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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화그리는목각인형 Aug 06. 2021

만화 속 로봇 거리로 나오다

철인 28호(鉄人28号)·기동전사 건담(機動戦士ガンダム)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궁지에 몰리던 일본군은 전세를 뒤집으려 비밀리에 철인 병기 계획을 준비한다.


  태평양 어느 섬에서 철인 1호부터 만들어져 27호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된 기능을 갖춘다. 


  그렇지만 가장 높은 완성도를 가진 28호가 만들어지기에 앞서 연합군 폭격으로 일본은 패망하고 자연스레 이 계획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전쟁이 끝나고 국제 첩자들이 이 철인 병기를 빼앗으려 한다. 


  특수 리모컨으로 움직이는 탓에 리모컨이 악당에게 넘어가면 철인 28호는 나쁘게 쓰일 터. 


  다행히 정의감이 뛰어난 소년 탐정 카네타 쇼타로가 리모컨을 조종해 악당들과 맞선다.     

ⓒ 横山 光輝

  요코야마 미쯔테루(横山 光輝, 1934-2004)가 1956부터 1966년까지 월간 만화잡지 <쇼넨(少年)>에 연재한 《철인 28호》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다. 


  악당과 치고받고 싸우는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철학이 숨어있다. 


  힘은 좋게도 나쁘게도 쓰일 수 있다, 


  다시 말해 힘 자체는 나쁘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는 요코야마 미쯔테루식 철학이 그것이다.      


  “SF는 인기가 없는데 요코야마 미쯔테루만 인기를 끈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SF라기보다는 액션물이기 때문이다.” 


  요코야마 미쯔테루 그림에 영향을 준 데즈카 오사무(手塚 治虫, 1928-1989)는 이같이 평했다.

요코야마 미쯔테루(横山 光輝)

  폐암에도 담배를 놓지 않았을 만큼 애연가였던 요코야마 미쯔테루는 그 담배 때문에 난 불로 숨졌다.  

   

  일본 효고 현 동남부 고베시 신나가타에는 일본말로 테츠진이라 불리는 푸른색 거대 로봇 철인 28호가 서 있다. 

  만화에 나온 그대로 높이 18m에 무게 50t으로 만들어졌다. 


  실물모형은 무릎을 구부리고 있어 실제 높이는 15.8m이고 50t이나 되는 무게를 지탱하려 지하 6m 깊이로 150t 기초를 만드는 공사를 했다.     


  1995년 1월 17일, 미국 지질조사국 기준 6.9 고베 대지진이 일어났다. 


  건물 80%가 무너졌고 6천4백34명이 죽었으며 다친 사람이 4만3천여 명에다 20만 명에 이르는 이재민이 생겼다. 


  재산 피해는 14조 1천억 엔쯤으로 그 무렵 일본 GDP 2.5%에 달했다.


  한참 지난 뒤 복구가 되었지만 신나가타는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다. 


  사람이 찾지 않으니 지역 경제는 말이 아니었다. 


  이때 생각한 것이 철인 28호인데 원작자가 고베 출신이어서다. 


  지역 사람들이 저마다 보탠 돈을 모아 2009년에 총제작비 3,500만 엔이 든 철인 28호가 만들어졌다. 


  이 철인 28호를 보러 해마다 관광객 수백만이 몰려 지역 상권은 완전히 살아났다고 한다.


  커다란 로봇이 나오는 영화 《퍼시픽 림(Pacific Rim)》을 만든 멕시코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 1964-)가 영감을 받았다는 만화가 철인28호이다.     


  지난 2009년 여름, 도쿄 오다이바에 있는 시오카제 공원에 높이 18m 무게 35t인 실물 크기 건담(RG1/1 RX-78-2 건담 Ver.GFT)이 세워져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다. 


  이 건담은 건담 초기모델로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방송 30주년을 기념해 완구회사인 반다이 남코 홀딩스와 도쿄시가 주축이 돼 만들었다. 


  겉은 강화플라스틱에 안쪽은 철골로 발목, 무릎, 팔꿈치 관절을 섬세하게 만들어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2016년 도쿄 올림픽을 유치하려 기획되었지만, 올림픽은 브라질에 돌아갔고 2020년 올림픽으로 그 뜻을 이룬 듯 했으나 세상일은 알 수가 없다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가 닥쳐버렸다. 


  1년 늦춰 억지로 올림픽을 열긴 했지만 예전 올림픽은 아니었다.     


  시오카제 공원에 있던 건담은 2012년 봄부터 오다이바 다이버시티 도쿄 플라자 페스티벌 광장으로 옮겨져 사람들에게 선보이다 2017년 3월 5일 철거되고 2017년 9월 24일 19.7m 높이에 무게 49t인 유니콘 건담(RX-0 유니콘 건담 Ver. TWC)으로 바뀌었다. 


  유니콘 건담은 카토키 하지메(カトキ ハジメ, 1963-)가 디자인했다.     


  야다테 하지메(矢立 肇, 1952-) 원작에다 호시야마 히로유키(星山 博之, 1944-2007)가 각본을 쓰고 도미노 요시유키(富野 由悠季, 1941-) 감독 지휘로 만들어진 1979년 TV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건담이 나오기에 앞서 로봇 영화는 악과 정의 편인 주인공이 뚜렷이 나뉘어 있었다. 


  건담은 그 틀에서 벗어나 낯을 많이 가리는 주인공이 우주에서 벌어지는 전쟁 한 가운데서 성장하며, 병기로서 로봇을 움직이고, 우주 생활에 견디려는 인류 진화를 다룬 묵직한 세계관에 어른들도 로봇 애니메이션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 작품이다. 


  건담은 터무니없는 슈퍼로봇이 아닌 어디까지나 병기 하나로 다뤄졌다는 점에서 리얼 로봇물 시초라고 불린다. 


  그 뒤 나오는 로봇 영화는 건담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본은 한때 지구에서 가장 잘살고 질서 있고 세련됐다며 떠받들어졌었다. 


  나도 일본 만화와 드라마를 보며 일본을 꿈꾸었던 때가 있었지만 더는 그러지 않는… 


  아니다. 


  저 로봇들을 보니 부러움이 조금은 더 남아있는 듯싶다.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줬던 그 로봇들이 거리로 나와 사람들에게 꿈을 보여주니 이 얼마나 멋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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