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야기의 시작
어릴 적 할머니댁이 홍대 앞에 있었다. 그때만 해도 홍대에는 옷가게도 클럽도 높은 빌딩도 없었다. 불금이면 지하철역을 줄지어 올라가는 북적북적한 인파도 없었다. 조용한 대학가는 화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그 거리는 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할머니를 좋아하고 거리 구경하기 좋아하는 나는, 할머니댁에 가는 날이면 신이 나서 양말을 신었다.
명절 때는 할머니댁에서 사촌들과 나와서 홍대 앞 거리를 한 바퀴 누볐다. 우리 동네에 없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사 먹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당시 유명했던 떡볶이 골목에 가서 떡볶이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가끔 머리를 기르고 미대생 포스를 풍기는 남학생을 보곤 했다. 떡볶이 골목에는 큰 오락실도 하나 있었다. 동생과 내가 즐겨 찾던 게임은 심리테스트였다. 문제를 서너 개 풀면 심리테스트를 하나씩 해볼 수 있다.
지금도 기억나는 테스트는 문이 두 개가 있는데 어느 쪽으로 들어갈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하나는 밝은 문, 하나는 어두운 문.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밝은 쪽을 선택했던 것 같다. 그 해석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내가 현재 처한 상황이 '어두운' 쪽이면 밝은 문으로, '밝은' 쪽이면 어두운 문을 선택하는 게 사람의 심리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 말이 맞을까? 어린 동생과 나는 고개를 갸우뚱해하며 다음 질문을 맞히기 위해 다시 버튼을 빠르게 두드렸다.
내가 찍는 사진도 나만의 '트렌드'가 있다. 오래전에는 채도가 낮은 점잖은 빛깔이 좋았다. 한때는 흑백사진에 꽂혀 칼라사진이 죄다 요란스럽게 보인 적도 있다. 요즘에는 다시 쨍하고 선명한 색상이 마음에 든다. '역광'은 원래 선호하던 기법이지만, 거기에서 한단계 나아가 좀 더 강한 빛에 이끌린다. 자꾸만 더 밝고 더 센 빛으로 카메라 렌즈를, 아니 폰을 들이대고 있다.
오늘 놀이터에서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길. 돌담에 나있는 조그만 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나무에 비치는 모습을 발견하곤 사진을 한 컷 찍어봤다. 그리 예쁘지 않은, '스칼렛 오하라' 같은 이 사진을 보며 꿈 해몽하듯 내 무의식과 대면한다. 나는 왜 자꾸만 밝은 빛에 이끌리는 걸까. 내가 있는 이 곳이 정녕 어둠이란 말인가. 활기로 가득찬 에너지에 대한 끌림을 부정할 수가 없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다. 이 터널도 곧 끝에 다다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