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레온의 시》
주인공인 강토가 친구 나라와 연인 장미를 만나면서 인간 사이 관계를 탐구해가는 과정을 1인칭 시점으로 말하는 《카멜레온의 시》.
김세영(1953-) 글에 허영만(1947-) 그림인데 정확히는 조운학(1953-)이 그렸다.
이 작품이 여타 만화와 다른 점은 만화 곳곳에 랭보(Arthur Rimbaud, 1854-1891), 로트레아몽(Comte de Lautréamont, 1846-1870), 이승훈(1942-) 시가 인용되고 있어서이다.
글에 시를 끼워 넣었는지 시를 찾아놓고 글을 썼는지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만화이지만 시 여러 편을 묶은 시화집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 만화는 나온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군내는 나지 않는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시가 나오는 만화이지만 읽다 보면 시를 음미하게 된다.
우리가 윤동주를 기억하는 건 그가 ‘별 헤는 밤’ ‘서시’ 같은 아름다운 시를 남겨서이다.
이 작품에 주로 인용된 시는 이른바 악마주의 시에 해당한다는 말도로르(필명·로트레아몽) 시이다.
로트레아몽은 프랑스 사람이고 본이름은 뒤카스, 1868년에 나온 《말도로르의 노래(Le Chant de Maldoror)》라는 시집이 있으며 스물네 살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내용까지 찾아봤을 만큼 이 만화는 나를 파고들게 했다.
아름다운 여자 장미와 못생기고 뚱뚱하지만 순수한 영혼인 신혜.
둘 가운데 누가 더 좋으냐고 화실 친구들과 토론 아닌 토론도 했었다.
나로서는 예쁘지만, 불안한 장미보다 편한 신혜가 좋았는데 최소한 사람을 저울질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인 나라는 시인이자 기타리스트였고 뛰어난 권투코치였다.
작품에 빠져들다 보니 나라가 읊조리던 시가 좋아졌고 기타연주가 부러웠다.
하루는 화실에 후배가 들어와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는데 기타 좀 친다고 했다.
“그럼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할 수 있어?”
그때까지 화실 분위기에 눌려있던 녀석은 내 말에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화실 구석에 쓸쓸히 놓여있던 통기타에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레쿠에르도스 데 라 알람브라)’이 흘러나왔다.
술 먹고 들어오던 선배들에게 고문당하던 기타가 제대로 빛나는 순간이었다.
아, 더벅머리에 여드름 가득한 남자에게 빠져버릴 줄이야.
“이 음악은 프란시스코 타레가 작품인데 궁전 창밖 달을 보며 실연으로 입은 상처를 음악에 담았다고 해요. 트레몰로 주법으로 신비로움과 애절함을 더해 알함브라 궁전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낸 음악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통기타 말고 클래식 기타로 해야 제맛을 느낄 수 있어요.”
녀석은 연주를 마치자 낮게 깔리는 목소리로 뻐기듯이 말했다.
다음 날부터 난 녀석이 할 일을 대신하는 개미가 되었고, 녀석은 기타를 연주하는 베짱이가 되었다.
이사할 때마다 내 책장을 채우고 있는 《카멜레온의 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연주곡을 틀어놓고 읽으면 더 좋다.
·클래식 기타(classic guitar)
클래식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할 만큼 다른 종류 기타들은 그 화려함을 따라갈 수가 없다.
모양은 넥과 프렛이 포크 기타보다 두껍고 더 넓으며 줄이 나일론이다.
·포크 기타(folk guitar)
모양은 프렛이 클래식 기타보다 좁아서 음역이 더 넓고, 줄이 철사여서 스틸기타라고도 부르며 취미용으로 널리 쓰인다.
·팜므파탈형 여자 장미 그림은 작품 내용을 잘 전달하려고 색을 입혔습니다.
작가 저작권을 해칠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