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imu Mar 23. 2017

015 엉엉 울지 않을 때는

어제 집에 가는 길에 엉엉 우는 꼬마 아이를 보았다. 5살쯤 되었을까. 아빠를 따라 마지못해 걷는데, 양 볼이 축축해지도록 울고 있었다. 젖은 소리로 뭐라 뭐라 하면서 (알아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울먹거릴 때마다 붉은 입 속이 언뜻거렸다. 난 아이를 금세 지나쳤지만 그 후 집에 도착할 때까지 히죽히죽 웃고 말았다. 길가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울 수 있다는 게 귀엽지 않습니까? 동시에 거기엔 어떠한 시원함도 있었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앙앙 울어버릴 수 있는 천진함, 오직 울 뿐이라는 명쾌한 세계관이 내게 신선한 기분을 더해주었다.   

   

어릴 적, 사진이 떠올랐다. 사진 속 언니와 난 같은 모양으로 곱슬곱슬 파마머리를 하고 있었다. 둘 다 얼굴이 벌게져서 엉엉 울고 있는데, 입을 크게 벌리고 악을 쓰는 통에 그 서러운 소리가 귀에 들릴 것만 같은 사진이었다. 벽에 걸린 거울에 사진 찍는 엄마가 비췄다. 그 속에서 그녀는 웃고 있었다. (악마처럼, 마녀처럼) “너희 나중에 크거든 이 사진 꼭 봐라!” 그렇게 말하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   


난 지금도 잘 운다. 그것이 하나의 능력이고 시합을 벌일 수 있는 거라면 단연 우승일 텐데. (아쉽다.) 서른 해를 살아도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예비 된 눈물들이 다닥다닥 줄을 서 있다. 뒤 눈물이 앞 눈물을 밀치고 서둘러 떨어진다.


난 가끔 방에서 혼자 무너져 다.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엉엉엉 소리 내서, 양 볼이 축축이 젖을 때까지. 그럼 5분도 안 돼 제풀에 끝나고 마는데 그때 나는 (조금 과장해)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퉁퉁 부은 눈을 부릅뜨고 새로운 전의에 차서 “그래, 다시 해보자!”하고 용기를 얻는 것이다.     


한편 울고 싶어도 눈물 하나 나지 않을 때 있고, 심장에 크고 작은 추가 주렁주렁 달려 차갑게 가라앉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난 요가 생각이 간절해진다. 빈 방에 매트를 처억- 깔고 누구의 방해도 없이 몸을 움직이고 싶어진다. 통증에 집중하든, 호흡에 집중하든 시간은 흐르고, 몸은 축축이 젖고, 정리된 생각은 하나도 할 수 없는 그런 소모를 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가뿐해진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 된다. 새로운 전의에 차서 “그래, 다시 해보자!”하고 용기를 얻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멋대로 요가의 쓸모를 누린다.      


엉엉 울거나 요가를 하거나. 그러고 보니 이 두가지가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인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014 조금 멀리 걷기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