3달러의 입장료를 내고 실내로 들어갔다. 이곳은 일층과 이층을 빙글빙글 나선형으로 이어주는 ‘기적의 계단’으로 유명하다. 입구에 기적의 계단 모형이 있고 그 옆에는 계단에서 촬영한 웨딩 사진이 걸려 있다. 아마도 성당 안에서 웨딩 촬영을 허가하는 것 같다.

로레토 성당

기적의 계단이라 불린 유래는 이러하다. 아주 오래전 수녀님이 예배를 보기 위해 사다리로 이층을 오르내리기가 힘이 들어 계단을 만들어달라고 기도를 했다. 그러자 목수가 나타나 계단을 만들어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받침이나 이음새가 없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계단이 탄생했다. 아래에서 보면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의 바닥면이 끊이지 않고 매끈하게 이어져 있어 무척 신기하다.   

로레토 성당의 기적의 계단

마지막으로 찾아간 성 프란시스 대성당(cathedral basilica of st. francis of assisi)은 가장 크고 웅장했다. 직선으로 뻗은 도로에 들어서자 멀리 성당의 모습이 장엄하게 보인다. 이 성당은 프랑스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져 뾰족하고 반듯한 게 특색이다.


지호는 유모차에서 내려 성당 앞의 너른 돌바닥을 거닐었다. 그곳에는 동상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너무나도 독특해서 눈길이 간다. 머리가 길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여성이다. 긴 치마 위에 흰 옷을 걸치고 깃털 모양이 겹쳐진 부채를 들고 있다. 신발은 꼭 우리나라의 고무신이나 버선같은 모양이다. 터키석 색깔의 귀걸이와 장신구를 착용하고 손에는 십자가를 꼭 쥐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카테리 테카크위타(Kateri Tekakwitha). 미국 최초의 여성 인디언 성직자다. 인디언이자 성직자로서 그녀의 삶은 숱한 고행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상으로 만들어진 그녀의 얼굴은 평온했다. 살짝 머금은 미소가 산타페의 훈훈한 공기에 어우러졌다.

성프란시스 대성당

예술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산타페의 거리는 무척 아름다웠다. 길을 걷다가 특이하고 예쁜 건물을 만나면 멈춰서 사진을 찍었다. 예술가들의 작품을 직접 판매하는 가게도 많다. 쇼윈도 너머로 산타페만의 예술혼을 담은 조각상이나 그림, 공예품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예술품은 대체로 스페인과 인디언의 문화를 혼합시켜놓은 느낌이다.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와 문양이 때로는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느낌을 떠올리게끔 했다.

가게들이 모여 있는 로터리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주로 값비싼 기념품과 옷을 판매하고 있다. 한쪽 길가에는 인디언들의 수공예품 좌판 행렬이 죽 펼쳐져 있다. 은과 터키석으로 만든 반지, 목걸이 같은 장신구가 대다수다. 물건을 판매하는 인디언들은 가격 흥정이나 호객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계속 만들고 있었다. 인디언 특산품이라고 적어놓은 종이를 앞에 두고 앉은 그들의 모습이 조금 초라해보였다.  

지호는 거리 곳곳에 걸려있는 빨간 고추가 신기한지 가까이 다가가서 냄새를 맡았다.

"우엑, 매운 냄새가 나잖아."

"그럼 진짜 고추를 말린 거니까."

말린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리스트라(Ristra)는 뉴멕시코의 상징이다. 고추를 오래 저장하기 위해 걸어놓고 말린 데서 유래한 풍습이다. 가정집뿐 아니라 가게나 거리에도 종종 장식으로 내건다.


산타페의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보고 차를 타고 이동했다. 전망대에 올라가기로 했다. 캠핑카를 언덕배기에 주차하고 걸어서 올라갔다. 길이 마치 성벽이나 돌담길 같다. 지호는 보채지 않고 씩씩하게 오르막길을 걸었다. 올라갈수록 하늘이 파랗게 개었다. 정상에 다다르니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꼭대기에는 대형 십자가가 있다. 파란 하늘과 갈색 돌담길 사이에 놓인 하얀 십자가. 스페인의 어느 고즈넉한 마을에 올라와 있는 듯하다.

산타페에서 길고도 짧은 시간을 보낸 뒤 캠핑카로 돌아왔다. 뉴멕시코는 역시나 가는 도시마다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산타페에서의 하루는 기대했던 것만큼 볼거리가 풍성했다. 산타페 거리는 미국에 와 있다는 걸 문득문득 잊어버리게 할만큼 이국적이었다. 그 안에는 건축과 예술이 있고, 인디언과 가톨릭의 역사가 있다. 지호와 오래된 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던 장면이 머릿속에 남는다. 아름다움뿐이었다면 그렇게 끌리지 않았을 것이다. 산타페를 떠나며 우리 여행에도 경건한 쉼표를 하나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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