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하다.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분한 마음도 들고 두려운 마음도 있다.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난 벼랑에 내몰린 사람처럼 우뚝 선다. 뜻대로 되는 인생은 없다지만 이렇게나 답이 없어서야. 그러나 별다른 도리도 없으니 버틴다. 버티고 버틴다. 그러다 보면 아주 드물게, 마음 소쿠리 가득 산딸기를 따는 날이 있다. 어젯밤이 그랬다.
피천득 선생님의《인연》을 읽었다. 아빠는 딸에게 편지를 썼다.
아빠가 부탁이 있는데 잘 들어주어
밥은 천천히 먹고
길은 천천히 걷고
말은 천천히 하고
네 책상 위에 ‘천천히’라고 써 붙여라.
눈 잠깐만 감아 봐요. 아빠가 안아 줄게, 자 눈 떠!
나는 그의 딸, 서영이 아니지만 혼자서 몇 차례 되뇌어 보았다.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그래, 그냥 버티는 건 재미없으니 둘레둘레 서서히 걸어가야지, 그렇게 다짐하면 눈앞의 고민도 조금 결이 달라진다. 몽실몽실 꿈을 그리는 여유만 남겨두고 묵묵히 나아가기로. 그러면 언젠가 분명.
요가를 할 때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한계, 불가능’을 직시하게 된다. 안 된다. 아무리 해도 무리다. 패배한 기분. 그러나 그렇게 한바탕 깨지고 나면 마음 깊은 곳에서 후련함이 우러난다. 그리고 생각한다. '5초씩 카운트를 늘리고, 100번쯤 반복하기로'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할 테니 지금 당장 부족해도 어떠랴, 싶다. 돌아 돌아가면 된다. 수련은 아마도 그런 것.
노력해도 모자라게 느껴지면 서글프다. 조바심 낼수록 어설퍼지는 게 우습다. 좋아서 선택한 일인데 쫓기는 사람이 되어 어리벙벙하다.
난 이제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러기에 지쳤다. 노력의 배신을 미리 걱정하면서 마지못해 ‘최선’ 따위를 떠올릴 게 아니라, 그냥 아주 조금씩 나아가는 재미를 누리고 싶다. 그러면 적어도 허둥대다 자신을 속이는 천치는 되지 않을 것 같다. 더 큰 손해는 초조해할 때 남는다.
“나는 어려서 울기를 잘하였다. 눈에서 눈물이 기다리고 있듯이 울었다.” <눈물>
“베이스볼 팀의 외야수와 같이 무대 뒤에 서 있는 콘트라베이스를 나는 좋아한다.” <플루트 플레이어>
“그는 단칸방 안에 한 우주를 갖고 있다.” <치옹>
피천득 산문집 《인연》에서
순수하고 너그럽고 따뜻하고 우아한 이런 문장을 나는 언제쯤 쓸 수 있을까. 멀었다. 아무렴, 멀고 멀었다. 그래도 그를 닮는다는 건 너무나 근사해서 난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