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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mu Mar 24. 2017

016 천 부를 팔아서

요가 학원비를 세 달치 앞서 냈는데 그 기한이 어제로 끝났다. 학원에선 수업 종료일을 알리는 문자를 보내왔다. 재등록시 5% 할인혜택을 준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기한이 끝나기도 전에 재등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고민 중이다. 어쩐지 화가 나기 때문이다.


주 3회 수업으로 한 달이면 17만원이다. 세 달치를 한 번에 내고, 5%할인까지 받으면 이것이 12만원까지 떨어진다. 매달 5만 원씩을 절약할 수 있는 셈인데, 난 이런 계산이 아주 짜증스러웠다. 그냥 처음부터 한 달에 12만원이면 안 되는 것인가. 돈 있는 사람에겐 혜택인 것이 돈 없는 사람에겐 상술이 된다. 좀 더 심플해도 좋지 않을까. 쿠폰과 적립금, 조건부 할인 없이도 '얼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그쪽이 훨씬 신뢰가고 멋질텐데 요즘엔 참 드문 일이 되어버렸다. 사심없고 정정당당한 태도가(그러한 가격정책이) 그립다. 


돈 쓰기가 수박을 배어먹는 일 같다. 크게 한 입, 크게 한 입, 참 먹기도 쉽다. 오늘자 신문을 보니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4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한다. 달걀값도 오르고, 무값도 오르고, 채소, 과일, 생선값도 모두 올랐다. 장을 보면 겨우 요것으로 이만큼 돈을 내야 한다. 서울이 물가가 높은 세계 6위 도시라 하는데, 자꾸 뭐에 속는 기분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경제학을 전공하고도 셈이 아주 느린 나는 돈의 발끝만 쫓고 있다. 


하루키 에세이에서 소설가는 물었다.


"요즘 세상에 ‘돈도 없지만 취직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은 대체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과거에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던 만큼, 요즘의 폐쇄된 사회 상황이 무척 염려스럽다. 빠져나갈 길이 많으면 많을수록 살기 좋은 사회라고 나는 생각한다."


돈도 없지만 취직도 하고 싶지 않은 나는 매일 글을 쓴다. 그리고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한다. 난 안다. 이것은 (대단히)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뛰어난 작가들도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스티븐킹은 구더기가 기어오르는 식탁보와 의료용 헝겊 등을 빨며 글을 썼고, 재즈카페를 운영하던 하루키는 새벽 2시 가게 문을 닫고 나서야 식탁에서 글을 썼다. (그 유명한 ‘키친테이블라이팅’이다.) 폴오스터는 말했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번 허리띠를 졸라맨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노상 쩔쩔맸고, 거의 숨 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김밥천국에서 돈까스를 써는 남친에게 나는 말했다. “나는 1000만부 팔리는 책을 쓰려는 게 아니야. 1000부면 돼.” 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대단치 않지만 자유롭고 치열하게 써내려간 활자들. 그것들을 꾹꾹 담아 네모난 책을 만들고 싶다. 작고 도톰하고 가벼운 책이다. 그것을 적지만 소수의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읽히고 싶다. 그렇게 해서 세 달을 벌어 다시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소망은 그것뿐이다.


모르겠다. 이러한 나의 생각이


- 쉽게 쓰고 쉽게 돈을 벌겠다는 것인지

- 어렵게 쓰고 어렵게 돈을 벌겠다는 것인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겨우 한 치 앞만 바라보는 나는 한심한가.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지금 내 두려움은 1000부를 팔고 다시 세 달을 벌 수 없을까봐, 아니 애초에 책을 완성하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데서 온다.


돈은 현실을 모르고,

나도 돈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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