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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화그리는목각인형 Apr 20. 2021

‘슬램덩크’ 작가는 왜?

《리얼(リアル)》

  우리나라에서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슬램덩크(SLAM DUNK)》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배가본드(バガボンド)》로 비르투오소(virtuoso), 다시 말해 ‘거장’ 소리를 듣는 이노우에 다케히코(井上 雄彦, 1967-)는 농구선수가 꿈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작은 키 때문에 농구만화를 그려 아쉬움을 달래는데 그가 열아홉 살 때 처음으로 출판사에 투고한 작품도 고교농구가 내용이다. 


  독자로서야 좋다. 


  농구선수가 됐다면 만화가가 되지 않았을 테고 《슬램덩크》도 없었을 테니.   

  본이름이 나리아이 다케히코(成合 雄彦)인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시티헌터(シティーハンター)》 작가인 호조 츠카사(北条 司, 1959-) 문하생을 하다 1989년 첫 단행본 《카멜레온 자일(カメレオンジェイル)》을 낸다.


  이어 1990년부터 연재한 《슬램덩크》로 이름도 얻고 돈도 많이 벌었다.


  1억 7000만 부가 넘게 팔렸다는데 이 작품을 보다 보면 이노우에 다케히코 그림이 바뀌는 과정이 보인다. 


  독자들은 《슬램덩크》 2부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지만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전혀 다른 농구만화를 선보인다. 

ⓒ 集英社

  슬램덩크를 할 수 없는 선수들 이야기, 휠체어 농구를 다룬 《리얼》이다.     

  

  하반신을 쓸 수 없는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탄 채로 농구경기를 하는 스포츠 휠체어 농구는 선수들 등급이 여덟 가지로 나뉜다. 


  장애에 가장 작은 영향을 받는 1.0부터 4.5까지 0.5씩 등급이 올라가는데 각 팀 다섯 선수 등급 합은 14를 넘을 수 없다.    

 

  휠체어 농구는 세계 장애인 올림픽인 패럴림픽을 만든 신경외과 의사 루트비히 구트만(Ludwig Guttmann, 1899-1980) 박사가 “수술보다 스포츠”라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척수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된 상이군인들 치료수단으로 썼다. 


  그러다 1949년 미국에서 전미 휠체어 농구협회가 만들어져 제대로 경기로서 만들어졌다. 


  오늘날 유럽을 중심으로 78개 나라가 휠체어 농구를 하는데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가 한다. 

서울시청 휠체어농구팀 ⓒ 서울특별시체육회

  우리나라는 1984년 삼육재활원에서 휠체어 농구팀이 창단되었다.


  일본은 실업팀이 100여개에 이르지만 우리나라는 고작 서울시청 한 곳뿐이다.


  오토바이 사고로 여학생 다리를 못 쓰게 만들자 그 죄책감으로 절망에 빠져 학교를 그만두는 노미야 토모미. 

노미야 토모미 ⓒ 井上 雄彦

  공부와 운동,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뛰어나지만, 어느 날 여자친구와 훔친 자전거를 타다 트럭에 치여 똥을 누는지 오줌을 누는지 알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다카하시 히사노부. 

다카하시 히사노부 ⓒ 井上 雄彦

  피아노를 배우다 달리기가 좋아 달리기 선수가 되어 일본 중학 신기록까지 세웠지만, 골육종이라는 병 때문에 오른쪽 다리를 잘라낸 토가와 키요하루.

토가와 키요하루 ⓒ 井上 雄彦

  《리얼》은 이 세 사람이 그저 도망쳐버리고 싶은 현실과 이야기들을 찬찬히 풀어낸다.


  2001년에 연재를 해서 해마다 한 권씩 나왔는데 14권에서 15권이 나올 때까지는 자그마치 6년이나 걸렸다. 


  판매 부수는 1500만 부를 훌쩍 넘었다고 한다.  


  이 만화를 보면서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 행동을 너무나도 잘 살려내어 놀랐다. 

ⓒ 井上 雄彦

  사실 일본에서 장애를 소재로 하는 만화는 금기까지는 아니지만 잘 다루지 않으려고 한다. 


  혹시라도 소송이나 귀찮은 일이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아닌 신인 작가였다면 쉽지 않았으리라.


  힘 있고 발언권이 있는 작가는 그 능력을 이렇게 써야 한다. 


  장애를 가진 그들에게 더 노력하라고 외치는 부분이 거슬리지만, 작가가 이 작품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뜻을 알기에 기꺼이 동의해줄 수 있다. 


  휠체어도 제대로 못 타는 다카하시가 절망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장애인 다큐멘터리나 인터뷰 같은 방송을 보면 비장애인에게 감동을 주고 동기부여를 하려 한다. 


  코미디언이자 칼럼니스트인 호주사람 스텔라 영(Stella Young, 1982-2014)은 말했다.


  “그것들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대상화하는 감동 포르노이다.” 


  거칠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선천성 희소병을 앓았던 스텔라 영은 나는 당신들에게 영감이나 감동을 주려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우리에게 선물해 준 농구만화 두 개.


  꿈을 좇아 달려가는 젊은 청춘들에게는 《슬램덩크》를, 꿈에서 잠깐 숨 고르기 하는 이들에게는 《리얼》을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 《리얼》, 이 만화가 감동 포르노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장애는 나쁜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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